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별 보기
   daesoon.org  
대순151년(2021) 4월

이전호 다음호

 

도전님 훈시 종단소식 전경 성구 교리 소개 기자 수첩 답사기 지방 회관 소개 문화산책 나누고 싶은 이야기 내가 읽은 책 엽서톡톡

나누고 싶은 이야기 : 5-3=2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5-3=2



금릉1-6 방면 선무 김소영




  인간사에서 흔히 발생하는 미움, 분노, 시비…, 이들의 속사정은 다름 아닌 오해라는 단어에서부터 출발하는듯하다. 사람 간의 대화에는 각자 그 나름의 사정이 있어 다 제 말만을 하지만 그사이를 가로막는 오해라는 두 글자는 너무도 잔인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상극으로 갈라놓는다. 눈뜬장님이라는 단어처럼 나 또한 도에서 보낸 많은 시간을 오해 속에 뒤엉킨 채 살아왔던 적이 많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무언가를 오해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내수 때 들었던 교화가 떠올랐다.
  “사람이 빨간 안경을 쓰면 세상이 빨갛게 보이고 파란 안경을 쓰면 모든 것이 파랗게 보이듯 사람은 자신의 업보대로 보고 듣게 돼 있어요.”
  자신의 시각대로 보고 듣는 것들이 때때로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맞아” 하고 너무도 공감한 내용인지라 수반들에게도 곧잘 일러주던 부분인데 막상 내 앞에 무슨 일이 닥치면 교화의 흔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상대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쌓아갔다. 언제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심이 통하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고 이해할 수 있을까…. 실천을 못 하던 나는 그저 한숨만 쉴 뿐이었다.
  상제님을 믿고 따르는 도인이라면 분명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해나가려고 할 것이다.
  “악장제거 무비초 호취간래 총시화.”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그 장점만 취하고 혹 단점이 보일지라도 잘 용서하여 미워하지 말라.”
  “사람마다 제 노릇 제가 하는 것인데 제 몸을 생각지 못하고 어찌 남의 시비를 말하리오.”
  “곡진이해 무소불능.”
  『전경』, 『대순지침』 구절 속 많은 말씀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수도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주고 계시지만 현실의 나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다.
감정이 괴로울 때면 시한폭탄 터트리듯 내 속에서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토해내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지켜보던 선각들은 선각들대로, 수반들은 수반들대로 마음에 상처가 생기고 보이지 않는 벽이 쌓여갔다. 그걸 마주하던 나 또한 즐거울 리는 없었다. 습관을 고치지 못하던 나는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시비와 분노를 때로는 꾹꾹 눌러 참기도 하고 나와 상관없다며 무시하며 돌아서기도 했다. 스님처럼 참아내는 그런 수행법을 행하며 제 취향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치듯 어울리지 않게 행동했다.
  스스로 속삭이며 ‘말해봤자 서로 얼굴 붉히고 상황만 더 악화할 거야… 좋을 거 없어… 결국, 다 내가 겪어야 할 업보니까 남이 어떻게 하든 상관하지 말고 나만 잘하면 되지. 잊어버리자 잊어…’ 생각과 달리 미어터지는 감정을 부여잡고 애써보지만, 얼굴도 굳고 말수도 줄어들면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웃음을 잃어버린 경직된 모습에 상대는 더 불편해했다.
  통제할 수 없는 한계가 오자 방면 임원분께 전화를 드려 어떤 때는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어떤 때는 다른 이의 꼴 사나운 모습도 시원하게 말해보고 뜻대로 안 될 때 오는 답답함도 속 시원히 털어보았다. 힘든 걸 알아주실 줄로만 알았던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꾸중과 수없이 반복해 들어왔었던 교화들이 재방송 되자 또다시 시무룩해졌다.
  스스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이미 너무도 많은 기운이 쌓여있을 때는 선각분들이 옳은 말씀을 해주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와닿지 않았다. 깊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서 숨어있고 싶을 정도로 아무 의욕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수도인이라면 수도 과정에 크고 작게 한 번쯤은 이와 같은 일들을 겪어보지 않았나 싶다.
  감정 패턴이 반복될수록 되풀이되는 이 생활이 지긋지긋해지면서 스스로 고민을 많이 해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집하고 있는 감정의 무게만 더 키워가는 것 같았다. 도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으면서 언제까지 감정 속에 뒤엉킨 채 살 것인가?
  나의 이런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 선각분들은 많이 노력하셨다. 등 돌리고 서 있는 나를 앞에 두고 뭐가 이쁘다고 다가오셔서 “힘드니? 많이 힘들지? 우리 김선무가 열심히 하나 보지. 좋아지려나 보다. 누구나 그런 과정을 거친다. 다 좋아지는 과정이야. 힘내.”라고 위로를 해주셨다. 따뜻한 위로 한마디가 고민하고 암울하게 보내온 시간을 눈 녹듯 사라지게 했지만, 그 말만으로는 나에게 일어나는 감정의 고민이 해결이 안 된다는 걸 느끼는 단계가 왔을 때쯤 내가 의식을 가지고 고쳐나가야 할 부분을 설명해주시기도 하셨다.




  최근 직계 선각인 선사와 부딪쳐서 대화가 잘 안 되었다. 같이 일하다 보면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어서 그날도 또 올 게 왔구나 하고 태연했던 것 같다. 화나면 말조차 섞지 않던 내가 선각과의 관계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 깊이 불편한 감정이 있어도 평소처럼 대할 수 있는 기술이 생겼다.
  그러나 해소되지 않은 감정의 잔재로 서로 힘들어질까 염려하신 방면 임원분은 우리가 소통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각자 말할 시간을 주고 상대의 입장에서 서로가 생각해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이 부분이 가장 잘 안 되던 부분이었다. 나에게서 벗어나 상대를 생각해 본다는 것이, 말이 쉽지 마음으로 와닿지 않았고, 내 눈으로 보고 느꼈던 것만을 고집했다.
  처음 대화하며 보낸 시간이 크게 의미 없게 느껴졌다. 말해봤자 감정만 더 커진다고 생각이 들었다. 각자 가지고 왔던 감정들이 강했기에 상대의 마음을 들을 여유가 없었나 보다.
  그렇게 시간을 뒤로하고 어느 날 또 다른 임원분이 챙겨주셨다. 또다시 각자의 입장을 얘기하며 주장도 해보았지만 두 번째 이어진 대화는 선사의 입장을 더 들어보려고 했다. 그동안 생각해왔던 선사의 모습을 기억에서 지우고 지금 선사가 말하고 있는 그대로를 들으며 ‘아.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믿어보려 노력했다. ‘선사가 나로 인해 저렇게 힘든 거는 분명 나에게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 내 말투, 내 성격, 의도한 건 없다 하더라도 척이 작용하면 얼마든지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는데 내가 너무 3차원적으로만 생각한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두 번째 대화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힘없이 걸어가는 선각의 뒷모습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각의 은의를 영수불망 하라는 도전님 말씀처럼 나에게 상제님을 전해주신 분인데 나는 왜 이렇게 하고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 후 며칠이 지나고 방면 임원분 앞에서 선사와 나는 예정에 없던 세 번째 대화를 이어가게 되었다. 임원분의 “믿음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어나가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마음에 확 와닿았다. ‘내가 믿는 거구나!’ 선사 신명을 믿고 모시고 살펴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인간적인 겁액을 보고 시비하고 주장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고민하며 애쓰던 시간이 있어서인지 교화가 그제야 제대로 들리고 수도하면서 놓치고 있는 부분을 깨닫게 되었다.
  세 번째로 이어졌던 대화는 첫 번째 두 번째에 시도와 달리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순조롭게 잘 흘러갔다. 이렇게 평행선을 달리던 선사와 나는 3번의 대화 끝에야 비로소 서로를 좀 더 이해하며 가까워지게 되었고 각자의 업보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
  사람마다 경우는 다르겠지만 풀어나가려는 노력은 한두 번으로 부족하지 않나 싶다. 삼세판이란 말이 있듯 적어도 세 번은 노력해야 한다. 오(5)해는 세(3)번의 대화로 이(2)해가 되더라는 5-3=2!
  각자 살아온 환경이 곧 자신의 업보이고 그것이 사람마다 너무도 다르기에 서로를 이해하려면 큰 노력이 필요하다. 운 좋게도 상제님의 도를 만나 어떻게 하면 업보를 풀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고 있고 체계 속에서 반드시 풀어내야 할 업보들이 끊임없이 드러나는 덕화를 매 순간 입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자고로 화복이라 하나니, 이것은 복보다 화를 먼저 겪는다는 말이니 당하는 화를 견디어 잘 받아넘겨야 복이 이르느니라”
  당장에 일어나는 화는 마음에 많은 불안함을 안겨주지만 5-3=2를 대입해 하나하나 고민하고 풀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복이 내 옆 가까이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관련글 더보기 인쇄 다음페이지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