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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2년(2022)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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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 가야리 터줏대감 이창기, 도장 터와의 인연을 듣다

가야리 터줏대감 이창기, 도장 터와의 인연을 듣다



출판팀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가야리, 여주본부도장이 자리하고 있다. 도인 누구나 여주본부도장을 알지만, 도장 터를 매입하는 과정을 아는 이는 드물다. 도장건립 초기를 기억하는 지역주민 이창기 씨를 만나보았다.


 
기자: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창기 회장(이하 이 회장):
  안녕하십니까. 합천 이씨 종친회에서 이사 및 합천 이씨 전서공파 종중회장을 맡고 있는 이창기입니다. 저는 1946년 12월 4일생으로 여주 강천면 가야리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사업을 했습니다. 30대에 정치와 인연을 맺고 여주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기자: 합천 이씨는 여주에 어떻게 정착하게 되었나요?
이 회장:
  조선시대인 15세기 중반 이효성(李孝誠, 1379~1457) 할아버지가 1402년 문과에 급제하여 춘천도호부사를 지내셨습니다. 춘천에서 출발하여 원주의 섬강을 지나 여강 중류에 이르자 주변 경치가 마음에 들어 고향인 합천 가야산의 이름을 따서 가야동(伽倻洞)이라 짓고 강천면 가야리 지역에 정착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원주에서 여주 방향으로 42번 국도 우측으로 보이는 강천면과 부론면 일대 약 340만 평을 이효성 할아버지 때 하사받았다고 합니다.



기자: 종단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셨나요?
이 회장:
  1980년도 전후로 도전님께서는 도장을 짓기 위해 터를 알아보고 계셨습니다. 당시 수행원으로 이순범 실장과 홍철희 감독이 있었습니다. 이 실장의 말에 따르면 홍 감독이 군 생활할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 여주에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실장이 홍 감독의 지인에게 여주에서 건축허가를 도와줄 사람을 문의했다고 합니다.
  여주지역에서 사업을 해서 저를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홍 감독의 지인도 저를 활동적인 사업가로 지자체 관계자들과도 관계가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고 합니다. 얼마 후 도전님께 직접 인사를 드리고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또한, 강천면 일대가 우리 문중의 땅이었는데, 대부분이 개인 명의라 저 또한 소유지가 있었기 때문에 종단에서 도장 터를 구매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이 실장이 서류를 준비해오면 제가 여주지역 사정에 밝다 보니 여주군청을 오가며 행정 처리를 도맡아 했습니다.



기자:  여주본부도장의 토지구매 과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이 회장:
  1979년도에 1차로 본전, 숭도문 내부, 일각문, 신생활관 등을 짓기 위한 1만여 평을 매매했습니다. 이 땅은 저희 집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판 땅이라 땅 주인을 소개하였을 뿐 매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잘 모릅니다.
  비슷한 시기에 2차로 대순회관과 신축회관 터로 쓰일 땅, 6천여 평을 매매했습니다. 땅 주인은 우리 문중 사람으로 제천에 살고 있었습니다. 직접 찾아뵙고 땅을 종단에 팔아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종중 땅을 도장에 팔라고 했으니 저도 참 이상한 놈이란 생각이 듭니다. (웃음)
  마지막 3차 토지매입은 신축회관 뒤편의 박물관이 있는 강가 터로 저의 개인 땅이었습니다. 그밖에 별장 터는 우리 문중 사람이 지역 사업가에게 팔았던 땅입니다. 80년대 초반 별장 주변의 강가 터를 구매하여 별장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지금의 별장 오두막이 있는 곳까지 강이었습니다. 큰 바위를 수백 개 사서 메우느라 비용이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기자:  도장을 지을 당시 지역주민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이 회장:
  1986년 일념교를 지을 때 지역주민들의 민원이 처음으로 발생했습니다. 당시 일념교가 세워지면 주민들이 다리 밑을 지나가게 되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장들과 함께 지역주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에 대해 주민들은 저에게 “돈 받아먹고 했느냐? 거기에 입도를 했느냐?” 등 반응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대순진리회에 입도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지인들과 이장들이 도와 가야리, 굴암리, 적금리, 강천리 주민들의 민원이 해결되어 일념교를 세우는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  도장 조경에도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회장:
  도장에서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사 올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소유하고 있는 땅의 소나무를 옮겨오거나 도전리와 대둔리에서 직접 구매하기도 하고 조경용 돌을 사서 나르기도 하였습니다.



기자:  도장 터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이 회장:
  도장 별장으로 가는 길목, 부전 방면 초소 부근에는 1960년대 초반까지 77통신대 5중대 2소대가 근무했습니다. 이곳의 통신소대는 육군본부의 직통전화를 담당하는 소대로 잡음이나 전파유도를 관리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1965년도까지 소대가 도장 터에서 근무하다가 군부대 이전으로 1967년도에 지금의 이호2리 마을로 옮겼습니다. 명당을 구렁이가 지킨다는 얘기가 있듯이 도장으로 쓰일 터이다 보니 아마도 신명들께서 군부대로 도장 터를 지키게 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기자: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이 회장:  종단에서는 여주지역에 많은 선행을 베풀어주셨습니다. 특히 도전님께서 도장 터를 마련하시면서 지역주민들에게 일체 피해를 주지 말고 많이 베풀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여주지역은 가야1리 마을회관, 강천파출소, 하리경로당, 상리경로당, 여주경찰서 정보과, 강천면 농촌지도소, 강천면 보건소 등 많은 건물을 지어주셨습니다. 또한, 강천중학교 장학금과 더불어 겨울철 경로당 연탄값도 지원해 주셨습니다.
  특히, 1980년대 후반 ‘평화의 댐’ 조성 모금에 8천만 원을 기부하여 전국 군 단위에서 여주군이 1위를 하였고, 여주에 가뭄이 들던 해에 양수기 60대와 현금 2천만 원을 지원하였으며, 수해복구비로 1억 원을 여주군에 기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도전님께서 지역주민들을 살펴주시는 모습을 제가 직접 보면서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여주 지역주민들도 도전님을 존경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땅은 물론이고 제천에 사는 종중에도 적극적으로 설명하여 도장 터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드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주본부도장 기공식 날, 저도 도전님 옆에서 장갑을 끼고 삽으로 흙을 떴습니다. 너무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종단과 좋은 인연을 지속해 올 수 있어서 저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종단에서 도장 터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원로 이창기 씨가 동참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주본부도장을 강천면 지역에 건립하면서 종단과 지자체, 더 나아가 지역주민과의 교두보 역할을 하기 위해 그 당시 최선을 다했다는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 도장에서 터를 마련하는 데 음으로 양으로 도왔던 이창기 씨의 노력도 적지만은 않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도전님이 계셨을 때를 그리워한다는 그의 말에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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