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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7년(2017)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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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도문소자로 거듭나기 위한 인식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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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소자로 거듭나기 위한 인식변화
 
 

금릉1-6 방면 평도인 황주연
글 편집 출판팀

 
 
 
  대전에서 포덕사업을 하다가 서울에 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나는 새로운 환경과 일을 함에 있어서 늘 변화를 두려워했다. 예전의 나였으면 마음의 분란과 거부 반응이 나타나 삶의 변화를 받아들일 생각조차 못 했겠지만, 입도 후 수도 생활을 하면서 더는 변화하지 않으면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입도하기 전 나는 늘 무기력한 삶을 살았다. 딱히 남들처럼 잘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관심가거나 좋아하는 것도 없었으며, 어릴 때부터 누구나 갖는 크고 작은 꿈조차 없었다. 대체 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남들처럼 좋아하거나 꿈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살고 싶었다. 고등학교 내내 했던 고민이 성인까지 이어지면서 삶은 더 무기력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목표가 있는 사람을 늘 부러워했고 나중에는 ‘꿈’, ‘목표’, 그와 관련된 비슷한 말을 듣거나 질문을 받으면 우울해져 기분이 바닥을 치고 몇 날 며칠 지속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도 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TV에서 노래 부르며 춤을 추는 아이돌을 보면서 방송 댄스를 배워보고 싶었고, ‘나에게도 흥이라는 것이 있었구나!’ 생각하면서 평소 낯가림과 수줍음을 많이 타던 내가 직장 근처에 있는 댄스학원을 등록하게 됐다. 그렇게 그곳에서 선각을 만났다.
  입도하고 교화만 꾸준히 들었을 뿐인데 나의 삶은 차츰 밝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선각은 나에게 교화하기 위해 대전에서 구미를 수시로 오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선각이 수고로움을 마다치 않고 내 일에 신경 써 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매번 번거로울 법도 한데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는 선사를 생각하면 늘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 선각에 대한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나를 더 적극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러자 이제는 내가 대전에 직접 가서 교화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주말마다 대전 포덕소에 가서 선사께 교화를 듣고 기도와 수련도 모셨다.
  하지만 마음의 분란과 잦은 두통으로 늘 피곤함에 절어 있던 나는 교화를 듣는 와중에도 조는 경우가 허다했다. 비록 졸면서 교화들을 때도 있었지만, 교화는 내 마음의 닫힌 문을 열어 나를 조금씩 밝아지게 해 생활에 활기도 생기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나를 대하던 동료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서야 내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언니라고 부르던 선각에게 내가 다시 태어나면 그때는 내가 언니의 선각이 되어서 꼭 포덕하겠다고 했을 정도로 선각에게 감사했다.
  어느 날 포덕소에서 수임원분의 교화를 듣고 늦은 시간 자취방으로 돌아온 어느 날 나는 불 꺼진 방에서 소리 없이 울었다. 스스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내면에서 감사한 마음이 끝없이 차올랐기 때문이다. 나를 힘들게 하던 사람과 그냥 알고 지내던 사람들부터 가족, 친구,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 존재 자체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생명과 온 우주를 품고 계신 ‘절대자’의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하고…. 그때부터 수도하고 포덕해야겠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되면서, 내가 일상에 감사함을 느끼듯이 남들도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직장동료와 친구, 그리고 그렇게 바라던 작은언니도 포덕했다.
  당시 나는 치과위생사로 근무하고 있었지만, 이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을뿐더러 과잉진료로 수익만 올리려는 비양심적인 의사의 의료행위에 신물이 난 상태였다. 일이야 자격증이 있으니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그보다 수도를 통한 자기성찰이 더 절실하였기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수도 생활에 전념했다. 이왕지사 결심한 것 정성을 다해 수도할 것을 다짐하고 매일 기도를 모시고 교화도 들으며 감사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던 두통과 마음의 분란이 또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보다 두통은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심해졌고, 우울하고 짜증스러운 마음이 끊임없이 올라와 기분이 늘 들쑥날쑥했다. 잠자리에 들 때면 가끔 가위도 눌리고 악몽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새벽에 일어나서 마음을 다잡고 심고를 드렸다. 겁액에 빠지자 포덕은 쉽지 않았고, 같은 방면 도인들에게도 피해만 주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이 뜻대로 안 되어 너무 속상한 나머지 기도방에서 울면서 심고를 드리다가 그조차 집중이 되지 않을 때면 속으로 ‘상제님’을 부르며 엎드려서 많이 울기도 했다.
  그러던 중 아직 내수인 나에게 도장에서 공부할 기회가 주어졌다. 갑자기 공부를 들어가게 되니 감사한 마음과 긴장된 마음이 교차하면서 또다시 마음에 분란이 일어났다. 마침 방면 선감께서 같이 수호 서러 도장에 가자고 하셨다. 나는 지체없이 선감과 함께 도장으로 향했다. 선감과 함께 도장에서 수호를 서면서 마음이 겨우 안정되었다. 나는 그동안의 내 심정과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선감께 털어놓았고, 나의 이야기를 들은 선감께서는 ‘황내수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고 하셨다. 그리고 정리되지 않는 여러 가지 생각과 잡념이 들 때는 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을 뒤돌아보는 것도 좋은 계기가 될 거라며 복지관 식당 봉사활동을 권하셨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수도에 뜻을 두고 정성을 다해 정진하려던 차에 나는 선감의 권유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복지관 식당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복지관 봉사를 시작하기 전날 새벽에도 나는 또 악몽을 꾸었다. 그것도 지금까지 입도하고 꿨던 악몽 중에 가장 무서운 악몽을. 도전님께서도 모든 일에는 그 목적을 달성하려는 과정에 반드시 장애가 있는데 그것이 겁액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자기성찰과 새로운 변화를 통해 자신을 바람직하게 변화시켜 큰일을 하려고 하니 이러한 겁액이 또 나의 앞을 가로막고 나를 시험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문소자가 되어 수도인으로서 상제님의 일을 하는 것이 축복이자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을 전환하니 오히려 모든 것이 감사하게 받아들여졌다.
  도장 식당 당번은 예전에 참여한 적이 있었지만, 복지관 식당 봉사는 처음이라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긴장된 마음 때문에 불안하기도 했다. 처음 하는 봉사활동이니만큼 각오를 단단히 하고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봉사활동 첫날은 낯선 장소에서 처음 하는 일인 데다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식당일은 생각처럼 녹록지 않았다. 내일 조리할 식재료를 미리 씻어 다듬기도 했고, 몇백 개가 되는 반찬의 뚜껑을 덮기도 했으며, 식당 바닥 레일을 타고 하수구로 모인 음식 찌꺼기 청소까지 일은 고되었지만, 이것도 수도의 일환이라 생각하고 군말 않고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점심 이후 정해진 쉬는 시간이 있었지만, 그 시간을 제외하면 정말 쉴 틈 없이 일해야 했다.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원봉사로 일하게 된 것이고, 더구나 내가 식당 봉사활동 하던 때가 마침 복지관 식당 조리원 중 여러 분이 교체되는 시기여서 조리장은 더 분주했다. 새로 오신 조리원 식구와 기존에 계시던 조리사 간의 인수인계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때에 맞추어 정해진 식사를 챙겨야 하니 보조 도우미인 나로서는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았다.
  점심을 먹고는 바로 일을 해야 하고 일이 늦어지면 그나마 있는 쉬는 시간이 줄어들기도 했다.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것이니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되는 일거리는 끝이 없었다. 식당에서 종사하시는 조리장 직원들이 정말 대단하게만 느껴졌다.
  아침 봉사는 오자마자 식판을 털고 커다란 세척기 뒤에서 씻겨 나온 그릇을 받아 종류별로 박스에 담는 것부터 시작했다. 한여름 아침부터 온몸이 땀범벅이 되니 정신이 없었다. 세척기에서 많은 열과 증기가 나왔기 때문에 식판을 비우고 세척하는 시간이 가장 땀을 많이 흘리고 체력이 소모되는 때였다.
  식재료를 씻는 일도 쉽지만은 않았다. 나물 반찬은 늘 메뉴에 있었는데, 여름이라 벌레가 생길 수 있으므로 식재료를 매번 몇 번을 씻고 헹구면서 확인해야 했다. 영양섭취를 골고루 할 수 있도록 잘 짜인 식단이다 보니 생선도 거의 매일같이 식단에 올라있었다. 생선이 식단표에 표시된 날이면 보조인 나는 조리장 식구들과 생선 비늘 제거부터 잔손질까지 해야 했다. 또 몇백 개가 되는 작은 종지에 반찬을 담을 때는 손이 느린 탓에 시간이 지체되는가 하면 익숙지 않다보니 종지에 양념이 다 묻어버려 내가 한 일을 누군가가 다시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식당 일이라는 것이 하나부터 열까지 정성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정해진 시간과 식단을 제때 맞추지 못하기 때문에 온 신경을 몰두해야 했다. ‘맛깔나고 청결한 식사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경험을 통해 느끼니 매일 먹는 밥 한 공기가 새롭고 감사하게 다가왔다.
  식당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심지어 밥공기에 밥을 담을 때도 환자에 따라서 양을 달리해야 하기 때문에 6부인지 8부인지 확인하고 양에 맞게 담아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막 지어 고슬고슬 윤기 흐르는 밥을 담을 때는 밥이 식는다며 에어컨 바람도 쐬지 않고 등이 다 젖도록 정성스레 밥을 준비했다.
  게다가 복지관 시설에는 항암식과 저염식을 드셔야 하는 환자분도 계시기 때문에 조리사들은 그분들을 위해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맞춤 조리도 했다. 씹는 것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서는 반찬도 일일이 믹서기에 갈아 부드럽게 다져서 드리는 일을 끼니마다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한 곳의 식당에서 모든 사람이 한마음 한뜻으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 그간의 무기력했던 나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환자들에게 잘 짜인 식단으로 맛있는 식사가 배달되기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잔손이 많이 가고 정성도 많이 들어가야 했기에 시설에서 환자들이 식사를 마치고 깨끗이 비운 빈 식판이 돌아왔을 때는 더없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반찬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때는 힘들어 하시는 환자들이 안타깝기도 하고 열심히 준비한 음식들이 그대로 음식 찌꺼기 통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때는 아깝기도 하고 속도 많이 상했다.
  그런데도 다들 너무 열심히 일하셨다. 조리 실장은 어떤 일을 하실 때 모두가 따라올 수 있도록 몸소 솔선수범하시며 모든 일을 살피셨고, 영양사, 조리사, 조리원들 모두 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셨다. 대부분 손목과 허리가 안 좋아져 침을 맞거나 물리치료를 받아가며 일하셨는데, 일이 고되고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 배려하고 노력하며 화합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예전에는 일이 힘들고 몸이 아파서 나가는 사람들도 많고, 쉬는 시간이 부족해서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고 한다. 매주 화요일마다 미팅하면서 새로 받아들여야 할 일과 개선해야 할 일, 그리고 화합을 위해 대화시간도 가졌다.
  방면 선감께서 봉사활동 기간은 내 생각과 의지대로 결정하고 언제든지 돌아오고 싶을 때 오면 된다고 하셔서 나는 두 달 반을 봉사활동을 하고 여름을 도장에서 다 보내고서야 방면으로 복귀했다. 일이 서툰데도 하려고 하는 마음을 예쁘게 봐서 먹을 것도 챙겨 주시고 중간중간 교화도 해주시고 막내인 나를 그저 귀여워해 주셔서 참 감사했다. 한여름 더위 속에서 땀범벅이 되어 힘들 때면 시원한 냉커피와 음료도 한 잔씩 마시고 서로를 배려해가며 일하는 모습들이 늘 보기 좋았고 지금도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된다.
  한편, 일을 하는 날에는 새벽 1시 기도만 모실 수 있었다. 처음 한 달은 일이 너무 힘들어서 자느라 기도도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 손톱은 다 깨지고, 손가락뼈 마디마디가 다 아파서 자다가 일어나서 손발을 주무르기 일쑤였다.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약했던 나는 두 달 반을 봉사하고 그 속에 값진 교훈을 얻어 돌아올 수 있었는데 그 모든 것이 상제님의 덕화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 동안 나의 마음도 차츰 안정되어 갔고, 인식의 전환을 통한 긍정적인 마음도 키울 수 있었다. 긍정적인 사고와  마음가짐을 변화시키니 삶의 태도가 바뀌고 불안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늘 달고 살던 두통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음속의 겁액이 지나간 빈자리에는 감사라는 씨앗이 자라나 마음 한 곳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이런 생각이 점차 커지자 항상 저를 챙겨주시는 선각분들과 저에게 봉사활동을 권유해주신 방면 선감께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또 저에게 어떤 시련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잘 이겨나가겠다고 다짐해본다.  
  젊고 어린 평도인의 위치에서 수도했다고 말하기에는 그 기간이 너무 짧다. 하지만 일련의 모든 일이 하나의 과정처럼 스치듯 지날 때면 상제님의 뜻을 받들 수 있게 도인의 삶을 주신 것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봉사활동을 통해 생각을 전환하고 밝은 모습으로 방면에 복귀해서 그런지 다들 내 얼굴이 좋아졌다며 칭찬도 아끼지 않으신다. 도문소자로서 수도 생활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꿈이 있다. 도인이라면 누구나 같은 꿈을 꿀 것이다. 입도 전에 그렇게 찾고 찾았던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더 열심히 수도에 정진할 것이다.
 
상제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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