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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길 : 제주수련도장 연수의 상징적 의미 (Ⅱ)

제주수련도장 연수의 상징적 의미 (Ⅱ)
 
연구위원 이승목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제주수련도장 건립과 연수의 시작
Ⅲ. 가장 작은 도(道), 가장 큰 도(島)
    1. 도(道), 세 가지 선물
    2. 도(島), 포한(抱恨)의 자취
Ⅳ. 물[水]과 불[火] 그리고 해원(解冤)·선경세상
     (仙境世上)으로의 행보
    1. 물[水]의 행보
    2. 불[火]의 행보
    3. 해원(解冤)과 선경세상(仙境世上)으로의 행보
    4. 연수 행보가 갖는 상징적 의미
Ⅴ. 나오는 말

 
▲ 성산일출봉
 
 
Ⅳ. 물[水]과 불[火] 그리고 해원(解冤)·선경세상(仙境世上)으로의 행보
 
3. 해원(解冤)과 선경세상(仙境世上)으로의 행보
  지금까지 수와 화의 행보를 통해 우리 도의 연원의 맥과 종통의 상징적인 의미를 살펴보았다면, 이제는 선경(仙境)으로의 행보 차례이다. 우리 도에서 지향하는 세계는 정신계와 물질계를 비롯한 천·지·인 삼계가 모두 도통(道通)하여 인간은 지상신선(地上神仙)이 되고, 천지는 선경세상(仙境世上)으로 화(化)한 단계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선경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선결돼야 할 과제가 있다. 곧 상제님의 유지(遺志)이신 해원(解冤)이 바로 그것으로, “한 사람이 원한을 품어도 천지기운이 막힌다”(공사 3장 29절)라고 하셨듯이 연수의 행보를 이어가는 지역은 신과 인간에게 쌓인 원과 한을 풀어주기 위한 과정이다. 그 가운데 용두암, 산방산의 용머리해안, 항몽유적지 등이 해원을 위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 용두암
 

  제주 북쪽의 용두암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라면, 제주 남쪽의 용머리해안은 용이 해수(海水)에서 막 승천하려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민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런데 두 용의 내려오는 전설을 보면, 목적은 같지만 그 과정이 상당히 다르다. 용두암의 용은 백록담에 살던 이무기로 하늘로 승천(昇天)하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다. 한라산 신의 옥구슬을 가지면 승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용은 그 옥구슬을 몰래 훔쳐 내려왔으나, 지금의 용두암 자리에서 그만 발각되어 수천 년의 꿈인 승천이 좌절되고 만다. 용은 승천하지 못한 한과 고통으로 몸을 뒤틀며 울부짖다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산방산 용머리해안의 용은 진시황이 산방산의 용머리해안 형세가 왕이 나타날 훌륭한 곳임을 알아차리고 고종달(또는 호종단)이란 사람을 보내 용의 꼬리 부분과 잔등 부분을 칼로 끊어버렸다. 이때 바위에서는 피가 흘러내렸고, 며칠 동안 한 맺힌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두 용은 백록담과 해안에서 각각 그 오랜 시간을 수심연성(修心煉性)해 왔기에 승천이 이뤄져야 마땅하나, 끝내 둘 다 승천하지 못해 원한이 쌓였다. 용머리해안 용이 타인의 야욕(野慾)에 의해 뜻이 좌절되었다면, 용두암의 용은 스스로 원한을 남긴 경우다. 비록 인간의 원한과 경우는 다르지만 오색(五色)을 마음대로 변화시키는 조화능력과 특히 물과 깊은 관계를 지닌 수신(水神)으로 신앙되는 신성한 영물(靈物)이기에 이 용의 포한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을 포함한 모든 만물이 가지고 있던 원이 상생의 원리로 풀려야 후천선경으로 넘어가기가 더욱 쉬울 것이며, 진실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상제님의 유지를 좇는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열어 놓으신 후천선경에 이르도록 힘써 수도하며, 천지의 만물과 천하 창생들에게 그 길을 알려주어 함께 가는 것이 바로 도인들이 해원이라는 행보를 내딛는 의미일 것이다.
 
▲ 산방산 용머리해안
 

  또 하나 해원으로의 행보가 이뤄지는 곳은 고려 후기 삼별초(三別抄)가 4년간 몽고의 침략에 저항하여 싸운 마지막 전적지(戰迹地)인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다. 항파두리란 강화도에서 진도로 다시 제주도로 건너와 몽고에 저항한 삼별초가 머물던 군사기지를 일컫는다. 삼별초는 정의가 깃들어 있는 새 세상 건설과 고려인의 자주정신의 발로, 그리고 항몽 의식의 정수를 보여주었지만, 700여 년 동안 독자적인 무력 항몽이 호국충정의 발로로 인정받지 못했다. 고려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몽고의 무력 침공에 굴복하지 않고 자주 국가를 이루기 위해 목숨을 초개(草芥)처럼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동안 난(亂)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오랜 시간 난으로 평가절하 받았으니 그 원이 창천(漲天)하였을 것이며, 백성을 위하고 자주 국가 건설이라는 뜻도 이루지 못했으니 그 한(恨) 또한 구천(九天)에 사무쳤음은 물론이다. 이에 그들의 원을 풀어주기 위해 도인들은 항몽유적지의 유적들을 보며 그들의 충혼을 되새기고 후천선경건설에 일심으로 동참할 것을 다짐하며 그들이 꿈꾸었던 새 세상의 행보를 내디뎠던 것이라 하겠다.
 
▲ 항몽유적지
 

  상제님의 유지인 해원이 되면서 다가오는 후천의 선경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를 한림공원의 행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림공원01은 1971년 한림읍 인근의 불모지(不毛地) 위에 야자수와 관상식물을 심으면서 조금씩 규모가 커져 현재 9개의 테마[야자수길, 산야초원, 협재·쌍용굴, 석·분재원, 민속마을, 사파리조류원, 수석관, 연못정원, 아열대 식물원]를 담은 대규모 공원이다. 특히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접하기 힘든 아열대 식물이 사시사철 자생하고 있어, 후천의 환경조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협재굴·쌍용굴에서는 백호와 용을 통해 후천의 상징적인 면들을 보이고 있다. 백호는 서(西)쪽을 담당하는 서신(西神)이자, 오행(五行)으로는 4·9금(金), 오상(五常)으로는 의(義), 색으로는 백색(白色)이며 계절은 가을[秋]을 가리킨다. 여기서 서신을 다른 말로는 금신(金神)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서쪽이 오행으로 금(金)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한림공원 쌍용굴
 

 『훈몽자회(訓蒙字會)』에 의하면 용(龍)의 순수 우리말은 ‘미르’이며 미르는 ‘물’을 뜻하기도 한다. ‘미르’는 ‘미륵불’의 어원과도 상통하여 미륵을 상징하기도 한다.02 그리고 진표율사가 금산사 미륵전의 방향을 정할 때 용의 방향을 의식하여 정했고 용이 살던 연못인 용소(龍沼) 위에 지었으며 용화삼회(龍華三會)의 설법장이 금산사 미륵전임을 나타내기 위해 2층에 용화지회(龍華之會)라는 현판을 걸었다. 또 금산사 미륵금불이 손에 용의 상징물인 여의주를 쥐고 있다는 것과 미륵이 출현하는 이상세계인 용화회상(龍華會上)에도 용 자가 들어가 있다는 것은 용이 미륵불과 용화세계를 상징하는 영물(靈物)임을 말해준다.03
  미륵불과 용화세계는 후천선경을 말한다. 또한 9개의 테마 중 두드러지는 곳은 제주 민속마을로, ‘삼다(三多)’, ‘삼무(三無)’, ‘삼보(三寶)’를 통해 우리 도(道)의 후천선경(後天仙境)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경』 예시 81절에서 알 수 있듯이 의(衣)·식(食)·주(住)의 걱정이 없고 세상 사람들 모두 한집안 식구가 되어 도둑·거지·대문이 필요 없는 후천의 세상이 도래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4. 연수 행보가 갖는 상징적 의미
  연수의 행보가 갖는 상징적 의미의 시작은 “도(道)가 음양이며 음양이 이치이며, 이치가 곧 경위이며 경위가 법이라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04는 도전님 말씀에 있듯, 제주수련도장 연수는 도의 원리인 음(陰)과 양(陽)의 지역으로 볼 수 있다. 곧 음의 기운을 대표하는 것으로는 수(水) 즉 3대 폭포인 천제연(天帝淵)·천지연(天地淵)·정방(正房) 폭포가 있고, 양의 기운을 대표하는 것으로는 화(火) 즉 3산(山)인 산굼부리·성산일출봉·한라산이 된다.
  수(水)는 오행(五行)의 하나로 만물의 근원(根源)이면서 이치의 근원이기도 하다. 태극이 운동하여 음양을 낳고 음과 양이 변화하고 화합하여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의 오행(五行)이 생기고 오행의 기운이 골고루 퍼져 사계절이 운행하고 만물이 순환한다. 이 오행의 변화·순환원리는 수(水)가 생(生)·장(長)·염(斂)·장(藏)하는 것이므로 수가 만물의 근원인 것이다.05 수가 만물의 근원이므로 이치 또한 1·6수(水)에서 나온다. 선천의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물에서 나왔고 후천대도의 이치도 물에서 나온다. 진표율사(眞表律師)가 금산사의 미륵금불을 용소 위에 세운 것은 이를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후천대도인 대순진리는 연원에서 나오며 연원은 ‘못 연(淵)’, ‘근원 원(源)’이다. 연원은 하나의 진리가 어디에서 근원하는 것인가를 나타내는데, 대순진리의 근원을 연원이라고 하고 연원의 진리가 전승되는 연원의 맥을 종통이라고 한다. 따라서 연원과 종통은 하나이며 분리될 수 없다.
  이 연원은 바꿀 수도 고칠 수도 없으며 연운과 다르다. 도인들은 연원을 따라 입도한 후에 전도인(傳道人)과 연운의 상종관계(相從關係)가 형성된다. 도인들의 연운은 각기 다르지만 연원은 오직 상제님·도주님·도전님으로 모두에게 같다. 연원이 세 분이신 이유는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진다”(예시 87절)는 상제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연원의 진리가 수세대에 걸쳐 완성되기 때문인데 상제님의 진리가 도주님과 도전님을 통하여 차례로 정립· 전수되고 실현되기 때문이다. 즉, 상제님께서는 9년간의 천지공사를 통하여 후천선경을 건설하실 천지도수를 물샐틈없이 짜놓으셨고 도주님께서는 종통을 계승하시어 50년 공부로 수도의 목적을 완성할 수 있는 삼계의 진법을 설정하셨으며, 도전님께서는 유명으로 종통을 계승하시어 진법을 실천하여 상제님의 뜻을 구현할 수 있는 수도의 장을 마련하셨으므로 상제님·도주님 ·도전님이 연원이신 것이다.
  화(火) 또한 도전님께서 양산이신 상제님과 도주님의 유지와 유법을 받들어 대도를 현창하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므로 종통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시루의 이치로 오신 상제님의 존호이신 증산(甑山: 시루산)에서 그 의미를 일치시킬 수 있는바 제주도 중심인 한라산에서 산굼부리와 성산일출봉이 일직선 상에 있는데 산굼부리는 상제님을 상징하고 성산일출봉은 도주님을 상징하는 데서 우리 도의 종통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상제님의 신격을 구천상제로 유일하게 알아보신 분이 도주님이시고 도주님의 진법을 구현하신 분이 도전님이시기에 도주님을 모르고서 상제님의 진리를 알아볼 수 없고, 또한 도전님이 아니고서는 도주님의 진법을 구현할 수 없기에 세 분이 진리의 근원이자, 우리 도의 종통인 것이다.06 이렇듯 상제님·도주님·도전님으로 이루어진 연원과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연원과 종통의 진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던 곳이 바로 제주다.
  제주수련도장 연수의 행보에서 또 하나 상징적인 측면은 선경 세계에 도래하기 위한 실천원리인 상제님의 유지 해원상생(解冤相生)·보은상생(報恩相生), 두 상생(相生)의 법리(法理)다. 제주는 육지와는 뚜렷이 다른 자연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갖고 있지만, 역사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면 눈물과 한숨 없이는 가까이할 수 없는 한(恨) 많은 땅이었다. 그래서 도인들이 제주 사람들의 피와 땀, 한이 서린 제주 곳곳의 지역을 돌며 상제님께서 대순하신 진리와 도화낙원(道化樂園)이 도래함을 알림으로써 신과 인간에게 쌓인 원과 한을 풀어주기 위해 연수의 행보를 내딛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Ⅴ. 나오는 말
 
  기사(1989)년 6월 24일에 제주수련도장이 건립되었고, 이해 10월 6일(양) 5박 6일을 1개 반으로 하는 연수가 실시되었다. 오전은 수강과 오후 견학으로 이뤄진 연수는 제주가 갖는 그 위치와 형상에서 상제님의 유지인 해원상생(解冤相生)·보은상생(報恩相生) 양대 진리(兩大眞理)를 수도인들이 생활윤리로 받들어 실천하도록 하신 곳이 제주를 들어 보여주시려는 것이었다. 또한 도전님께서 자연 현상의 상징성을 통해 대순진리의 연원(淵源) 맥, 즉 종통(宗統)을 바르게 인식해야 함을 알려주시려는 일환으로 연수의 행보가 시행되었다.
  그 행보는 한림공원 → 산방산 → 천제연폭포 → 천지연폭포 → 정방폭포,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 만장굴 → 성산일출봉 → 산굼부리, 항몽유적지 → 목석원 → 삼성혈 → 용두암, 도깨비 도로와 한라산 영실로 이뤄져 있다. 물론 이 글에서 연수 지명 모두를 서술한 것은 아니다. 연수의 총체적 의미로 바라볼 때, 대표적인 8곳이 우리 도의 종통으로 귀결되기에 그것을 중심으로 서술하였던 것이다. 곧 수(水)의 행보인 천제연·천지연·정방의 3폭포를 통해 연원의 상징적인 측면을 제시하고, 화(火)의 행보인 산굼부리·성산일출봉·한라산을 통해 종통계승의 이치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 도에서 지향하는 세계는 천·지·인 삼계가 모두 도통(道通)을 하여 인간은 지상신선(地上神仙)이 되고, 천지는 선경(仙境)의 세상으로 화(化)한 단계를 일컫는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 원한을 품어도 천지기운이 막힌다”(공사 3장 29절)라고 하신 말씀에서 보듯, 사람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을 포함한 모든 만물이 가지고 있던 원이 상생의 원리로 풀려야 후천선경으로 넘어가기가 더욱 용이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상제님의 삼계공사인 천지공사의 유지를 좇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열어 놓으신 후천선경에 이르도록 힘써 수도하며, 또한 천지의 만물과 천하 창생들에게 그 길을 알려주어 함께 가는 것이 바로 도인들이 해원이라는 행보를 내디뎠던 상징적인 의미이다.
  그러므로 제주수련도장 연수는 상제님의 유지(遺志)와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받들고 도전님의 유훈(遺訓)을 지침으로 삼았을 때, 결국 수도의 목적인 도통(道通)의 완성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을 연수 각 지명의 행보를 통해 체득할 수 있음을 보여주셨던 것이라 하겠다. 아울러 여기서 분명한 것은 상제님으로부터 이어진 도주님의 계시 종통계승, 도주님으로부터 이어진 도전님의 유명 종통계승 외에 도전님께서는 종통에 대한 어떠한 유명도 남기지 않으셨으므로 더 이상의 종통계승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대순진리회 연수는 도전님의 분부에 따라 제주수련도장과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두 곳에서 시행되었지만, 1999년에 제주에서의 연수는 중단되었다. 현재는 1995년부터 시행된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연수만이 도인들의 정성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제주에서 시행된 연수가 금강산 연수의 초석을 다지는 과정이었다면 금강산 연수는 수도의 결실을 맺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상제님께서 “도는 장차 금강산 일만이천 봉을 응기하여 일만이천의 도통군자로 창성하리라”(예시 45절)고 말씀하셨듯이, 금강산은 도인들의 염원인 도통(道通)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이기에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의 연수가 더욱 소중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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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덕교화기본원리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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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길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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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라잡이 11 - 한려수도와 제주도』, 돌베개, 2007
 
 
 

01 한림(翰林)이라는 지명어원은 예로부터 한림은 참나무와 느티나무 등이 무성한 숲을 이루어 ‘한술’로 불렸으며, ‘한’은 크다는 뜻을 가진 고유어이고 ‘술’은 수풀 또는 덤불의 뜻을 가진 제주도 방언이며 ‘많은 수풀’ 혹은 ‘큰 수풀’의 의미를 담은 것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불렸다. 여기서 한을 한(翰)으로 표현했던 것은 뜻이 아니라 소리만을 한자로 빌어다 쓴 이두식의 표현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한림학사(翰林學士)에서 그 시원(始原)을 찾을 수 있다. 탐라국의 건국 시조이자 삼신인(三神人)인 삼을나(三乙那)는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의 세 사람을 부르는 명칭이다. 이들은 각각 제주고씨(濟州高氏), 제주양씨(濟州良氏)[후에 梁으로 바꿈], 제주부씨(濟州夫氏)의 시조이기도 하다. 삼을나 후손 양탕(良宕)이 374년에 왕자의 신분으로 신라를 찾았으며, 당시 신라 17대 내물왕(奈勿王, 356∼401)이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성주(星主) 왕자의 작호를 내리고 의관을 하사하여 신라의 조복을 갖추게 함으로써 이때부터 성씨 양(良)을 양(梁)씨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 후 삼을나 후손 양순(梁洵)이 신문왕 2(682)년 신라에 들어가 한림학사를 지낸 후 한라군(漢羅君)에 봉해졌으며, 그의 후손들이 모두 양을나를 시조로 하여 관향을 제주로 삼게 되었고, 그 양씨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집성촌이 한림일대이며, 이 한림이라는 지명이 양순의 한림학사 벼슬에 따라 불린 것으로 보고 있다.
02 『한국동물민속론』 (서울: 민속원, 2003), pp.228∼229 참조.
03 김성호, 「미륵과 연결된 조화와 융합의 대표코드 미르」, 《대순회보》 128호(2012), p.40 참조.
04 『대순지침』, p.18.
05 차선근, 「해인에 대한 고찰」, 『상생의 길』 2호 (경기: 대순진리회출판부, 2004), pp.150∼156.
06 《대순회보》 116호, 「Q&A 게시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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