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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7년(2017)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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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대순진리회의 종통(宗統)

대순진리회의 종통(宗統)
 
 
교무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Ⅰ. 종통 이해의 중요성
 Ⅱ. 종통이란 무엇인가?
    1. 법리적 정통성
    2. 천부적 신성성
 Ⅲ. 종통계승
    1. 상제님의 종통 공사
    2. 도주님의 종통계승 
    3. 도전님의 종통계승
 Ⅳ. 종통과 연원(淵源), 연운(緣運)의 관계
    1. 종통과 연원
    2. 연원과 연운
 Ⅴ. 종통과 도법
 
 
 
 
  오늘날 세계는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속에서 자연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들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들과 석학들은 그 해답을 찾고 있지만 명확한 해결책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 해답을 제시해야만 하는 세계의 전통 종교들조차 그 해답을 제시하기는커녕 오히려 분쟁의 주도자, 조력자로 역할하며 인류의 안녕과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20세기 초 이러한 상황을 이미 예견하고 그 해결책을 마련해 놓은 대순사상이 전 인류가 지향해야 할 진리로서 서서히 부각되고 있음은 의당 자연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바야흐로 새로운 포덕천하의 기운이 도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덕천하를 향한 큰 걸음을 떼어야 할 이때, 헛된 욕심 때문에 그릇된 길로 빠져든 배도자들이 적발되어 엄중한 징계를 받은 사건이 최근에도 발생하였습니다. 그것은 헛된 망상과 욕심에 사로잡혀 불순한 의도로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많은 도인들을 현혹하고 사지로 몰고 가는 삿된 난법자들이 아직도 도인들 주변을 맴돌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난법자들은 『전경』의 양위 상제님 말씀과 도전님의 훈시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여 종통에 대해 조언비어와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세력을 규합하였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일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상식과 진리에 비추어 보면, 종단의 존립 근거이며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연원과 종통을 왜곡하고 부정하고 있으니 천인공노할 난법난도의 극치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통에 대한 조작으로 수도인들을 현혹하는 자들이 대순진리를 심하게 왜곡하고 있으며, 또한 도통을 이루기 위한 수도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난법자들이 대순진리와는 전혀 다른 법과 교리를 만들어 난법난도를 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천자를 도모하고자 하는 데에 있음을 정확히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대순진리를 왜곡하는 무리들이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의 덕화를 손상하는 일을 좌시할 수 없으며, 순수한 수도인들이 이들의 조언비어에 현혹되는 일을 방치해서도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종통에 대해 올바르게 알고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Ⅰ. 종통 이해의 중요성
 
  대순진리는 유일무이한 진리이며 우주대원의 진리입니다. 몇몇 난법자들의 난동으로 이 진리 자체가 바뀌거나 파괴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상제님께서는 “천자를 도모하는 자는 모두 죽으리라”는 말씀으로 난법을 경계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수도인들이 천자를 도모하는 난법자들의 난동에 현혹되어 자신의 운명을 그르치게 됨을 또한 경계하신 것입니다. 도전님께서도 수도인들이 난법에 현혹되면 도통에 이를 수 없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01
  수도인들이 난법자들에게 현혹되는 원인은 표면적으로는 불만이나 갈등, 그리고 금전적인 유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전님께서는 “모든 도인들은 종통을 바르게 알아야 유언비어나 조언비어로 마음을 현혹하더라도 흔들림이 없을 것”02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난법자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종통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통에 대해 바르게 알지 못하면 조언비어에 쉽게 현혹됩니다. 이는 종통 자체가 대순진리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도전님께서 『대순지침』에 대순진리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통을 바르게 알아야 함을  명시하신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03 ‘종통이란 도의 생명이며 진리’이며 “종통이 바르지 못하면 법이 있을 수 없고 경위가 바로 설 수 없으며, 그러므로 그 속에서는 생명이 움틀 수 없고 만물만상을 이루어 낼 수 없다”04고 하신 것도 종통과 대순진리가 불가분의 관계임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도인들이 종통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도의 생명과 진리를 놓쳐 대순진리를 잘못 이해하게 되며, 난법자들의 교묘한 논리에 쉽게 현혹되어 수도의 목적인 도통을 이룰 수 없게 됨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수도의 목적인 도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종통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도전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도에는 법이 있고 제도가 있다. 이걸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옳고 좋다는 것만 알면 쉽다. 모든 것을 참고 이겨 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법이라는 것이 도다. 상제님,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받들고 믿는 것이다. 옳고 좋다는 것을 안다면 무조건 받들어야 한다. 도의 진리, 대순진리뿐이다. 믿는다는 것에 절대 자기 뜻대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도의 법방(法方) 아래에서 움직여야 한다. 도인은 절대 딴 마음 먹어서는 안 된다. (1991년 2월 12일 훈시)
 
  이 말씀은 도법이 바로 대순진리이며 대순진리에 따른 수도로써만이 도통에 이를 수 있음을 밝혀주신 것입니다. 수도인들이 수도의 목적인 도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항상 상제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언행과 처사가 일치되게 생활화해야 한다”05고 하신 것도 대순진리에 따라 짜여진 도법을 제대로 알고 지켜야 도통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결국 도전님께서 종통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취지는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 바로 대순진리를 바르게 알고 지키기 위해서는 종통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도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그 수호를 위해 종통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난법자들이 종통계승자임을 주장하며 자신에 의해 도가 완성되고 도통을 이룰 수 있다고 운운하는 행위는 사실상 도전님께서 종통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본래의 취지인 도법의 수호와는 완전히 어긋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Ⅱ. 종통이란 무엇인가?
 1. 법리적 정통성
 
  종통이란 어떤 종단을 다른 종단과는 구별되게 하는 그 종단만의 독특한 신앙체계(교리, 교법, 종교사상, 조직)가 계승 발전되는 인적 계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종통 연구는 어떤 종단의 신앙체계의 특징을 알고자 하는 동기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종단 내에서는 정통성과 관련하여 올바른 계통을 밝힘으로써 창시자가 추구한 본래의 가르침과 목적을 지키고자 하는 취지에서 종통에 대한 연구가 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종교 사상이나 학설의 경우 후세로 내려가면서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과 지역 환경의 특성에 따라 그 본래의 모습에 변형이 일어나 삿된 것이 생기며 원래의 취지가 손상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종단의 입장에서 보면 종통은 신앙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모든 종단은 그 나름의 종통, 즉 창시자와 계승자의 계보를 밝혀 이를 중심으로 법리적 정통성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리 종단 역시 설립 초기부터 종통에 대해 명확히 표명해 왔습니다. 종단 대순진리회 설립 이후 종통이란 용어가 사용된 최초의 공식적 자료는 『대순진리회요람』입니다. 도전님께서는 『대순진리회요람』에 상제님에서 도주님 그리고 도전님으로 계승된 종통을 중심으로 종단의 연혁, 즉 역사를 새로이 찬술하셨습니다. 그러나 교리와 교법 등 요체에 있어서는 도주님이 1956년 발간하신 『태극도 통감』의 내용을 그대로 쓰셨습니다. 즉 『대순진리회요람』은 도주님이 재세 시에 설법하시고 체계화하신 교리와 교법을 근간으로 종단 대순진리회의 신앙체계와 그 역사를 설명한 것입니다. 이것은 곧 도전님께서도 법리의 전승이 바로 종통계승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결국 도전님이 종통의 중요함을 말씀하신 취지는 바로 법리적 정통성의 수호인 것입니다.
  대순진리회의 종통이 법리적 정통성의 관점에서 살펴져야 함은 대순진리회의 종통계승 방법에서도 분명합니다. 『대순진리회요람』은 도주님 종통계승의 구체적인 역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一九一七년[정사년(丁巳年) 二十三세시(歲時)] 二월 十일에 입산공부(入山工夫) 하시던 도주 조정산(道主 趙鼎山)께서는 강증산 상제(姜甑山上帝)의 대순진리(大巡眞理)에 감오득도(感悟得道)하시고 종통계승(宗統繼承)의 계시(啓示)를 받으시다. (p.12)
 
  이에 따르면 우리 종단의 종통계승은 상제님과는 직접 만나지 않으신 도주님께서 상제님의 대순진리를 감오득도하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대순진리란 도주님이 감오득도, 즉 계시로써 깨달아 얻으신 상제님의 진리인 것입니다. 이 사실은 종단 정통성의 근원이 대순진리를 깨달아 얻음에 있으며 다른 어떠한 것도 이보다 중요할 수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전님께서는 이를 훈시로써 다음과 같이 명확히 하셨습니다.
 
종도들 중에서 상제님의 도덕을 펼친 사람이 누가 있느냐? 오직 도주 옥황상제님께서 하시지 않으셨느냐! 도주님께서 창도하시고 펴놓으신 것이 세상에 알려지고 있지 않으냐! (1991년 2월 12일 훈시)
 
  결국 우리가 대순진리회에서 수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구천대원조화주신(九天大元造化主神), 즉 하느님께서 강증산 성사로 이 땅에 강세하여 펼치신 우주대원의 진리를 오직 도주님만이 온전히 감오하시어 그 진리와 진법을 밝히고 세우셔서 그 도덕을 펼치셨고, 이 진리와 진법을 오직 도전님께서만 계승하셔서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셨음을 인정하기 때문이지 세간의 신비적 예언이나 도참설 때문은 아닌 것입니다.
  상제님 화천 후, 상제님을 따랐던 종도들은 상제님의 유지(遺志)와 사상을 잘못 이해하여 제각기 자신들이 정통임을 주장하면서 많은 교파들을 만들었는데, 상제님의 진리와는 관계없는 참위설을 이용하여 정통성을 주장하고 종통을 주장했습니다. 이 교파들은 현재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남아있는 경우에도 이들의 활동은 상제님의 진리인 해원상생의 모습과는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은 이들의 교리가 비결이나 참위에 기반함으로써 인류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주도하는 종교적 진리로 완성되지 못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상제님의 유지를 정확하고 완전하게 깨달으신 도주님이 선포하고 완성하신 이법(理法)인 대순진리는 이제 하나의 국가를 떠나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뛰어난 종교 사상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사실에서 보더라도 종통에 있어 법리적 정통성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대순진리를 참된 진리라고 인정하는 근본적 이유는 바로 누구도 밝히지 못했던 전무후무한 구천상제님의 삼계대순 개벽공사의 실상을 드러내어 대순진리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깨우쳐 주신 도주님의 설법, 즉 법리의 정통성에 있는 것입니다. 오직 도주님만이 강세하신 강증산이 구천상제님이시며 상제님의 진리가 해원상생, 보은상생의 이법(理法)이라고 밝히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난법자들이 『전경』의 몇 글자를 뽑아내어 왜곡하고, 다른 종교의 경전과 비결서 등에서 자신의 이름, 생일, 신체상 특징, 출신지 등과 비슷한 내용을 도용해 자신이 종통을 계승하였다고 주장하는 행위가 종통의 본래 의미와는 매우 어긋나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종통이란 창시자와 계승자 간에 이루어지는 법리 계승의 계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의 종통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져야 도전님께서 종통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취지에 맞도록 대순진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어 수도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2. 천부적 신성성
 
  하지만 대순진리회에서의 종통은 그 법리적 정통성의 확립이라는 점에서만 중요시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측면은 천부적 신성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순진리를 선포하신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께서 대순진리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알면 종통의 천부적 신성성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도전님께서는 『대순지침』을 통해 대순진리를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우주대원(宇宙大元)의 진리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06 이것은 상제님께서 “대개 나의 공사는 옛날에도 지금도 없으며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오.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오.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이니라”07 하신 것으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즉 상제님의 종교적 법리는 운수에 없었던 일로 기존의 우주운행의 원리와 여기서 비롯된 여러 종교적 교리와는 전혀 다른 전무후무한 것임을 확실히 하고 계신 것입니다. 도주님 역시 “오도자 금불문 고불문지도야(吾道者 今不聞 古不聞之道也)”08라는 말로 대순진리의 전무후무함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상의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의 말씀에서 대순진리가 기존의 종교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그 교운의 전개라 할 종통 역시 기존의 법과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이를 “판 밖에서 성도하게 되었느니라”09는 말씀으로 밝혀주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우리는 상제님의 도가 기존 제도나 종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계승되고 완성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대순진리회의 종통은 기존 종교의 종통과는 전혀 다르게 세워지고 계승되는 것입니다.
  사실 기존 종교의 종통은 창시자와는 역사적으로 먼 후대에 정치적, 사상적인 주류로 등장한 종파에 의해 구축되고 설명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유교의 도통(道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그 사상이 전해지는 정통적인 계보를 도통(道統)이라고 하는데 이 도통이라는 말 역시 유교의 한 학파라 할 수 있는 성리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중국의 주희(朱熹)나 조선의 송시열(宋時烈)은 도통론(道統論)을 통해 자신들 학파의 이념적 정당성을 확보했습니다. 유교의 종통이라 할 도통론의 근거는 『맹자(孟子)』에서 시작되는데, 도통이 요(堯), 순(舜), 우(禹), 탕(湯), 문왕(文王), 공자(孔子) 순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한유(韓愈, 768~824)는 그의 저서 『원도(原道)』에서 맹자의 도통에 대하여 공자 앞에 무왕(武王)과 주공(周公)을 더하고, 공자의 도가 맹자로 이어지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여기에 주희가 공자 뒤에 증자(曾子)와 자사(子思)를 추가하고, 이것이 맹자를 거쳐 자신의 스승인 정호(程顥), 정이(程伊)에게 이어진다고 하여 도통을 확립했습니다.
  이렇게 후대에 성리학이 유교의 주류로 등장하면서 형성된 유교의 종통인 도통론은 단순히 계보의 파악이 그 목적이 아니었으며, 정통론(正統論), 명분론(名分論)의 의미를 이미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성격은 송시열이 전개한 주자도통주의(朱子道統主義)를 통해 볼 수 있는데, 송시열은 명나라가 오랑캐인 청나라에 의해 망함으로써 공자로부터 이어진 주자의 도통이 우리나라로 계승되었으며, 그것은 율곡(栗谷) 이이를 거쳐 자신에게 이어졌다는 주자도통론을 표방하면서 이를 통해 숭명의리(崇明義理) 반청북벌(反淸北伐)의 이념적 정당성을 확보하여 서인(西人) 노론(老論)계열이 정치운영의 주도권을 장악해가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10 조선에서의 이러한 도통론 전개는 결국 주자학의 절대화, 주자성리학(朱子性理學) 이외의 여러 학문에 대한 탄압을 초래해 조선의 사상계가 성리학 일변도의 경직성을 가지게 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는 유교의 시조인 공자의 뜻한 바와는 관계없이 유교의 종통이 성립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기독교의 경우도 이와 같습니다. 초기 기독교의 종통이라 할 교황제도 역시 로마 황제가 로마제국의 정신적 통합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개최한 몇 차례의 종교 공의회에서 삼위일체론 등의 기독론이 세워지는 과정을 통해 정립된 것입니다. 초기의 중요한 공의회는 니케아 공의회와 칼케톤 공의회 등이 있는데, 이 공의회에서 로마교회의 견해가 정치적으로 승리하면서 로마의 주교가 교황으로 불리워지게 되었고 후에 정통으로 인정되는 기반이 마련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이단으로 몰리는 종파는 추방되고 지도자는 유배되었습니다.
  16세기의 종교개혁 역시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여러 세기 동안 교회, 특히 교황청이 서유럽의 정치생활에 깊이 관여하면서 늘어난 교회의 권력과 부는 많은 음모와 정치 공작을 낳았고 그 결과 교회는 타락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한 반발로 교회의 윤리적 · 신학적 개혁을 주장한 개혁가들이 등장하였는데, 이들과 교황 간의 논쟁이 당시의 민족적 갈등 그리고 왕권 과 교황권의 충돌과 관련되며 정통성의 문제로 표출된 것이 종교개혁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황과는 정치적으로 대립해 있었던 북유럽의 왕과 영주들은 교황의 권위는 부정하지만 기존의 여러 카톨릭적 전통을 인정하는 루터파를 지지했고, 왕이 약하고 귀족은 강했으며 도시의 수효가 적은데다 종교 다원주의가 오랫동안 유지되던 동유럽에서는 보다 더 급진적인 다양한 개신교 종파들이 주류를 차지했으며, 정치적으로 교황과 친밀했던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반종교개혁이 활발하게 일어나 카톨릭이 그 정통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종교개혁에서의 정통성 논쟁 역시 역사적인 정치 경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기독교의 종통 역시 기독교의 창시자인 예수가 본디 말한 가르침과는 별 상관없이 등장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유교와 기독교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기존 종교의 종통이란 창시자의 뜻과는 별개로 성립되었습니다. 후대(後代)의 역사적 변화 속에서 통치자는 사회, 정치적인 의도에서 특정 교단이나 교파의 정통성을 공인하여 그 교단을 이용함으로써 정치적인 정당성을 확보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국가로부터 공인받는 교단이나 교파는 국가 권력과 손잡고 국가의 행정조직과 교육제도를 장악하였으며 이를 통해 다수 국민의 신앙을 얻은 연후 정통성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기존 종교의 종통은 대부분 이러한 과정으로 구축되었습니다. 따라서 그 종통은 창시자의 뜻과는 다르며 인위적인 것이 대부분입니다. 도전님께서 “우리 도(道)는 신도(神道)임을 누차 말하였으나 깨닫지 못함은 신도(神道)와 인위적(人爲的)인 사도(邪道)를 구별하지 못한 까닭이다”11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정통성 주장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순진리회의 종통은 후대에 정치 사회적으로 성립된 인위적 정통성의 의미와는 엄밀히 다른 것입니다. 대순진리에 있어서 종통이란 이미 정해져 있는 천부적인 것입니다. 도전님께서는 종통의 이러한 성격을 “일반사람들이 주고받는 상속이 아니라 하늘에서 천부적으로 이어져 오는 신성성이며 연속성”12이라고 하셨습니다. 상제님께서 대두목 공사를 보시고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리라”13고 하신 것도 바로 종통의 천부적인 성격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종통의 천부적 신성성이란 상제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신성한 계보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상제님의 뜻을 받아 그 교법을 완성하고 계승하는 계보가 이미 정하여져 있다는 뜻입니다. 상제님이 인정하신 종통계승자만이 상제님의 뜻을 이어 받아 올바른 이법을 완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상제님께서 교단을 만들지 않으시고 교리와 교법을 체계화 하지 않으신 가장 중요한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장차 진법이 나리라”, “앞으로는 진법이 나오리라”, “다시 진법이 나오게 되리라”하신 것이 이러한 뜻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14
  이상에서 우리는 대순진리회의 종통에는 기존 종교와는 다른 천부적 신성성이란 의미가 있으며, 이것은 바로 상제님의 뜻을 계승하여 진법을 완성하는 계승자가 이미 천부적으로 정하여져 있으며 천부적 계승자의 진법에서만이 상제님의 종교적 법리의 실상을 온전히 알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도전님께서 “종통이란 도의 생명이며 진리이며 종통이 바르지 못하면 법이 있을 수 없고, 경위가 바로 설 수 없으며 그러므로 그 속에서는 생명이 움트지 못하여 만물만상을 이루어 낼 수 없다”고 하신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종통이란 도의 생명이며 진리’라는 말씀은 종통이 도의 요체이므로 종통을 모르면 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또한 종통이 없으면 도가 없으며 종통에서 대순진리의 모든 것이 비롯되었으므로 종통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며 천부적인 신성함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종통이 바르지 못하면 법이 있을 수 없고 경위가 바로 설 수 없으며 그러므로 그 속에서는 생명이 움트지 못하여 만물만상을 이루어 낼 수 없다”라는 말씀은 종통이 바르지 못하면 난법이 되어 성공할 수 없음을 밝히신 것으로 종통이 진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결국 도전님의 훈시는 종통이란 법리가 계승되는 천부적인 계보임을 말씀하신 것이라 결론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종통이란 무엇인가를 알아보면서 우리는 대순진리회의 종통을 두 가지 관점, 즉 법리적 정통성과 천부적 신성성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두 가지 관점에서 종통의 의미를 파악하여 종통을 종합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종통이 계승되는 과정에서 종교 법리적 정통성이 어떻게 확립되고 천부적인 신성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본다는 뜻입니다. 종통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때 우리는 다른 종교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순진리만이 가진 독특함을 깨달아 대순진리를 바르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에 계속)
 
 
 

01 수도의 목적은 도통이니 수도를 바르게 하지 못했을 때는 도통을 받을 수 없고, 도통에는 허령과 진강이 있어 수도의 제 규정을 엄수하고 삿된 방법을 취하지 않아야 청정의 경지에 이를 수 있으며, 만약 삿된 방법을 감행하면 욕심이 앞서 정기(正氣)는 물러가고 사기(邪氣)가 선동하여 허령(虛靈)이 되어 진강(眞降)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대순지침』, p.37, p.40 참조.)
02 ≪대순회보≫ 5호, p.2.
03 『대순지침』 1장은 ‘대순진리의 바른 이해’이며 그 1절은 ‘종통을 바르게 이해하라’입니다. 따라서 대순진리를 이해함에 있어 종통에 대한 바른 이해가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04 ≪대순회보≫ 5호, p.2.
05 『대순지침』, p.39 참조.
06 『대순지침』, p.17, p.23 참조.
07 공사 1장 2절.
08 교운 2장 18절.
09 교운 1장 17절.
10 이규경(李圭景)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藁)』에서 우리나라 유학의 도통을 정몽주(鄭夢周), 길재(吉再) 김숙자(金叔滋),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이이(李珥), 성혼(成渾), 김장생(金長生),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권상하(權尙夏), 윤봉구(尹鳳九)로 설명합니다.
11 『대순지침』, p.39.
12 《대순회보》 10호, p.2.
13 교운 1장 41절.
14 교법 1장 18절, 3장 37절, 교운 1장 42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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