제109호 대원종 : 가구판 노름

가구판 노름

 

 

글 연구위원 이승목

 

  『典經』을 살펴보면, ‘가구판 노름’과 ‘진주 노름’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투전의 한 갈래인데, 조선 중엽부터 근대 초입까지 가장 흥행했던 노름이다. ‘민중들부터 사대부의 자제에 이르기까지 신분을 가리지 않고 투전꾼이 되어 간다’라는 상소문이 수차례 있을 정도였고, 풍속화 · 민요 · 소설 등에 민중들의 질펀한 삶을 묘사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소재로 쓰일 만큼 사회저변에 산적해 있었다. 또한 조선 말기에 화투가 수입되었지만, 그 놀음방식은 투전을 따랐다. 가령 쪼기의 ‘땡’과 ‘족보’는 모두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서양 카드의 시조를 투전으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01 이렇게 민중들의 삶에 놀음문화로 깊숙이 정착한 투전에 대해 상제님께서는 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을까.

 

 

“천하의 대세가 가구판 노름과 같으니 같은 끗수에 말수가 먹느니라.”

(교법 3장 36절)

 

 

  상제님께서는 투전에 담겨 있는 어떤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시려고 하신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어떤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투전의 유래와 놀음방식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 정조(正祖) 때의 학자 성대중(成大中, 1732~1812)의 『청성잡기(靑城雜記)』에 의하면, 숙종(肅宗) 때 역관(譯官)인 장현(張炫, ?∼?)02이 중국의 노는 법을 고쳐 만든 것이라 하였다. 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 우리 실정에 맞게 간략화 되어 오늘날의 투전이 된 것으로 보인다.03 폭은 손가락 굵기만 하고, 길이는 15㎝에 창호지를 여러 겹 붙여서 마분지처럼 두텁게 만든 형태로, 그 한 면에 인물 · 새 · 짐승 · 벌레 · 물고기 등의 그림이나 글귀를 적어 끗수를 나타냈다. 그리고 손을 타도 훼손되지 않게 종이 위에 콩기름을 먹였다. 대개 돈을 건 뒤 각 그림과 글귀가 표시된 패를 뽑아 패의 끗수로 승부를 겨루는 것인데, 25장 40장 60장 혹은 80장을 한 벌[목(目)]로 놀이하나 40장을 주로 사용하였다.04

  투전은 놀이에 사용되는 매수나 참가인원(2∼6명) 또는 내용에 따라 ‘꼽사치’, ‘갑오잡기(혹은 돌려대기)’, ‘쩍쩍이’, ‘가구판’ 따위가 있으며, 한 가지도 여러 세목으로 나뉜다. 그리고 각각의 패에 적혀진 숫자에는 고유의 명칭을 사용하는데, 일명 ‘족보’라고도 한다. 1을 ‘따라지’, 5를 ‘진주’, 6을 ‘서시’, 7을 ‘고비’, 8을 ‘덜머리’, 9를 ‘갑오’, 0을 ‘무대’라고 부른다.05 점수는 ‘장땅(10의 숫자가 2장)’이 가장 높고, 그 외에는 둘을 합한 끗 자리수가 9인 갑오가 그 뒤를 잇고 8·7·6 … 0 차례로 내려간다. 당연 높은 숫자를 가진 사람이 그 판의 승자이다. 그런데 끗수가 동일할 때에는 두 장의 숫자 중 높은 숫자[아홉 끗(9)]를 소유한 사람이나, 선수(先手)가 승자가 된다.

  하지만 여기서 ‘가구판’은 여타 투전의 노름들과는 진행방식이 판이하다. ‘가구판’은 순우리말인 ‘가귀(다섯 끗을 이르는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지역에 따라 가귀대기 · 가귀노름이라고 한다. 진행은 세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여러 장의 투전패를 가운데 놓고 선수(先手)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각 세 장씩 가져가서 15를 먼저 맞추는 방식이다. 그래서 다섯 끗 3장으로 15를 만든다고 하여 ‘십오 대방신주’ 혹은 5를 진주라고 하기에 ‘진주노름’이라고 한다. 따라서 아무리 높은 수인 아홉 끗을 쥐고 있어도, 다섯 끗인 진주에게 승자의 자리를 내주어야 되는 놀음이다. 그리고 진주를 맞춘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때는 14·13·12·11 … 0의 순서로써 승부를 결정한다. 만약 패가 15를 넘기면 그 판에서 실격하게 된다. 여기서 실격이 계속되면 그만큼 판돈의 손실도 큼은 당연지사이다. 그 손실을 메우는 방법이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독조사’이다. “진주 노름에 독조사라는 것이 있으니 남의 돈을 따 보지도 못하고 제 돈만 잃고 바닥이 난 후에야 개평을 뜯어가지고 새벽녘에 본전을 회복하는 수가 있음을 말함이니라.”(행록 3장 65절) 또한 끗수가 모두 같을 때는 어드밴티지 룰(advantage rules)처럼, 세 사람 중 가장 늦게 패를 가져간 말수[末手]가 승자가 된다.06 결국 상제님께서 “같은 끗수에 말수가 먹는다”라는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한편 ‘가구판’의 15는 9개의 숫자가 격자무늬로 새겨진 낙서(洛書)07에서 비롯된 것이다. 낙서의 수리(數理)를 어느 방향(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다 합해도 그 합은 동일하게 15가 되는데, 이것을 마방진(魔方陣)이라고 하여 동서양에서 예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15는 만물 변화의 바탕이 되는 5·10 토(土)를 가리킨다. 그리고 5·10 토(土)는 15의 모습으로서 만물이 생장염장(生長斂藏)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장(場)을 만들어 주는데, 그 장이 바로 24방위와 24절기이다. 그것은 하늘 360 주천(周天)을 15로 나누면 24가 되고, 이것은 곧 24방위와 24절기를 일컫는다.08 특히 도주님께서 구천상제님의 진리를 받들어 50년 공부종필(工夫終畢)의 법(法)으로써 수도 법방을 짜 놓으시면서, 만물이 생장염장하는 변화 원리를 밝히고 계신다.09

  이처럼 모든 만물은 15라는 수리를 바탕으로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데, 영대(靈臺)의 신위(神位)가 15신위(神位)인 것과 영대에서 모시는 배례 횟수가 총 15배인 것도 바로 이런 원리를 담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더구나 이 원리를 밝히신 도주님께서 진주(眞主 : 15세)로 봉천명(奉天命)10하셨다는 말씀을 미루어 볼 때, ‘가구판’에서 나타나는 ‘진주’는 도주님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가구판’의 천하 추세(趨勢)는 만물의 운행 원리가 들어 있는 다섯 끗인 진주에게 귀결 된다는 것이다. 또한 하늘이 민중저변에 산적해 있는 노름을 통해 진주(眞主), 즉 도주님을 찾아 만나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알려주시려 하신 것은 아닐까.

 

 

 

 


01 이규태씨에 따르면, P 아널드가 자신의 저서 『도박 백과』에서 최초의 카드놀이를 시작한 것은 한국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화살 그림을 그린 갸름한 카드, 곧 투전이 시조라고 그 구조적 특징을 들어 고증했다. (이규태, 「조선일보 - ‘이규태코너’」, 2002년 2월 25일)

02 장희빈(張嬉嬪)의 부친인 장형(張炯)의 종제(從弟)되는 사람이다.

03 중국의 노름은 마조(馬弔)라고 일컫는 것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작(麻雀)을 말한다. 그리고 마조는 원(元)대에 시작된 것으로, 중국 고금의 인물을 등급을 매겨 120장으로 된 놀음이다. 이 120장짜리 마조를 간략화하고 문양을 첨부한 것이 투전이다. (강명관,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p.88)

04 투전 패는 지방에 따라 사용되는 패의 형상이 다를 수도 있다. 다만 그림만 있고 숫자가 없는 경우는 화투장처럼 그림을 보고 그 패의 숫자를 인식하는 형태이다. (김광언, 『동아시아의 놀이』, 민속원, 2004, pp.424∼433)

05 『서울육백년사』, 서울특별시편찬위원회, 1977.

06 『서울육백년사』, 서울특별시편찬위원회, 1977.

07 만물 근원 1·6[水]의 변화의 바탕이 되는 5·10[土]는 약 4000년 전 우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 낙수(洛水)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그려진 낙서(洛書)에서 마방진(魔方陣)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08 차선근, 『상생의 길 1집 - ‘조석(潮汐)의 이해’』, 대순진리회 교무부, 2004, p.160.

09 조석(潮汐)의 원리를 뜻하는 것으로, 만물의 근원 1·6 수(水)가 5·10 토(土)를 근본으로 하고 15 수리(數理)를 활동장으로 삼아 생장염장한다는 것이다.

10 ”도주님께서 진주(眞主 : 15세)로 봉천명(奉天命)하시고 23세시에 득도하심은 태을주(太乙呪)로 본령합리(本領合理)를 이룬 것이며 전경에 12월 26일 재생신(再生身)은 12월 4일로서 1년 운회의 만도(滿度)를 채우실 도주님의 탄생을 뜻하심이다.”(『대순지침』, p.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