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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1년(2021)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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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이야기 : 내 삶을 지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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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지켜준…



금릉1-6 방면 교정 신소정




  방면 임원분께서 대순문예 공모전에 글을 써보지 않겠냐고 권유하셨다. 언젠가 한 번은 쓰려고 생각했지만, 나의 이야기를 쓰기엔 부끄럽다 못해 처참한 감정이 올라왔다. 어디까지 써야 할지 고민도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내 수도생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 같아 스스로 다독이며 내 인생을 되짚어 보았다.



  평범한 가정에서 막내딸로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기에 돈 때문에 힘든 경험은 없었다.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기까지도 교사인 남편 덕분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남편이 주식에 손을 대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월급이 안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사채업자들이 집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덩치들과 맞서는 건 무섭지 않았지만, 그들과 주고받는 험악한 대화가 아이들에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까 봐 걱정되었다.
  어떻게든 사채업자들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살던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전세에서 월세로 옮겨가며 점점 궁핍한 생활로 빠져들었다. 돈이란 게 무게로 다가왔다. 굴레를 쓴 것 같이 갑갑했다. 이 무게를 벗을 방법은 돈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절실했다.
  아이들이 좀 크면서 엄마의 손길이 덜 필요해지자 벌이를 찾아 나섰다. 학력도 경력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식당 주방이든 어디든 돈을 벌 수 있다면 가리지 않았지만, 체력이 버티질 못했다. 그래서 몸을 쓰지 않는 일을 찾아 다단계 판매에 발을 들였다. 아는 사람이라면 친척에서 동창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정말 열심히 쫓아다닌 덕분에 돈을 좀 만졌다. 버는 족족 빚을 갚았다. 그런데 갚으면 갚을수록 빚이 더 늘어났다. 남편은 일확천금의 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교사라는 직업이 대출 한도를 보장해주었던 탓이었다.
  많이 힘들었다. 생각해보면 나를 힘들게 만든 것은 돈이었다. 하지만 돈이 두렵지는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을 안긴 아빠를 미워하는 아이들과 이런 남편과 계속 살아야 할지, 헤어진다면 과연 남편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미운 감정이 생길 때도 있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아무렇지 않은 듯 보낼 수 있을지… 그러다 우리 가정이 흩어질까 두려웠다. 내 삶이 무너지는 게 두려웠다. 그나마 고향 친구 소개로 도를 만난 것이 다행이었다.
  도는 나에게 선각을 선물했다. 답답한 내 현실을 어디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건만 부끄러운 가정사라 말할 수가 없었다. 부모 형제가 알면 속상할까 걱정되었고 친구나 주변 사람이 알면 술자리 안줏거리가 될 것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선각에겐 무슨 얘기라도 할 수 있었다. 선각은 내 이야기를 잘 들어 주었고 누구에게 내 이야기를 옮길까 걱정되지 않았다.
  속이라도 시원하니 힘이 났다. 선각은 힘든 내 상황이 남편 때문이 아니라 내가 겪어야 하는 나의 업보라고 했다. 내게 원한이 있는 척이 남편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라고. 상제님께서 해원신으로 오셨으니 수도를 하면서 척을 풀어가자고 했다. 그리고 현실적인 조언도 해주었다. 빚을 갚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이자만 내고 생활할 수 있다면 오히려 빚을 안고 살라고 했다. 경제적으로는 어려울지 몰라도 가정이 무너지지는 않을 거라고….
  이해할 수 없는 조언이었다. 빚이 없어야 가정이 지켜질 건데 그런 빚을 안고 살라니. 처음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나를 힘들게 하는 빚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나고 몇 년의 시간이 흘러도 내 생활은 그대로였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살아왔는데 이대로 더 가다간 뭐라도 부러질 것 같아 내 인생의 고삐를 당겼다.
  그제야 선각의 조언이 조금씩 이해되었다. 빚을 갚으면 대출 한도가 생기고 그러면 또 남편은 일확천금의 꿈을 꿨다. 그렇게 계속 빚이 느는 악순환인 거다. 귓바퀴에 스쳤던 선각의 교화가 머리를 거쳐 마음의 문을 열었다. 온 힘을 다해 쥐고 있던 마음의 주먹을 서서히 풀었다. 그리고 상제님께 매달리기 시작했다. 선각은 늘 그렇듯 나를 살펴주었고 나도 포덕에 마음을 쓰고 수도하려고 노력했다. 수도에 전념하지는 못했지만, 삶에 변화가 생겼다.
  벌써 몇 년째 정부가 운영하는 연구소에서 현장 조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아이들도 다 컸다. 큰아들이 결혼할 때 집은커녕 방 한 칸 마련할 돈도 못 해줬다. 게다가 살던 집을 처분하는 바람에 대학을 졸업한 막내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독립하게 되었다. 자식이라고 둘뿐인데 해준 것이 없어 부모로서 미안하고 부끄럽다. 아직도 빚이 있어 여전히 힘들긴 하지만 남편과 이혼하지 않았고 우리 가정은 무너지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들도 성인이 되어 자기 삶을 살고 있다.




  남편과 아이들이 입도했다. 손자 손녀도 생겼다. 손주들이 아플 때 애들을 안고 심고 드리는 시어머니를 이해해 주는 며느리. 이제는 퇴직한 남편이 출근하는 며느리 대신 손자 손녀를 본다. 이렇게 우리 가정이 지켜지고 있는 게 다 상제님의 덕화구나 싶다.
  내 삶이 힘들긴 했어도 그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힘들었던 지난 시간 덕분인지 사람들을 만나 교화하면 진심으로 그 사람이 잘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일어난다. 돈이나 사람 관계 때문에 힘들다는 사람을 만나면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 선각들도 직접 겪은 사람만이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말해 주신다.
  지난 시간을 돌릴 수는 없겠지만 좀 더 일찍 선각의 말씀을 들었다면 내 삶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본다. 어쩌면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았더라면 도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입도는 했더라도 이렇게까지 따라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내가 걸어온 지난 삶이 조상님께서 자손을 도문에 넣으려고 짜놓으신 각본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이제는 수도에 더 마음과 시간을 쏟으려고 노력한다. 코로나19 때문에 다닐 곳이 없으니 기도를 챙겨서 모시게 되었다. 또 선각과 수반을 자주 만나지 못하니 오히려 예전보다 더 자주 통화한다. 덕분에 소식을 잘 알고 더 친밀함을 느낀다. 위기도 기회라는 말이 떠오른다. 내 삶의 위기가 나를 수도하게 했고 성장하게 했다. 세상엔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제 그런 사람을 찾아서 내 삶을 지켜준 대순진리를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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