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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6년(2016)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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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유럽종교학회에 다녀와서

유럽종교학회에 다녀와서
 
 
연구위원 박인규
 
▲ 유럽종교학회(EASR, European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Religions)가 열린 헬싱키대학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만남의 역사가 아닐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등 낯선 타자를 마주할 때 인간은 낯섦에 대해 어색함, 두려움, 호기심 등의 감정을 가질 것이다. 그러면서 타자와 자신을 비교하고 자신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번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종교학회(EASR, European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Religions)에 참석하면서 필자 또한 그러한 감정과 시각을 갖게 되었다.
  유럽종교학회는 유럽 24개국의 종교학회와 제휴하고 있는 국제학회로 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의 국제적인 협업을 통해서 종교에 관한 학술적 연구를 증진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유럽종교학회는 종교학 분야에서 가장 큰 학회이자 세계적인 규모로 활동하고 있는 국제종교사학회(IAHR,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History of Religions)와 제휴하고 있으며 주요 인사들이 거의 국제종교사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국제학회가 처음 열린 것은 2001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였다. ‘종교와 공동체’라는 대주제로 처음 개최하여 이후 매년 열리고 있다. 그리고 올해 16회 대회를 핀란드 헬싱키대학에서 ‘종교의 재배치(Relocating religion)’이라는 주제로 6월 28일~7월 1일 동안 개최하였다.
  종교를 학술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종교학이란 학문은 유럽에서 태동하였다. 영국과 유럽 대륙에 과학적 계몽주의와 진화론이 유행하고 식민지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유입되면서 기독교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제반의 종교 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려는 학문 풍토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종교학이 태동하여 발전한 유럽은 근래 이슬람 이민자들에 의한 사회갈등과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테러로 인한 갈등 등 종교 문제에 크게 민감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하루가 멀다고 유럽 곳곳에서 터지는 테러와 사회 갈등이 종교 특히 이슬람과 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지목되면서 역설적으로 종교학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졌다. 종교로 인한 사회 갈등의 문제는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나타났던 것이지만, 인구의 이동이 활발하며 SNS가 발달하고 다문화·다종교인 상황인 현대사회에서의 갈등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의 유럽에 상제님의 덕화와 대순진리를 어떻게 펼치고 적용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유럽은 어떤 곳인가? 유럽 즉 서양과 관련하여 상제님께서는 “서양의 모든 문물은 천국의 모형을 본뜬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서양 문명은 “물질에 치우쳐서 도리어 인류의 교만을 조장하고 마침내 천리를 흔들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데서 모든 죄악을 끊임없이 저질러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렸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원시의 모든 신성과 불과 보살이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이 겁액을 구천에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와 천하를 대순하다가…”01라고 말씀하셨다. 즉 상제님께서는 서양 대법국 천계탑으로 내려오셔서 천하의 대순을 시작하셨으며 이후 우리나라 땅으로 강세하신 것이다. 유럽은 우리나라처럼 상제님께서 직접 인신으로 팔도를 주유하시고 천지공사를 보신 곳은 아니지만 상제께서 구천의 위(位)에서 내려오셔서 살피신 지역인 것이다.
 
 
헬싱키와의 첫 조우
  9시간의 탑승 후 내린 헬싱키 공항은 인천공항보다 규모가 상당히 작았다. 우리나라와 유럽은 무비자 협정을 맺었기에 간단한 입국 심사를 마치고 숙소가 위치한 헬싱키대학 인근 호텔로 이동하였다. 주말이라 그런지 다니는 차도 드물고 행인도 별로 없어 헬싱키 시내는 매우 한산하였다. 핀란드 전체 인구가 550만 명 정도라고 들었는데 국토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큰 데다 인구수까지 적으니 헬싱키 도심도 상당히 한가하고 여유로웠다. 호텔에 체크인하고 짐을 푸니 저녁 시간이 되어 지나가는 현지인에게 식당을 추천받고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핀란드인들은 대부분 영어에 능숙하다고 하는데 역시나 마주치는 행인들도 거의 영어에 능통하였다. 식당은 헬싱키의 대표 건축물이라 할 수 있는 헬싱키대성당 바로 앞에 위치하였다.
  이 성당은 헬싱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루터란대성당(The Lutheran Cathedral)으로도 불리고 핀란드어로는 ‘Tuormiokirkko’라고 한다. 핀란드는 핀란드어를 사용하는데 유럽어 가운데 유일하게 영어와 어순이 달라 다른 유럽어와는 다른 계통의 언어라 여겨진다고 한다. 대부분의 간판, 안내 책자 등은 핀란드어와 스웨덴어가 병기되어 있으며 영어 표기는 드물어 인쇄물만 보고는 무슨 뜻인지 통 알 수가 없었다. 헬싱키대성당은 헬싱키의 중심부에 해당하며 성당 앞에 널따란 광장이 있고 근처 헬싱키 항구에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성당 바로 옆에 헬싱키대학교가 위치하고 있었는데 학교 정문이나 후문이 없이 시내의 다른 건물과 인접하여서 처음에는 대학교 건물로 인지하기 어려웠다. 성당은 1830년에 착공해 1852년에 완공되었으며 핀란드 루터파 교회의 총본산이다. 오늘날 핀란드 인구의 85%인 4백 40만 명이 루터파 교회의 신자로 등록된 만큼, 이곳에서 각종 국가적인 종교행사가 거행되며 전시회, 연주회 등 대학과 시민들의 문화공간의 역할도 겸한다고 한다. 성당의 상아색 외벽은 햇볕에 반사되어 환한 빛이 났으며 푸른색 돔과 어우러져 인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헬싱키 시내를 걸었다. 조금 걸으니 바로 바다가 보이는 헬싱키 항구가 눈앞에 펼쳐졌다. 발길이 닫는 대로 시내를 구경하며 걷다가 쉬었다 하니 어느새 밤 11시가 되었는데 여전히 날이 밝아 밤인지 인식할 수 없었다. 말로만 듣던 백야를 경험하니 무척 신기하였다. 숙소에 돌아와 잠을 청하려 해도 밖은 여전히 밝아 커튼을 치고 안대를 하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학술대회 첫날  
  헬싱키의 공기는 무척 맑았다. 아침 공기도 더없이 상쾌하였고 도심의 아침도 서울의 러시아워와 교통체증으로 인한 부산함, 답답함 그리고 짜증이 없었다. 거리는 깨끗하였고 차량의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도 거의 들을 수 없었고 시민들의 질서의식도 높아 보였다. 짧은 기간 동안의 인상을 통해서였지만 왜 핀란드를 선진국이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VR이라는 기차를 탔는데 기차표 자동판매기만 있고 따로 개표구가 없었다. 즉 자신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자동판매기에서 양심적으로 표를 사서 타고 목적지에 내리는 방식이었다. 기차 안에서도 역무원이 지나칠 뿐 따로 검표하지 않았고 목적지 역에 내려서도 개찰구 없이 바로 역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역 근처에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가 있어 꺼내서 타고 목적지 근처 자전거 보관소에 두면 되었다. 지상 주차장의 경우 차를 주차할 때도 우리나라에서처럼 주차권을 뽑거나 차단기에서 계산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자신이 몇 시간 주차할 것인지 양심껏 생각하여 자동판매기에서 정산한 뒤 출력된 영수증을 차 전면유리 앞에 두는 것이었다. 헬싱키 항구에 위치한 시장의 경우 낮에 장사한 뒤 저녁 즈음에 모두 가판을 접고 철수하는데 작은 음식 찌꺼기 하나 남지 않고 깨끗하였다. 이 나라 사람들은 남이 보지 않아도 스스로 공공질서를 준수하고 양심껏 행동하는 선진시민이었다.
  예전에 핀란드의 교육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있다. 핀란드의 교육은 ‘교육 혁명’이라고까지 표현되는데 일주일 학교 수업 시간이 20시간, 과제 시간은 10분에 불과하지만 현재 세계 1위의 학력 수준을 보이기 때문이란다. 핀란드의 교육 개혁은 1960년대부터 이루어졌다. 탈락하는 학생이 없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며 통합교육과 무학년제를 운영하며 자신에게 알맞은 수준과 속도에 따라 수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맞춤형 교육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석차 산출 없이 학생들을 평가하며 학생들 간의 경쟁보다는 협력을 강조하고 소통과 자율성을 지향하고 있다. 입시지옥이라고도 표현되는 숨 막히는 경쟁 속에서 압박감과 이기심만 자아내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과 비교되어 다소 부럽기도 하였다.
  학술대회는 오후 1시부터 시작이라 호텔과 대학교 주변을 둘러보고 시간에 맞춰 대회장으로 향하였다. 기조 강연은 영국 랑카스터 대학교의 린다 우드헤드(Linda Woodhead) 교수가 ‘Why no religion is the new religion’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왜 종교 없음이 새로운 종교인가’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무신론자 또는 신앙하는 종교가 없다고 표명하는 사람들의 종교성에 대한 발표였다. 무신론자(atheist)로 분류되는 사람들도 여러 분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기존의 제도권 종교에 가입하거나 소속되는 것을 거부할 뿐 느슨한 형태의 영성 운동이나 자기 수행 등에는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은 종교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정말 종교성이나 영성에 대한 관심이 희박한 것이 아니라 기성종교에 대해 소속되기를 거부할 뿐 다른 형태의 종교성을 추구하는 경향을 가질 수가 있다. 그러므로 ‘종교 없음’은 조직적 형태의 기성종교를 거부할 뿐 ‘종교성 없음’이 아니므로 ‘종교 없음’의 항목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좀 더 분석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다른 기조 강연자인 제임스 루이스(James R. Lewis) 교수도 맥락을 같이 하는 발표를 하였다. 그는 ‘배타적인 멤버십에서 변화하는 다양한 관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는데, 기성종교에서 요구하는 배타적인 멤버십(예를 들면 한 종교에 속하면 다른 종교에 속하는 것을 배타적으로 보는 경향)을 꺼리고 다양한 종교전통이나 종교적 실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현재 유럽사회에서 늘어나고 있다고 하였다. 자신도 루터교 신자였다가 뉴에이지 영성운동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동양종교에도 흥미를 느껴 주역, 불교 등에도 심취하였었다고 한다.
  기조 강연에서처럼 기존의 특정 종교의 교리를 수동적으로 수용하고 그 종교의 전통과 권위를 따르거나 그 집단에 가입하고 다른 종교에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식의 종교 활동은 유럽에서의 경우 상당히 그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았다. 유럽의 경우 핀란드도 마찬가지로 여전히 기독교 문화의 영향력은 여전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종교적 신념과 열정 또는 그 실천에서는 점점 미약해지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헬싱키에서 방문한 3개의 성당(헬싱키 대성당, 우스펜스키 성당, 암석 교회)에서도 한국 교회에서와 같은 신자들의 적극적인 신앙적 참여를 느낄 수 없었다.
  종교시장이론에 따르면 현대인들이 종교 활동에 참여하는 강도와 빈도가 줄어드는 이유는 세상이 세속화되어 사람들이 종교적 영역에 관심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기성종교가 사람들의 요구에 맞는 종교적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종교단체를 공급자, 사람들을 수요자라고 본다면 수요자들의 종교성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공급 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무신론자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세속화되어서가 아니라, 기성종교가 부패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성직자의 자질이 부족하거나 현대인들의 고통을 치유해줄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등 양질의 종교적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즉 유럽에서 무신론자 또는 비종교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종교에 관심이 없거나 세속화되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내면을 울릴 수 있는 참다운 진리를 접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구천상제님께서 삼계를 대순하시고 세계창생을 구하시고 천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펼치신 대순진리가 새로운 진리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 유럽인들의 정신과 마음을 적셔줄 날이 멀지 않았을 것이라는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학술대회 전반
  28일 오후부터 시작한 학술대회는 기조 강연을 빼고는 세션별로 나누어 발표가 이루어졌다. 같은 시간대에 열린 세션은 15개였으며 7월 1일 오전까지 무려 110개의 세션이 열렸으며 총 400여 명이 넘는 학자들이 발표하였다. 흥미로운 주제가 많아 듣고 싶은 세션을 고르는 데 애를 먹었다. 세속화, 종교와 미디어, 종교 순례, 건강과 영성, 종교적 대상물과 박물관, 종교적 수행, 종교적 다원주의, 현대사회의 죽음 의례, 일상에서의 주술, 종교와 예술 등 매우 다양한 주제로 발표가 이루어졌다. 한국 관련한 세션도 ‘한반도 평화를 진작시키기 위한 한국 종교의 새로운 역할’이라는 주제로 30일 오후에 열렸다. 이 세션에서는 서원대학교 김성건 교수 등 4명의 한국인 학자들이 남북한 통일과 종교에 대해 발표하였다.
  필자는 30일 오전에 ‘종교와 세속의 분리’라는 제목의 세션에서 ‘19세기말 20세기 초 한국에서의 유교개혁운동과 신종교운동(The Reformation movement of Confucianism and the New religion movement of Korea in the late 19th-20th Century)’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9세기 말 한국의 지식인들은 대다수가 유교적 배경의 소유자들이었는데 그들이 서구문물과 기독교의 유입을 경험하였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 하는 문제의식을 주제로 한 것이다. 유교개혁운동은 몇몇 유교 지식인들이 기독교를 모델로 하여 유교를 ‘종교’로 만들려고 한 운동이며 신종교 운동은 유교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진리를 펼쳤던 운동이다. 발표에서 유교개혁운동은 결국 민중의 호응을 얻지 못하여 실패하였고 최제우의 동학과 상제님을 중심으로 하는 신종교 운동은 일제강점기 번성하였음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상제님의 천지공사 사상의 개요를 설명하고 현재 상제님을 신앙하는 가장 큰 단체로 우리 대순진리회를 사진을 곁들여 소개하였다. 서구인 특히 북유럽인들에게는 상당히 생소하면서도 낯선 주제였지만 회의실을 가득 메운 파란 눈의 참석자들은 발표 후 열띤 질의를 하였다. 국제학술대회에서의 첫 발표여서 다소 긴장하였지만 호의적인 반응과 관심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좀 더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다.
 
▲ 논문 발표중인 필자
 
 
대순진리의 세계화
  모든 일정을 마치고 7월 1일 귀국길에 오르면서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는 핀란드의 정경을 가슴에 담았다. 먼 이국땅인 이곳에 상제님의 진리를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26년 전인 1990년 2월 도전님께서 훈시하셨던 말씀이 새삼 떠올랐다. 도전님께서는 ‘이제는 대순진리를 세계화할 때’라는 제목으로 훈시하시면서 “우리의 도는 우리나라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고 전 세계, 나아가서는 전우주를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한국 땅에 강세(降世)하시어 도를 펼치셨다고 해서 한국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어느 나라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포덕(布德)해야 한다는 정신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인류가 우리의 진리에 감화되어 우리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를 믿어야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02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처럼 대순진리회 수도인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든 포덕해야 한다는 정신을 가지고 대순진리를 세계화할 수 있는 뜻을 지녀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야 할 것이고 그들의 종교, 사상, 문화를 이해하는 기초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미지의 타자를 이해하는 것은 교류와 소통의 길을 통해서 시작된다. 유럽종교학회를 마치고 곧이어 참석한 세계신종교학회(CESNUR)에서 많은 해외 학자들이 우리 도장을 방문하여 깊은 인상을 받고 돌아갔으며 내년에 이스라엘에서 열릴 세계신종교학회에서 대순진리회를 주제로 한 세션이 열리는 것도 교류와 소통의 첫걸음일 것이다. 이러한 학술 활동이 대순진리의 세계화를 위한 초석이 되기를 기원하며 앞으로 많은 세계인이 대순진리에 감화되기를 염원해본다.
 
 
 

01 교운 1장 9절.
02  《대순회보》 16호, 「도전님 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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