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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2년(2022)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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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 문예 : 道가 일깨워준 나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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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대순문예공모전 산문부문 장려


道가 일깨워준 나의 빛



문정18 방면 선무 박은주




  나는 어릴 때부터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주변으로부터 미움받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눈치를 보거나, 사소한 생각으로부터 부풀려져 나를 짓누르는 부정적인 생각 속에 살았다. 일어나지 않은 수많은 경우의 수를 걱정했고, 그럴수록 주눅 들었다. 하지만 내가 늘 동경하고 닮고 싶어 했던 사람들은 외모나 능력, 배경을 떠나 그 사람 자체만으로도 무언가 빛이 났다. 그들은 어떤 상황이 와도 스스로 잘 헤쳐 나갈 것 같은 밝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었고 그 주변엔 항상 사람들이 많았다.
  시간이 흐르며 그 무언의 빛남이 ‘자존감’이란 단어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존감’이란 ‘자아 존중감’의 줄임말로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감정이다. 쉽게 말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힘든 고난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럴 때 고난이라는 터널 안에서 허우적대며 빠져나오지 못하느냐 아니면 그 속에 오히려 한 단계 성장하느냐의 차이도 자존감에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이야기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그 상황을 어떻게 차고 나올지 방법을 고민하고, 자존감이 낮을수록 그렇지 못하고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를 밝게 만들어준 도의 가르침을 새기며 세 가지로 크게 나누어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는 ‘내가 누구인지 바르게 아는 것’이다.


  살면서 한 번쯤 ‘나는 왜 태어났을까’하고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 또한 도를 알기 전에는 이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기에 사소한 일에도 부정적인 생각으로 어두워진 적이 많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자기 자신 또는 인생의 전부라고 확대해석하기 때문에 그것이 망가지거나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만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는 서로 존재 가치를 모르던 사이에서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되고 의미가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알아주고 믿어주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그 속에 살아갈 의미를 찾곤 한다. 세상에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듯, 각자 저마다 누군가의 꽃으로 태어나지만 정작 본인이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 의미는 퇴색되어 버리고 만다.
  하늘은 우리에게 천지보다 더 큰 ‘마음’이라는 것을 심어주었다. 이 마음을 태초에 받은 천성 그대로 회복하여 천지의 완성에 함께할 때 사람은 비로소 빛을 발한다. 내가 천지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단 하나의 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아무리 커다란 시련이 나를 덮친다고 하더라도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자신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바르게 정립하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번뇌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두 번째는 ‘무한히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이다.


남학생 : 너한테 산다는 건 뭐야?
여학생 : 산다는 건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일이야. 혼자 있으면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가 없거든. 누군가를 인정하고 좋아하게 되고 싫어하게 되고 스쳐 엇갈리고. 좋아하면서도 밉고, 즐거우면서도 우울하고, 그런 혼란스러운 감정. 남들과의 관계가 내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해주는 것 같아.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대화이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사소해 보이는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불러일으키듯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기에 나 이외 상대방과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내 사람’이 아닌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 쓰는 것을 수치화하여 계산하게 된다. 남보다 1이라도 더 해주게 되면 마치 엄청난 손해라도 보는 것처럼 초조해지는데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이치를 모르고 상황을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현상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우리 사회의 이기적이고 삭막한 모습과는 달리 아이러니하게도 남을 돕거나, 상대에게 바라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주었을 때 오히려 내 마음이 충만해지고 따뜻해짐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섭리가 ‘내 할 몫만 다하면 끝’이 아니라, 끝없이 잘되게 해주는 상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한한 상생 속에 살고 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계산하지 않고, 주고 또 주었음에도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눈물을 훔치고, 자식은 그 무한한 은혜와 사랑 덕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알기에 ‘어머니’, ‘아버지’란 단어만 들어도 감사함에 울컥하는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고 누구나 내 자식은 귀하다. 하지만 내가 펼치는 사랑이 ‘내 사람, 내 가족, 우리 00’과 같이 한정된 범위에만 그친다면 상대방의 입장이나 삶의 방식을 생각해 볼 여유가 없기에, 세상에 알게 모르게 쌓여 가는 크고 작은 원한들에 나 또한 일조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의 일은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이니라. 남이 잘 되고 남은 것만 차지하여도 되나니 전 명숙이 거사할 때에 상놈을 양반으로 만들고 천인(賤人)을 귀하게 만들어 주려는 마음을 두었으므로 죽어서 잘 되어 조선 명부가 되었느니라. (교법 1장 2절)


  만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앞장서 동학농민운동을 일으켰던 전봉준 장군처럼,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와 남을 잘되게 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상생으로 굴러가는 천지 흐름에 발맞춘 우리의 마음은 스스로 따뜻하고 단단해진다.



세 번째는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자각하는 것’이다.


  “호강장아찌.”
  임원분께서 자주 쓰시던 단어이다. ‘호강’에다가 ‘마늘장아찌’, ‘양파장아찌’의 ‘장아찌’를 붙여서, 너무 많은 ‘호강’에 절여져서 당연시하고 고마운 줄 모른다는 의미다. 처음 들었을 때는 단어의 신박함에 웃긴다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의미를 체감하게 되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덕화와 보살핌 속에 이 평범한 일상이 유지되는지 정확히 다 알지 못한다.
  매일 수많은 사건 사고로 죽은 이들을 부검하는 법의학자 이호 교수는 어느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을 했다. “너무나 많은 죽음을 보다 보니 (죽는 게 정상이고) 살아있는 게 비정상 같다.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살아있다는 걸 너무 당연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안전하다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
  수많은 책과 강연들이 감사함의 중요성과 영향력에 대해 말해왔고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즐겁고 행복한 일이 생겼을 때는 누구라도 감사하겠지만, 중요한 건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도 얼마만큼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느냐이다. 입으로는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실제 속마음은 그렇지 못한 경우들도 많다. 어릴 때 부모님께 감사함을 느끼는 정도와 내가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 내가 어떤 정성과 사랑 속에 커왔는지 알게 되었을 때의 느끼는 감사함의 정도는 차이가 크듯이, 상제님께서 이 천하창생을 건지기 위해 어떤 공사와 정성을 들이셨는지, 수없이 많은 신명과 조상님의 보살핌 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 살면서 무수히 가슴뼈들이 상하더라도 그것이 덕화 속에 작게 겪는 것임을 우리는 알기에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고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덕화 속에 펼쳐질 나의 30대,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이 기대된다. 사람이 어떻게 바르게 살아야 본디의 가치로 빛이 나는지 알려주신 상제님께 감사하며, 더욱 실천 수도하여 나의 모습이 앞으로 만날 수많은 인연자에게 덕화 선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끝없이 세상에 전하고 펼쳐 상제님께서 약속하신 후천에 즐거이 모두 함께 가는 그날까지 열심히 힘쓸 것임을 맹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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