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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4년(2014)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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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화고 : 종통은 도의 생명이며 천부적인 신성한 연속성이다

종통은 도의 생명이며 천부적인 신성한 연속성이다
 
 
글 교무부
 
 
 
  대순진리회의 연원(淵源)은 강성상제로부터 계시(啓示)로써 종통을 이어받으신 조정산 도주님으로 계승되고 도주님으로부터 유명(遺命)으로 종통을 이어받으신 박우당 도전님으로 계승되어 현재까지 우여곡절과 시련은 있을지라도 수도의 완성과 지상천국 건설이라는 대순진리회의 목적을 완수하는 길에서 전 도인들이 정성을 다하고 있다. 이 천부의 종통계승을 부정하고서는 수도의 완성인 도통(道通)과 종단 대순진리회의 목적을 완수하는 일에 대하여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지엽이 어찌 무성할 수 있겠는가. 연원은 실로 인위적인 사도(私道)와 신도(神道), 난법 난도와 진법을 가르는 시금석이 되는 것이다.
  상제님을 받드는 단체는 여럿 있지만 조정산 도주님을 받드는 곳은 태극도와 대순진리회 두 곳이고 도전님을 종통의 계승자로 인정하는 곳은 대순진리회뿐이다. 도전님께서 모습을 감추신 이후로 대순진리회 안에서도 분파가 일어나 신앙의 대상을 구천상제님 한 분이 아니라 세 분이라 하고 주문을 고치며, 신위를 바꾸는 등 난법 난도를 자행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도의 최고법인 『도헌(道憲)』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상제님의 유지(有志)와 도주님의 유법(遺法), 도전님의 유훈(遺訓)을 거스르는 것이다.
  『도헌』의 제1조에는 명칭, 제2조에는 창도주, 제3조에는 신앙의 대상, 제4조에는 본회의 목적, 제5조에는 본회의 사명을 규정하고 있으며, 제13조에 연원을, 제17조에 도전님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고 있다. 제1조에 “본회는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라 칭한다.” 하였는데 어떠한 단체가 대순진리회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나머지의 조항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이중 하나의 조항이라도 위배하여서는 대순진리회라 볼 수 없는 것이다. 신앙의 대상을 세 분으로 하는 것은 제3조 “본회의 신앙 대상(信仰對象)은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이시다.”에 위배되므로 대순진리회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종통은 도의 생명이며 천부적으로 전해지는 신성한 연속성이다. 종통이 올바르지 않고서는 도의 생명력을 얻을 수 없으며 따라서 도를 현창하며 성장 발전할 수 없는 법이다. 지금 현재 상제님의 유지(有志)와 도주님의 유법(遺法), 도전님의 유훈(遺訓)을 그대로 지키고 수호하며, 진법의 핵심인 시학·시법공부를 유일하게 돌리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보면 어느 곳에 진법(眞法)이 머물고 상제님의 덕화와 신명의 가호가 있는지를 명백하게 알 수 있다.
  도전님께서 “본도의 연원(淵源)은 상제님의 계시(봉서)를 받으셔서 종통을 세우신 도주님으로부터 이어 내려왔다. 나는 도주님의 유명(遺命)을 직접 받아 종통을 계승하였느니라. 이 연원은 바꿀 수도 고칠 수도 없으므로 연운(緣運)과 혼돈해서는 아니 된다.”01라고 하셨다. 우리 도의 연원은 신앙의 대상이신 구천상제님과 창도주이신 도주님, 영도자이신 도전님의 연원이다. 이 연원은 천부적인 것으로 연원에 따라 입도 후 선도자와 맺어지는 연운(緣運)과는 다른 것이다.
  근래에 군소 단체들이 대순진리회 도인들을 상대로 도전님을 부정하거나 비방하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는 법이다. 석가모니의 영산회상에서도 데바닷타의 난이 있었다. 후천대도의 진법을 수행하여 대도의 완성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에 어찌 도척(道慼)과 마(魔)가 없겠는가. 그것은 상제님 재세 시부터 도주님, 도전님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늘 있었다. 오늘날 그들이 발호한다고 해도 하나도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하나(一)가 도(道)다. 하늘 아래 진법은 하나이지 여기 있고 저기 있는 것이 아니다. 『채지가』에 “탄탄대로 어디두고 천방지축 무삼일고”(뱃노래)라는 구절은 대도의 진법을 수행하면서 연원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지 못하고 이 단체 저 단체 기웃거리는 일부 수도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문제는 수도인들을 현혹하는 그런 단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순진리를 수행하는 수도인들의 입장과 자세에 있는 것이다.
  도척의 집단에 낚이는 수도인들의 특징은 예외 없이 도에 불평불만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과 인화(人和)하지 못하며 혼자 고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글의 사자도 먹잇감을 구할 때 물소 떼의 무리에서 이탈하거나 뒤처져 홀로된 물소를 노리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상태가 도에서 멀어져 있으므로 그런 자들을 만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대부분 도에서 나간 사람들인데 전에 알던 인연을 쫓아 접근하므로 도에 관한 한 인정(人情)과 사정(私情)을 두어서는 안 된다. 연원을 부정하여 도의 맥이 끊어진 사람들은 운수가 없는데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고 이런 자들을 가까이할 이유가 그 어디에도 없다. 자신이나 주변에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도우들이 있다면 지체 없이 방면임원이나 선각자들에게 알려서 공동으로 대처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신명공판(神明公判)이란 운수마당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라 수행하는 과정에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업공, 포덕공이 크다 해도 끝까지 따라가는 공이 가장 큰 것이다. 아무리 포덕을 많이 하여 사업공이 크다 하더라도 끝까지 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도중에 탈선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대도를 비방하고 연원을 부정하며 도인들의 운수를 그르치는 자들의 전도는 전에 쌓은 공덕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천지공사를 방해하는 죄에 해당하므로 천위신벌(天威神罰)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경』에 “수운(水雲) 가사에 ‘난법 난도(亂法亂道)하는 사람 날 볼 낯이 무엇인가’라 하였으니 삼가 죄 짓지 말지니라.”(교법 1장 33절)하신 말씀과 『채지가』에 “난법난도 하던사람 전공은 고사하고 천위신벌 없을쏘냐”(뱃노래)라는 구절은 다 이들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수도인이라면 도전님을 부정하거나 비방하는 사람들과 만나지도 않을 것이지만 설사 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대화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보더라도 누가 자신의 아버지를 비방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도척의 집단은 늘 있어왔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괴설(怪說)은 항상 변하여왔다. 지금 이들은 도전님을 부정하고 심지어 비방까지 한다. 이들이 상제님과 도주님을 부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렇게 해서는 아예 수도인들과 대화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다. 과거 도척에 해당하는 여러 집단이 있었지만 도전님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 당시 도전님을 부정하고서는 대순진리회 도인들과 대화 자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척(道慼)의 집단이란 수도인들의 도심(道心)을 시험하여 수도의 완성을 방해하려는 목적을 지닌 집단을 뜻하는 것이라면 분위기나 상황에 따라서 논리를 바꾸어가며 수도인들의 도심을 시험하게 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도척의 집단이 도전님을 부정하고 비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논리가 일부 방면 도인들에게 문제가 된다고 한다. 도전님을 모시고 수도해 온 오래된 도인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이야기들이 도에 대한 믿음이 부실하거나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수도인들의 도심을 흔드는 것이다.
  상제님 재세 시에 따르던 종도(從徒)들은 20여 명이었고 태극도 당시는 10만 도중(徒衆)이라 하였으며 대순진리회 수도인은 수백만에 이른다. 상제님 재세 시에는 하느님으로서의 권능을 행하시어 당시의 종도들이 상제님을 믿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상제님의 권능을 직접 보면서 믿는 것과 보지 않고도 이치와 경위로 믿음을 지니게 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상제님의 권능을 보면서 믿는 것보다 훗날 보지 않고 믿는 사람들의 도심(道心)은 더 깊어야 할 것이다. 상제님을 곁에서 모시면서도 고부화란을 거치고 나니 믿음을 저버린 종도가 대다수였다. 지금 대순진리회에는 당시의 종도들보다도 태극도 당시의 10만 도중들보다도 더 순수하고 도심이 깊은 수도인들이 수많이 양성되어 있다.
  상제님께서 삼계대순 개벽공사를 통하여 후천선경을 건설할 설계도를 짜놓으시고, 계시로써 종통을 이어받으신 조정산 도주님께서 50년 공부종필로 후천대도의 진법(眞法)을 설정(設定)하셨으며, 박우당 도전님께서는 도주님으로부터 유명(遺命)으로 종통을 이어받아 상제님의 유지(有志)와 도주님의 유법(遺法)에 따라 신인합일(神人合一) 공부를 통하여 수도의 완성을 이룰 수 있는 도장을 건립하시고 3대 중요사업의 연차적 시행으로 지상천국 건설의 토대를 마련하셨으며, 장차 도통군자가 될 수도인들을 수많이 양성하셨다.
  도전님께서는 천부적인 종통의 계승자이시며 대순진리회의 영도자이시다. 대순진리회의 수도인으로서 우리는 음해로부터 도전님을 견결히 옹호 사수하여야 한다. 진실로 도를 믿는 수도인이라면 적어도 면전에서 도전님을 부정하거나 비방하는 언행을 용납하여서는 안 된다. 그 누가 자신의 면전에서 부모님을 비방한다면 그런 자를 가만히 두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도전님에 대한 비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식의 부모에 대한 마음은 효(孝)이지만 우리 도인들의 도전님에 대한 마음은 충(忠)이다. ‘충즉진명(忠卽盡命)’이라, 충은 목숨을 다하는 것이라 하였다.  
  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상제님 재세 시에는 종도라고 하였고, 도주님 시대에는 도중(徒衆)이라 하였으며 대순진리회에서는 수도인이라 한다. 상제님을 따르던 종도들은 자신들이 도통을 받는 줄 알았다. 이것은 태극도의 도중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금강산의 정기로 12,000명의 도통군자가 배출되는 이 일이 어찌 작은 모임에서 공부도 없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다 때가 되고 도통군자감의 도인이 육성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대순진리회에서는 수도인이라 한다. 수행과 공부를 통하여 수도의 완성을 이루면 수(修) 자가 떨어져나가 완성된 인간, 도인(道人)이 되는 것이다. 상제님께서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 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마음을 게을리 말지어다.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예시 87절)라고 하셨는데 대순진리회에 운(運)이 있는 것이다. 상제님의 대도의 참뜻이 살아 숨 쉬는 대순진리회에 대운(大運)·대통(大通)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상제님의 유지(遺志)와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숭신하고 도전님의 유훈(遺訓)을 수도의 완성과 종단 발전의 대목(大目)으로 삼아 상제님의 대도의 참뜻을 이 세상에 구현하기 위하여 3대 기본사업과 3대 중요사업에 성·경·신을 다하여야 하겠다.
 

01 『대순지침』, pp.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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