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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종 : 이마두(利瑪竇)의 중국 전교(傳敎)

이마두(利瑪竇)의 중국 전교(傳敎)
 
 
연구위원 최정락
 
 
 
  전교(傳敎)는 자신이 가진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려는 노력이다. 여기에는 자기와 같은 이상을 지니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올바른 전교는 자기 종교의 우월성만을 강조하지 않고 다른 종교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혀 교리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을 일생 동안 실천한 사람이 중국 천주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마두(利瑪竇, Matteo Ricci, 1552~1610)이다.
  이마두는 명말 천주교 교리를 본격적으로 중국 사회에 전교한 예수회 선교사로서 천주교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주요한 인물이다.01 또한 그는 상제님께서 행한 천지공사(天地公事, 1901~1909)에 수차례 등장하는 인물이자 상제님께서 임명한 서도(西道)의 종장(宗長)으로서 대순사상(大巡思想)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02 이마두가 중국에서 행한 전교란 한 개인에게 천주교의 교리를 알려주고 종교성을 형성하여 천주교인으로서의 신앙생활을 유지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즉, 그에게 있어 전교란 천주의 가르침을 전하고, 이해시키고, 수용케 하는 모든 활동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히 수행의 차원을 넘어 천주교적인 가치관에 기반을 둔 사회의 건설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천주교의 전교는 거의 타문화권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전교 역사를 볼 때, 신부들이 천주교의 교리를 선포하는 일에는 관심을 기울였지만 현지인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에 관해서는 관심이 부족하였다. 이마두는 당시 제국주의적인 태도와는 달리 배우는 자세로 중국에 접근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시 외국인에게 폐쇄적이었던 중국사회의 중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탈리아 예수회 신부인 이마두는 1582년 신부 알렉산드로 발리냐니(Alexandro Valignani, 1539~1606)의 요청에 응해 마카오에 상륙해서, 이듬해 신부 미카엘 루지에리(Michael Ruggieri, 1543~1607)를 따라 당시 광동성의 성도였던 조경부(肇慶府)로 들어갔다. 이어 소주부(韶州府)·남창부(南昌府)·난징[南京]을 거쳐 1601년 베이징[北京]에 진출하였다. 중국에 온지 4년 동안 이마두는 전교에 크게 힘썼지만 겨우 3명의 중국인에게만 세례를 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중국인 사이에 화이사상(華夷思想)이 강했기 때문이다. 화이사상이 강한 중국인에게 천주교를 일방적으로 전교하려는 것은 스스로 긍지를 저버리게 하는 방식이었다.03 그래서 이마두는 중국인 신자를 유럽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신부가 중국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전교 방법은 일본에 최초로 천주교를 전교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co Xavier, 1506~1552)의 ‘현지적응주의’를 계승한 것이다.
  이마두의 적응주의 전교 방법은 언어 습득, 문화 수용, 과학기술 소개, 번역과 저술활동 등으로 구체화된다.04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마두는 중국어를 배우면서 전교를 준비하였다. 그는 통역 없이 직접 중국인들과 대화를 할 수 있어 당대 중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지성인인 서광계(徐光啓, 1562∼1633), 이지조(李之藻, 1564∼1630) 같은 학자들과 자유로운 교류를 할 수 있었다.
  둘째, 중국의 사회윤리와 생활풍속을 따르는 문화접근을 하였다. 처음에 그는 일본에서 불교 승려들이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승려의 옷을 입었지만 당시 중국에서는 유학의 지위가 높아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고 불교와 도교 두 종교는 사회에서 경시되고 있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1585년에 자신의 이름을 중국식 이름인 이마두(利瑪竇)라 개명하고 서진(西秦)이라는 호를 갖는 동시에 승복을 벗고 유자(儒者)의 옷을 입어 서유(西儒)로 자칭했다. 또한 예절에서 생활양식에 이르기까지 모두 중국의 방식을 따랐다.
  셋째, 중국에 유럽 과학기술을 소개하였다. 그는 중국의 지식계층인 유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세계지도, 수학, 천문학 등의 다양한 저술들을 소개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역서인 『기하원본(幾何原本)』, 세계지도 위에 각종 천문학·지리학적 설명을 덧붙인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 및 세계지도인 『산해여지전도(山海輿地全圖)』 등이다.
 
 
 

  넷째, 번역과 저술 활동을 하였다. 그가 중국에 있던 28년(1582∼1610) 동안 사서(四書)의 번역을 비롯한 종교와 천문, 그리고 지리와 수학 등 전교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한문으로 저술하였다. 이 중에서 중국의 청(淸)나라 고종(高宗) 때인 건륭(乾隆, 1736~1795)년간에 수집·정리된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에 수록된 이마두의 저술은 다음과 같다. 『건곤체의(乾坤體義)』 2권; 『동문산지(同文算指)』 전편(前篇) 2권, 통편(通篇) 8권; 이마두 역: 『기하원본(幾何原本)』 6권; 이마두 역: 『변학유독(辨學遺牘)』 1권; 『이십오언(二十五言)』 1권; 『천주실의(天主實義)』 2권; 『기인십편(畸人十篇)』 2권; 『교우론(交友論)』 1권 등이다.05
 
 

  이마두에게 있어서 전교의 핵심은 지식인층인 유학자들에게 천주(天主)의 존재를 알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중국에서 천주교를 전교하기 위해서는 당시 중국의 지식인층을 지배하고 있던 성리학적 사유를 먼저 동요시켜야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합리적 사유로 천주교를 논증하기 전에, 성리학적 사유 체계를 먼저 비판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성리학은 만물의 근원으로 리(理)를 설정하고 있는데 비해, 천주교는 인격적 주재자, 즉 천주(天主)라는 유일자를 만물의 근원이라고 믿었다.06 이마두는 비인격적 개념인 리가 천주와 서로 마주 대하는 위치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선결 과제는 리를 궁극의 위치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천주교의 교리를 공맹유학(孔孟儒學)의 이론과 접목해서 만든 것이 바로 『천주실의』이다.
  이마두가 성리학자들과의 대화에 기초하여 작성한 『천주실의』07에는 기본적으로 천주교의 천주(天主)를 유학의 고전 속에 등장하는 상제(上帝)와 동일한 존재로 본다는 것이 주목된다. 즉 그는 『시경(詩經)』, 『서경(書經)』과 같은 중국 고대 경전에 나오는 상제를 부각해 천주교의 천주는 중국의 상제와 같다고 주창한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천주의 의미를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데 있었다. 그는 현지적응주의에 입각하여 중국 고대 경전들을 인용하고 중국인의 심성과 정황을 파악하여 그들이 천주를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서술하였다.
  이렇게 볼 때, 이마두는 유일신인 천주를 기초로 하여 성리학의 리를 이해하였기 때문에 리의 본질을 온전히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선진 유학의 상제관이 갖는 가치를 인정하고 천주와 상제를 동일한 존재로 설명함으로써 중국 전교의 초석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이마두의 상제관 중심의 전교를 통해 우리 도(道)의 포덕 활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몇 가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이마두의 삶을 통해 종교인이 지녀야 할 자질과 그 자세를 배울 수 있다. 전교를 하는 주체인 이마두는 당시 중국 문화의 언어로 전교할 수 있는 교학적 소양과 깊은 신념이 있었다. 그로 인해 전교의 대상인 중국 지식인층은 천주교를 손쉽게 접하며 호감을 갖고 천주교의 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수도인도 개인의 자질 향상에 힘쓰며 폭넓은 문화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도전님께서는 타인을 구제하려면 무엇보다 자성이 완성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하여 끊임없는 내적 성장을 위해 항상 살피고 연구하여 수도에 매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08 포덕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이므로, 수도인의 진정성 있는 종교적 삶은 사람들에게 그 자체로 감화를 준다.
  둘째, 그의 적응주의 전교 방법은 우리 종단이 타 종교와 교류할 때 상생의 법리로 포덕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우리 도에서 전교는 곧 포덕(布德)이다.09 도전님께서는 자기가 믿는 종교가 제일이라는 생각 때문에 다른 종교인과 무종교인을 이방인 취급하거나 백안시하지 말고 오히려 이들과 더욱 화목하고 화합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10 포덕하는 과정에서 수도인들이 타 종교인과 교류할 때 타 종교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상호이해와 존중을 추구한다면, 이것이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다.
  셋째, 그의 상제관 중심의 전교는 상제님을 타 종교의 신앙의 대상과 비교 연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오늘날 종교 간 마찰의 원인은 무엇보다 자기 신앙의 대상에 대한 독선적인 태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 간의 대화를 유도하기 위한 비교 연구는 신앙의 대상이 지니는 특수성과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종교인들 간에 그들이 각기 믿고 헌신하는 신앙의 대상의 차이와 공통점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러한 이해를 통해서 존중과 화합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이는 자신의 신앙을 지키면서도 타인의 신앙을 존중하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 도전님께서는 “포덕에서 우주를 주재하신 권능의 주인으로서 상제의 무량(無量)하신 덕화와 무변(無邊)하신 권지의 소유주(所有主)이심을 널리 알려야 한다.”라고 하셨다.11 이러한 상제님을 타 종교의 신앙의 대상과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비교 연구하는 것은 학술적으로 큰 의의를 지니며 종교 간의 소통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아울러 타 종교의 신앙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여러 사람에게 상제님의 덕화를 선양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마두는 중국의 전통사상인 유학을 배척하지 않고, 그 유학의 이론체계를 수렴하여 상제관 중심으로 천주교의 교리를 전교하였다. 그는 성리학의 리를 대신하여 천주교의 천주와 선진 유학의 상제의 동일성을 주장함으로써 이질적인 사상의 소통을 시도한 것이다. 그의 상제관은 만물의 근원에 대한 중국 유학자들의 관심을 파악하여 천주교 신학자가 그것에 어떻게 답변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모색한 결과였다. 결국 그는 유학의 교리와 사고방식을 공부하여 상제관을 중심으로 천주교와 유학의 합일점을 찾고자 한 것이다.
 
 
 
 
참고문헌
Matteo Ricci, 『천주실의』, 송영배 외 공역,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김선희, 『마테오 리치와 주희, 그리고 정약용: 『천주실의』와 동아시아 유학의 지평』, 서울: 예문서원, 2012.
백민정, 『정약용의 철학: 주희와 마테오리치를 넘어 새로운 체계로』, 서울: 이학사, 2007.
송영배, 『동서 철학의 충돌과 융합』, 서울: 사회평론, 2012.
기시모토 히데오(岸本英夫),  『종교학』, 박인재 옮김, 서울: 김영사, 1996.
와덕충(洼德忠)·서순장(西順藏), 『중국 종교사』, 조성을 옮김, 한울 아카데미, 1996.
히라카와 스케히로(平川祐弘), 『마테오 리치』, 노영희 옮김, 동아시아, 2002.
송영배, 「마테오 리치의 중국 전교와 그의 유교관」, 『종교신학연구』 7, 1994.
조은식, 「마테오 리치의 중국선교 방법론 연구」, 『선교신학』 17, 2008.
 
 

01 이마두의 생애와 관련해서 참고할 만한 것으로는 빈센트 크로닌, 『西方에서 온 賢者: 마테오 리치의 생애와 중국 전교』, 이기반 옮김 (서울: 분도출판사, 1994); 조너선 D. 스펜스,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주원준 옮김 (서울: 이산, 1999); 히라카와 스케히로(平川祐弘), 『마테오 리치』, 노영희 옮김 (서울: 동아시아, 2002)가 있다.
02 이마두는 교운 1장 9절, 교운 1장 10절, 교운 1장 65절, 예시 66절에 등장한다.
03 와덕충(洼德忠)·서순장(西順藏), 『중국 종교사』, 조성을 옮김 (서울: 한울 아카데미, 1996), pp.367∼368 참조.
04 조은식, 「마테오 리치의 중국선교 방법론 연구」, 『선교신학』 17 (2008), p.3 참조.
05 송영배, 「마테오 리치의 중국 전교와 그의 유교관」, 『종교신학연구』 7, (1994), p.14 참조.
06 백민정, 『정약용의 철학: 주희와 마테오리치를 넘어 새로운 체계로』 (서울: 이학사, 2007), p.64 참조.
07 『천주실의』는 ‘천주에 대한 참된 토론’이라는 뜻이며, 8편 174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주실의』의 내용·목차는 다음과 같다. 제1권: 1) 천주가 처음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그가 그것을 주재하고 구원하는 일을 논함, 2) 세상 사람들이 천주를 알아보지 못함을 논하고 도교와 불교의 무(無)와 공(空)에 대한 이마두의 논박, 3) 동물의 영혼과는 다른 인간 영혼의 불멸을 논함, 4) 귀신들이나 인간의 영혼과 연관된 잘못된 관념들을 반박하고,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세상의 만물들이 하나의 실체[氣]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음을 설명함, 제2권: 5) 육도윤회(六道輪回)나 살생 금지 같은 불교의 허황한 이론을 비판하고 금식의 참뜻을 밝힘, 6) 행위를 선하게도 악하게도 할 수 있는 인간의 의도는 소멸할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하고 사후에는 반드시 살아서 행한 선악에 따른 천당의 행복과 지옥의 불행 응징이 있다는 점을 설명함, 7) 사람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선임을 제시함, 8) 서양의 도덕관념에 따라서 사제들의 독신과 천주의 현세 강생을 설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송영배, 『동서 철학의 충돌과 융합』 (서울: 사회평론, 2012), pp.27∼28 참조)
08 “타인을 구제하려면 무엇보다 자성(自性)이 완성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때문에 끊임없는 내적 성장을 위해 항상 살피고 연구하여 수도에 매진해야 합니다. 자기에 대한 성찰과 완성을 위한 실천은 무엇보다 분수를 지키고 허영과 야망을 경계하여 열심히 수도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대순회보》 3호, 「도전님 훈시」)
09 “포덕이란 상제님께서 천지신명(天地神明)들의 하소연에 따라 이 땅에 오셨고, 진멸 지경(盡滅地境)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널리 구하셔서 영원한 복록(福祿)이 있는 후천 선경(後天仙境)으로 갈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과, 이에 맞추어 수도(修道)를 함으로써 큰 운수(運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천하 창생(天下蒼生)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대순회보》 9호, 「도전님 훈시」)
10 “흔히 우리 사회에서는 자기가 믿는 종교가 제일이라는 생각 때문에 타종교인과 무종교인을 이방인 취급하거나 백안시하는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도인들은 절대로 그리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들과 더욱 화목하고 화합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대순회보》 4호, 「도전님 훈시」)
11 『대순지침』,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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