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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1년(2021)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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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회관 소개 : 부전 방면 중곡동 부전회관

부전 방면 중곡동 부전회관



출판팀


▲ 중곡동 부전회관 전경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 용마산 자락 아래에는 여러 회관이 있다. 그중 부전 방면 중곡동 부전회관을 방문했다. 중곡동 부전회관은 1983년 10월 15일 머릿돌을 설치하고, 이듬해인 1984년 11월 30일(음력 윤10월 8일) 봉안치성을 모셨다. 중곡동 부전회관은 부전 방면의 첫 번째 회관으로 역사가 가장 깊은 회관이다. 역사가 깊은 만큼 중곡동 부전회관에는 많은 사연이 담겨 있다.
  중곡동 부전회관은 건물 외벽에 대(大)자 문양이 조형되어 있다. 다만, 대자 문양이 일반적인 콘크리트가 아닌 타일로 조형된 것이 특징이다. 이 문양은 대(大)자 위에 일(一)자가 더해진 모습이라, 천(天)자로 읽히기도 하는데, 이러한 양식은 제주수련도장을 비롯해 여주본부도장의 신생활관, 대진대학교, 산하 고등학교의 건물 양식과도 같다. 이 대자 문양의 첫 시작이 바로 중곡동 부전회관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도전님께서 직접 중곡동 부전회관에 대자 문양을 조형하라고 하셨고, 이후로 지어지는 회관 대부분에 대자 문양이 조형되었다. 이때부터 대자 문양은 종단 고유의 양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1980년대 초, 종단의 규모는 20여만 호였고, 부전 방면은 2천여 호 정도였다고 한다. 그때는 중곡도장 종무원에 모든 방면의 선무 임명자까지 명단을 공고했다고 하니 그때와 지금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무렵 부전 방면은 활발히 포덕사업을 펼친 덕에 현재의 자리에 회관을 건립할 수 있었다.
  회관에서 중곡도장까지는 직선거리로 불과 500m 정도이고, 도전님께서도 회관에 납신 적이 있다고 한다. 회관이 도장과 가깝다 보니 중곡도장에서 하던 공부에 외수 자리가 부족하면 제일 먼저 연락이 갔다. 그만큼 당시에 외수 도인이 많았다. 어린이날, 어린이대공원에서 하던 ‘미아 찾기’와 같은 청년회·부녀회 활동도 중곡동 부전회관 도인들이 함께했다.


① 중곡도장과 회관은 직선거리 500m 정도로 가깝다.
② 1972년 초 중곡도장: 당시 도장 부근은 인가가 없는 산지였다.



▲ 당시의 청송 청년회, 청송부녀회와 함께  ‘미아찾기’ 봉사활동 기념 사진.



  회관이 지어질 때만 해도 도심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용마산으로 오르는 고랑 길과 아차산 방향인 영화사 길 부근엔 공터가 많았었다. 마을이 재개발되면서 회관 주변으로도 주택이 많이 들어섰다. 회관 앞 도로는 망우동까지 막혀있던 곳을 뚫으면서 넓어졌는데, 회관 인근의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앞 버스 정류장 명칭이 아직도 ‘중곡동 종점’이라는 점에서 거기까지가 도로였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시위가 심했던 1980년대 말, 무더운 여름에 창문을 열어놓고 수련을 할 때였는데 최루탄 가스가 바람에 날려와 기침이 나고, 콧물이 흐르는 상황에서도 참으면서 수련을 했다고 한다.
  회관이 길가에 위치해 외부인의 방문이 유독 많다. 물을 마시러 오는 사람,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 엄마 손을 붙잡고 1층에 있는 수족관 물고기를 보러 오는 아이 등 많은 사람이 오가는 회관이다. 심지어 식사하러 오는 사람도 가끔 있다. 회관 1층은 식당인데, 회관 현관 간판에 ‘회관’이라고 적혀있으니 식당으로 생각하고 맛있는 음식 냄새에 이끌려 회관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지금은 자율배식이지만 예전에는 식당 종사원이 테이블에 차려줬다. 그러니 식당인 줄로 알고 식사 주문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중곡동 부전회관은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회관인지도 모른다.


▲ 지하 1층: 교화용 탁자와 운동을 위한 탁구대가 놓여있다.





  상제님께서 “개문납객(開門納客) 기수기연(其數其然)”이라고 하셨듯이 사람의 집에 사람이 많이 와야 하고, 회관에도 많은 사람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로 회관 문은 굳게 닫혀 있다. 길을 가던 사람이 여러 가지 사유로 회관을 방문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회관에 용무가 있는 사람이 벨을 누르면 신원을 확인한 뒤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 처리를 한다. 회관에서는 철저한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수도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중곡동 부전회관에서는 오래전부터 도장 치성 때 올리는 술을 빚고 있다. 도장 치성과 회관 봉안치성까지 1년에 20번 정도 술을 빚고, 도장에는 치성 때마다 한 항아리를 올린다. 계절마다 술을 준비하는 기간이 다르다. 겨울에는 보름, 여름에는 열흘, 봄과 가을에는 12∼13일 전부터 준비한다고 한다. 술 빚기는 술쌀을 씻는 일부터 시작하는데, 이것이 술을 잘 빚는 첫 번째 관문이다. 이렇게 하룻밤을 불려서 고두밥을 만든다. 정성을 많이 들인 고두밥에는 태극문양이 생긴다는 것이 술을 빚는 담당자의 말이다.
  회관을 나서며 다시 보는 대자 문양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타일을 하나하나 붙여서 만든 중곡동 부전회관의 대자 문양은 지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회관이 오래되어 수리하거나, 리모델링 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대자 문양의 타일만큼은 손을 대지 않은, 처음 그대로의 모습이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중곡동 부전회관이 처음 그 모습처럼 수도의 전당으로 포덕천하의 구심점이 돼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심고 드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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