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별 보기
   daesoon.org  
대순147년(2017) 2월

이전호 다음호

 

도전님 훈시 종단소식 신년기획 청계탑 전경 지명 답사기 대원종 포토에세이 돋보기 전경 속 역사인물 정각원 지남거 종교문화답사 공고 일각문 대순문예 대순광장 나누고 싶은 이야기 대순문답 퀴즈 및 퀴즈 정답자 알립니다

대순광장 : 영화 ‘밀정’, 잊혀진 이름 의열단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영화 ‘밀정’, 잊혀진 이름 의열단
 
 
 연구위원 김태수
 
  얼마 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온 가족이 함께 밀정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오랜만에 형제들이 함께 모여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더욱이 영화에 고미술상(古美術商)으로 가장한 독립운동가 김시현(金始顯, 1883~1966: 김우진 역)이 작은 외할아버지의 동료였고 외증조부 또한 온 가족을 데리고 만주 유하현(柳河縣)으로 이주하신 후, 그곳에서 순국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한편, 영화를 보면서 도주님께서 만주에서 행하신 구국운동 및 구제창생의 깊은 뜻과 창도정신인 구국제민의 마음도 한층 가까이 다가오는 듯 했다. 영화의 소재가 된 의열단은 당시 봉천성 유하현01에 있던 신흥무관학교 출신들02이 중심이 되어 발족한 단체이다. 그런데 유하현은 도주님이 부친을 모시고 독립운동에 참여하신 지역이기에 지나간 옛일로만 생각되지 않았다. 안중근 의사의 뒤를 이어 이 지역에서 활약하면서 신흥무관학교와 의열단 창립에 깊이 관여한 이회영(1867~1932), 이시영(1869~1963)03 형제뿐만 아니라 류인석(柳麟錫, 1842~1915), 이진룡(李鎭龍, 1879~1918) 등이 도주님 집안과 교류하며 구국활동04을 했던 모습 또한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이러한 감동을 담아 부족하나마 구국운동에 헌신했던 이분들의 마음을 공유하고자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들이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이기에, 일심으로 한 길을 가려는 우리 도인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내용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그 배경이 되는 의열단05의 항일독립활동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의 등장인물과 실재 인물
  이 영화의 첫 번째 주연인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 간부 이정출(송강호)은 실재 인물 황옥(黃鈺, 1885~?)을 모델로 했다. 영화에서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변절해서 조선총독부 소속 경찰로 활동한 인물로 나온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그의 활동에 비추어 황옥이 처음부터 의열단(義烈團)에서 일본 경찰로 투입한 밀정이었거나, 영화에서 그려진 바와 같이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 1898~1958)과 만난 이후 의열단원으로 변화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06 당시 활동했던 사연 많은 독립운동가가 끝내 후손들에게도 비밀을 누설하지 않고 돌아가신 일이 많았듯이 애초 황옥의 입장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어느 쪽이 진실이든 간에 암울한 일제 치하 속에서도 그렇게 살아 있는 정신과 의협심을 지닌 이들 또한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주연인 김우진(공유)은 초대 제헌국회의원을 지낸 김시현을 모델로 했다. 영화 속에서 김우진은 상해와 경성을 오가며 활동하는 고미술상으로 가장하여 활동하던 중, 일본 경찰 간부 이정출이 밀정으로 접근하는 것을 알고 이를 역이용하는 반간계에 따라 그에게 접근하는 역할을 맡는다. 영화의 끝 부분에서 김우진은 국내 잠입 후 체포되자 기밀을 누설하지 않기 위해 혀를 깨무는 데, 이는 실제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제헌 국회 때 김시현의 부인이 연설문을 대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물에 적신 탄환을 장전한 권총으로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을 위협하면서 바르게 민주정치를 시행할 것을 요구하다가 암살 미수로 투옥되기도 한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안위를 돌보기보다 정의를 실현하고자 애쓴 인물로 알려져 있다.
 
▲ 영화 밀정 (2016) 화면 캡춰
 

  김우진의 동지이면서 김우진에게 연정을 지닌 것으로 나오는 연계순(한지민)은 기생출신 의열단원 현계옥(玄桂玉)07을 모델로 한 것이다. 실제로 현계옥은 영화에서처럼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고문당한 바 있고, 기생업 및 극단을 통해 모은 재산 전액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내고 자신도 항일 무장독립투쟁에 투신한 인물이다.
  이정출과 한 조를 이뤄 의열단을 쫓는 하시모토(橋本: 엄태구)도 총독부 경무국장에 의해 황옥 경부를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실재 인물을 모델로 했다. 조선인 출신의 일본 경찰이면서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으로 일제에 협조했던 인물로 등장한다.
  총독부 경찰의 이인자로 등장하는 히가시(츠루미 신고)는 의열단에 대항하여 독립군 출신 이정출을 믿음으로 회유해 쓰면서도, 하시모토를 통해 감시케 하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마루야마(丸山鶴吉)08의 배역으로 나온다. 마루야마는 1921년 내무국장 오쓰카(大塚堂三郎), 친일파였던 박영효·이완용·송병준·민영기 등과 함께 일본이 주도하는 친일파 단체 조선구락부(朝鮮俱樂部)09를 창설한다. 마루야마가 황옥을 경무국 소속으로 전근시킨 것은 1923년으로, 2월 5일 황옥에게 장기 병가원을 제출케 하고 비밀리에 중국으로 파견한다. 단,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이정출이 조선구락부를 폭파하는 장면은 사실이 아니다.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은 김원봉(1898~1958)10을 모델로 한 역할로, 조국 광복을 위한 굳은 신념을 지닌 성격이 잘 묘사되어 있다. 실제 의열단은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항일 비밀 결사로 김원봉이 단장을 맡았다.
 
▲ 영화 밀정 (2016) 화면 캡춰
 

  영화가 시작할 때, 일본 헌병대에 쫓기는 의열단원으로 나오는 배역은 실제 회현동에서 종로 효제동 일대의 지붕 위를 누비며 도주하다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순국한 김상옥(金相玉, 1890~1923)11을 모델로 했다.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의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1923년 1월 경찰의 추적을 피해 피신하던 중 사이토 총독의 동경(東京) 방문 소식을 듣는다. 이에 김상옥은 사이토를 암살할 목적으로 그의 동선을 따라 서울역 주위를 수일간 배회하다가 종로경찰서 무장 경찰 20여 명에게 포위된다. 당시 그는 그들과의 총격전 끝에 유도 사범이자 형사부장인 다무라를 사살하고 경부 20여 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종로구 효제동에서 천여 명의 일본 군경에게 포위당해 민가의 지붕을 가로지르며 일본 군경 400여 명과 3시간 동안 총격전을 벌였는데, 기마대와 무장경찰 수백 명이 포위해오자 총격전 끝에 일본 경찰 10명을 쓰러뜨렸으나 탄알이 떨어지자 마지막 남은 한 발을 가슴에 겨누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순국한다. 시신에는 11발의 총알이 박혀있었다고 한다. 단, 영화에서는 일본 경부 이정출이 독대하면서 임종을 지켜보는 것으로 나오는데, 황옥이 경부(警部)가 된 것은 ‘김상옥 사건 이후 특별 수사관 모집을 통해서’12이므로 이 또한 각색된 부분이다. 
  한편, 영화에는 의열단장 정채산이 이정출에게 시계를 주면서 마음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이정출은 이 시계를 의열단장의 지령을 받고 조선총독부[현 중앙청 건물]를 폭파하기 위해 가는 젊은 학생에게 건네준다. 이때 학생으로 나오는 의열단원은 일제 식민 통치의 심장부인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던지고, 중국에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의 암살을 시도한 김익상(金益相, 1895~?)을 모델로 한 것이다. 또 시계를 전하는 장면은 아마도 의열단 지사 등을 중심으로 김구(金九, 1876~1949)가 1931년 구성한 한인애국단원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 공원으로 출발하기 전, 자신의 좋은 시계를 김구 주석에게 주고 김 주석의 헌 시계로 바꿔 찬 일화13를 오버랩한 것으로 보인다.
 
 
  감상 후기: ‘일심(一心)’을 기약하며
  이상으로 밀정이라는 영화에 나타난 인물들을 중심으로 일제 치하 의열단 인사들의 실제활동과 대비해 보았다. 이 영화에 출현했던 인물들은 상제님께서 대흥리에서 “마룻장으로 곤봉을 세 번 치시며, ‘이제 일등박문이 필요하지 이등박문(伊藤博文, 1841~1909)이 필요하지 않다’”(행록 5장 5절)라고 하신 ‘일등박문 공사’에 따라 이등박문을 세 발의 총탄14으로 쓰러뜨린 안중근(1879~1910) 의사의 뒤를 이어 만주와 상해 등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장본인들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역사적 상황은 공사내용과 무관하지 않고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 또한 적지 않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 직후 이루어진 한일합방과 이에 대항한 항일독립활동, 나아가 해방 및 그 이후 전개된 대한민국의 발전 상황 등은 분명히 상제님의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 공사(공사 2장 3절)·상등국 공사(예시 29절) 등과 맞물려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영화에서 그려진 의열단 인사들은 항일독립투쟁 이후 대한민국 성립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뒤안길에서 목숨을 바친 충의지사들이다. 비록 무정부주의로부터 천도교,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이 열사들의 가치관과 종교관은 다양했지만 민족독립과 정의실현을 위한 이들의 살아 숨 쉬는 정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편안하게 수도할 수 있음에 가슴 저밈을 느낀다. 안중근 의사 또한 천주교인이었지만, 의사의 한결 같은 충의지심에 감동한 일본간수의 후손들이 오늘날까지도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이러한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혈식천추도덕군자(血食千秋道德君子: 예시 50절)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끔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 영화는 비록 실제 사실과는 다르지만, 극 중에 나오는 내용만으로도 현재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우선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충성을 다한다”는 말을 통해, 히가시 경부의 지시를 따라 행하는 자신의 친일행위를 자위하던 일본 경찰 간부 이정출이 의열단장과 김우진으로부터 정의의 음성을 들으면서 일말의 양심에 싹이 트고 자라는 모습에서, ‘척(慼)으로 작용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라도 올바른 정성에 따라 큰 일꾼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어떤 사람이든 고정적 선입견으로 단정 짓지 말아야한다’는 점을 느꼈다.
  또, 히가시 경무국장과 의열단 측에서 모두 이정출의 심리를 활용한 반간계를 썼지만, 사필귀정으로 귀결된 모습에서 신도의 권위와 정성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람이 듣고 실행하느냐에 상관하지 말고 바른 대로 일러주라”(교법 1장 59절)는 말씀에서처럼 ‘정성이 지극하면 진실을 따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올바르게 대의를 전하는 것 또한 일심일 것이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샘물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통념상 가장 바뀌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일본 경찰 간부의 의협심을 일깨워 내는 의열단장의 안목과 김우진의 정성은 보는 우리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일게 한다. 특히, “거듭된 실패를 딛고 일어나 결국은 독립을 성취해야 한다”는 의열단장의 단심(丹心)은 “안 되리라는 생각을 품지 말라”(교법 2장 5절)는 말씀과 함께 한마음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해 준다. 
  한편, 이정출이 의열단을 도운 이후에도 계속 두 마음 속에서 갈등하다가 자신의 독립군 협조 사실이 드러나게 되자 흔들림 없는 최고 독립 역군으로 성장하는 모습 속에서도, 믿음과 일심의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우리도 ‘세속과 수도 사이에서 두 마음이다가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서야 일심을 정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연출이었다.
  일심과 관련하여 또 한 가지 교훈이 되었던 것은 영화 첫 부분에서 김우진이 연계순을 보호하기 위해 “혼자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가겠다!”고 말하자, 그에게 호감을 지닌 연계순이 “사진 한 장을 찍어 달라”는 사적인 부탁을 하는 장면에서였다. 복선임이 틀림없는 그 장면을 보면서 “냉정하더라도 거절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사진이 빌미가 될 줄이야! 김우진이 체포되어 혀를 깨물기 직전, “연계순이 체포된 것이 그 사진 때문이었다”라고 던지는 히가시의 심리술에 의해 북받쳐 오른 김우진의 통한의 눈물에서, ‘우리도 일체의 사심을 버리고 공에 지극한[無私至公] 인도(人道)를 닦아, 저런 눈물을 짓는 일이 없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참고 문헌
『전경』
『대순지침』
『대순진리회요람』
《대순회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199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두산백과』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첩보)』, 한국콘텐츠진흥원, 2005.
『한국여성문인사전』, 서울: 태학사, 2006.
강동진, 『일제의 한국침략정책사』서울: 한길사, 1980.
김영범, 『한국근대민족운동과 의열단』서울: 창작과 비평사, 1997.
박태원, 『若山과 義烈團』, 서울: 백양당, 1947.
송하춘, 『한국현대장편소설사전 1917-1950』, 서울: 고려대학교 출판부, 2013.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
한국사사전편찬회, 『한국근현대사사전』, 가람기획, 2005.
 
 

01 현재는 지린성(吉林省) 퉁화시(通化市)이다.
02 김좌진, 홍범도, 지청천, 김경천과 아리랑으로 유명한 김산 등이 이 학교 출신들이다.
03 이시영은 박제순이 을사늑약 체결에 동의하자 즉각 그의 조카와 박제순 딸의 혼약을 파기ㆍ절교했고, 한일합병 후 형 이회영 등 가족 친지 50여 명과 함께 만주로 망명했다.
04 『대순지침』, p.25; 「도주님의 봉천명(奉天命) 3」,《대순회보》, 176호(2015), pp.22-47;  대순종교문화연구소, 「도주님의 구국운동」, 《대순회보》, 177호(2016), pp.32-41 참조.
05 1923년 창설 당시 김원봉의 요청으로 단재 신채호(1889~1936)는 행동강령과 투쟁목표를 ‘조선혁명선언’으로 문서화한다. 1937년, 조선 민족 혁명당으로 개명하고 조선 의용대(朝鮮義勇隊)를 조직한다. 1942년 광복군에 편입되고 김원봉은 광복군 부사령에 취임하게 된다.
06 황옥은 경기도 고등과 경부 및 위장 사업가 신분으로 1920년대 초 2차 의열단 국내 거사를 주도한 의열단원으로 김원봉으로부터 일제 기관 파괴 및 친일파 암살 지령을 받아 활동했다.
07 대구 기생 출신으로 현정건(독립운동가로 소설가 현진건의 사촌 형)의 영향으로 항일무장투쟁에 투신한다. 1928년 시베리아로 망명하였고 모스크바에서 공산대학을 졸업했다.
08 1923년 2월 5일 마루야마 경무국장은 황옥을 호출하여 당일로 경무국 소속으로 전근시킨 후, 장기 병가원을 제출케 하고 비밀리에 중국으로 파견한다.
09 총독부 고위급 관료와 일본인 부호가 한국인 대지주ㆍ예속자본가ㆍ친일파 등과 함께 1921년 11월 발족한 단체이다. 3.1 운동 후의 친일세력 재결속과 내선융합(內鮮融合)을 목적으로 했다.
10 호가 약산으로 광복군 부사령관, 임시정부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을 역임한다.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하여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내다가 1958년 숙청되었다.
11 상하이 망명 후, 김구ㆍ이시영ㆍ신익희ㆍ이동휘ㆍ조소앙과 만나 의열단에 가입한다. 일경의 포위에도 단신으로 세 시간을 버티며 총격전을 벌인 이 장면을 당시 중학생이던 서양화가 구본웅이 직접 목격하여, 해방 후 1930년 시화집『허둔기』에 스케치와 추모시를 함께 실은 바 있다.
12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사건 등 교란사건을 주도한 의열단 본거지인 북경에로의 밀파를 위한 수사관 물색에서 마루야마가 선발한 이가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 한국인 경부 황옥이다.
13 윤봉길은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라는 말을 남기고 상해로 떠난 후 훙커우 공원으로 향하기 전, 자신의 좋은 시계를 김구 주석에게 주고 김구 주석의 헌 시계로 바꿔 찼다고 한다.
14 상제님께서 곤봉으로 마룻장을 세 번 치셨듯이, 안중근이 쏜 총알 7발(처음 4발, 이토오가 아닐지 몰라 연이어 뒷사람에게 쏜 3발) 중 처음 3발이 이등박문에 명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관련글 더보기 인쇄 다음페이지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