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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4년(1984)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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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 무도와 천하대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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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道와 天下大藥


“세계는 큰 병에 걸려있다”

인간은 원을 품은 존재, 한에 빠져
대병의 치유, 도를 얻어야만 가능


김찬성 <선감>

 

  앓는 것도 병이나 내가 겪는 고생도 일종의 병이요, 나의 못된 버릇도 병이요 내가 품은 원한도 병이거니와 나의 밖에서 보이지 않게 있는 원기()나 불평도 병이다. 서로 다투고 싸우는 것도 앓는 병과 마찬가지로 병이다. 이런저런 병들이 내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밖의 세계에도 꽉 차 있고 이 병들로 인해서 인간세(人間世)나 신명의 세계가 하나의 큰 화근의 바다로 변해 버렸다. 그래서 인간들은 절망에 이르는 병에 걸려들었고 삶의 보람을 잃어 버렸다. 진실로 절망은 인간들을 죽음의 무덤으로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똑바로 무엇이 병인가 찾아보고 절망으로 부터 솟아나서 삶의 소망을 되찾아야한다. 「전경」(典經)은 「천하의 대병」이 어떤 것이며 그 병에 쓰일 약과 치료법을 가르치고 있다.    

   첫째 무엇이 나에게서 병인가. 몸에 생긴 병도 있고 마음의 병도 있다. 육체의 병은 작은 병(小病)이고, 마음의 병은 큰 병(大病)이다. 작은 병은 사물탕(四物湯)으로 고칠 수 있으나, 마음의 병은 큰 병인만큼 약물(藥物)로 고칠 수 없고, 안심(安心) 안신(安身)이 그 약이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육체의 병은 내과 외과 신경과 부인과 등의 국부의학(局部醫學)에 의해서 고쳐졌고 또 고쳐지고 있으나, 고쳐질 수 없는 병도 고쳐질 수 있는 병만큼 따라서 생기고 있다. 말하자면 상제께서 이미 말씀하신 괴질(怪疾)이 상대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괴질병은 옛날의 의술(醫術)이나 오늘날의 의학(醫學)의 지식으로서는 그 원인이 규명될 수 없는 병이다. 그러니 고쳐질 수 있는 병보다 괴질병이 사람들을 더 절망하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할 것이다

  그 괴질병은 오늘날의 의학으로는 병원체로부터 신경성의 질환에 서 원인 모르는 병의 증가에 이르기까지 갖가지이나, 이런 괴질병마저도 상제께서는 의술에 의해서 고쳐질 수 있는 소병(小病)이라 하여, 그다지 문제로 삼으시지 않으셨다. 그보다도 무서운 병은 마음의 병, 영혼의 병이다

  마음의 병은 무엇보다도 불평불만이며, 이 불평불만은 인류가 생활하기 시작할 때부터 있어 온 것이며, 끝내는 마음속에 원()을 맺히게 하는 병원체이다불평은 죽은 사람의 소원도 들어 주는데 산 사람의 소원 못 들어주랴는 흔히 쓰이는 말속에 담겨져 있는 소원이 이룩되지 않는데서 생긴 것이지만 원()또는 한()을 맺는다

  의 뿌리를 전경(典經)머리를 긁으면 몸이 움직이는 것과 같이 인류의 기록의 시작이고 원의 역사의 첫 장인 요()의 아들 단주(丹朱)의 원을 풀면 그로부터 수천 년 쌓인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리라. 단주가 불초하다 하여 요가 순()에게 두 딸을 주고 천하를 전하니, 단주는 원을 품고 마침내 순을 창오(蒼梧)에서 붕()케 하고 두 왕비를 소상강에 빠져 죽에 하였노라.

  이로부터 원의 뿌리가 세상에 박히고 세대의 추이에 따라 원의 종자가 퍼지고 퍼져서 이제는 천지에 가득 차서 파멸하게 되었느니라.라 하여 단주에 두었다단주의 마음의 구석에는 요()로부터 짓밟혔다는 생각에서 불평불만을 품고 마음은 마침내 억울함과 노여움으로 가득 찬다.

  그 억울함과 노여움의 두 감정은 복수하려는 마음을 일으켜 순()을 죽게 하고 두 딸을 또 물에 빠져 죽게 하였다. 이래서 세상 최초의 살인극이 벌어졌다

  그러나 한편 죽은 순과 두 왕비도 또 을 품게 되고, 단주에 억울함과 노여움을 품었다. 이렇게 해서 한사람이 품은 은 또 하나의 다른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여기서 앙심이 생기고 복수심이 생기며, 저주의 마음이 일어난다. 이래서 이 세상은 원한으로 가득 차는 것이다

  을 품고 죽은 사람은 갈 곳이 없고 그 원을 풀어야만 갈 곳에 안착(安着)한다. 그래서 생전에 겪은 좌절을 회복하기 위해서 죽은 사람은 살아서 못 다한 일을 죽어서도 수행하고자 이 세상에서 헤매어 다니면서 원을 입힌 살아 있는 상대자를 찾아서 앙갚음을 한다

  여기서 죽은 자와 산자 사이에 무서운 복수의 싸움이 벌어지고, 설혹 죽은 자가 당했던 원한이 풀렸다 하여도 산 사람은 복수의 제물이 되는 또 하나의 비극이 벌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전경에서 말하는 신명계와 인간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극(相克)이다상극은 신앙 상으로는 인간살이에 일어나는 해코지이기도 하다.

  해코지란 원을 품고 죽은 사람이 심통의 화신(化身)이 되어서, 산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골라서 죽게 한다는 신앙이다. 그러니 원은 진정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고 삶을 깨뜨리고 만다. 그러하니 은 죽음을 몰고 오는 병원체와 같고, 인류의 적()이다

  전경은 원에 대해서 남에게 억울한 원을 짓지 말라. 이것이 척이 되어 보복 하나니라.고 하여, 억울함에서 원 일고, 원이 척이 되어서 보복을 몰고 온다는 것이다. 보복에는 반드시 독기가 깃들어 있다

  또 한편으로는 나를 헐뜯는 사람에 대한 비방이나 구설은 받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에게 척이 되고 원이 되고 그 원이 척이 되고, 척은 남을 해치고 남은 나를 해친다

  그러므로 소병(小病)은 한쪽으로서는 원··보복이란 회로(回路)와 또 한쪽으로서는 비방··독기의 회로를 통해서 만연된다. 여하튼 원에서 생긴 병은 나만이 아니라, 너도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되는 것이다

  둘째로 큰 병이 사회에 만연 되어 있다. 큰 병을 일러 무도병(無道病)이라 한다 

  이 병은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고 판단한 것을 그릇된 것이라고 생각을 마비시킨다. 예를 들면 우리는 손을 움직이려고 생각(마음의 현상)하면, 손이 움직인다(몸의 현상)고 생각하고 또 손에 상처를 입으면 (몸의 현상)고 생각하고 또 손에 상처를 느끼는 (마음의 현상)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마음과 몸이 서로 관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무도병에 걸린 사람들은 마음과 몸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마음은 마음이고, 몸은 몸이라고 주장하며,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을 물질주의자라고 일컫기도 한다

  그들은 악을 악으로 갚을 것이며, 피를 피로 씻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보화(寶貨)에 낭패()가 붙어 있는데도 돈을 탐내고 명리(名利)를 증대(增大)하기에 바쁘고 자만하고 천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선령(先靈)의 뼈를 오려 내는 양반만을 외식(外飾)한다.한마디로 부귀(富貴), 명리(名利), 권력(權力)을 얻는 데에만 급급하다 그러므로 무도병은 사람들을 웅패(雄覇)에만 묶어둔다.

  웅패란 무도병은 가정에 퍼지면 부인은 남자의 완롱(玩弄) 거리나, 사역(使役) 거리로 보게하고, 아내가 남편의 열부가 되게 만든다.결국은 자기외의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가볍게 여긴다.

  처녀나 과부의 사생아나 그 외의 불의하게 출생된 아기는 압사나 질식당하고, 사람의 목숨을 파멸 시켜서라도 대군을 거느리고 적진을 쳐서 무찌르는 것을 영광으로 삼게 된다.

  이런 목숨의 천시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 배사율(背師律)이 횡행하여, 일본사람은 서양 사람으로부터 재주를 배웠으나 그들을 배반하여, 그들과 싸웠고, 조선은 일본을 지도한 선생의 나라인데, 일본사람들은 배은망덕하여, 일시나마 선생의 나라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였으며, 서양 사람들은 보다 더 큰 죄를 지어, 하늘이 내린 기계문명으로 이웃들을 한꺼번에 수십만 명씩 죽이곤 하였으며, 약한 나라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래서 천하는 모두 무도병에 걸렸다. 즉 천하는 불의(不義)의 병에 걸린 것이다. 그리고 불의는 불행에 직결한다. 불행의 오늘날의 상황을 잠시 살피기로 한다 

  돌고 돌아야 하는 돈은 아직도 돈이 눈이 멀어서인지, 천하가 다 망하고, 나의 목숨이 희생되더라도 쥐고 놓지 않는 위력을 가지며, 그 위력 앞에 아무 소용없이 무릎을 꿇는 사람이 많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돈이요, 벼락을 맞아 죽더라도 돈벼락을 맞으려고 한다. 재물욕은 나란 존재를 송두리째 앗아가니 나는 죽은 사람과 다름없는 껍데기가 되었다. 이것이 현대인이다.

  고도로 발달한 산업은 욕구되는 물자를 보다 풍부하게 현대인에게 공급하였다. 여가를 즐길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물자의 풍요가 반드시 현대인의 마음의 풍요가 되어 주지를 않는다. 욕구 불만을 구천에 하소연 하리만큼 을 품게 하기도 한다.

  은 사람들을 무력감(無力感), 무의미감(無意味感), 고립감(孤立感), 자기상실감 (自己喪失感)에 빠뜨리고 말았다. 이것들은 오늘날의 무도병이며,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마음을 바로하고 덕을 닦기를 힘쓰라. 동학가사에 많고 많은 저 사람에 어떤사 람 저러하고 어떤 사람 그러한가와 같이 탄식줄이 저절로 나오리라(교법)

  죽음에 이르는 길에 놓인 현대인들이 충심으로 음미할 말씀이다.

  그 길에서 벗어나는 길은 인간은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 큰 병에 걸리느니라(교법24)는 말씀대로 욕망을 채우는 소망에서 찾아진다.

  소망은 배의 고픔이 고픔에 채워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다른 밥에서 해소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터에서 채워지지 않고 딴 데서 채워진다. 소망을 위한 용약 (用藥)공사의 일꾼이 된 자는 마땅히 씨름판을 본 따를 지니, 씨름판에 뜻을 두는 자는 반드시 판밖에서 음식을 취하고 기운을 길렀다가 끝판을 벼르느니라.(교법39)의 말씀대로 판밖에 있다. 판밖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믿음의 세계이다.

  믿음은 소망을 낳고 소망을 채워 준다. 그 믿음이 바로 해원상생의 도의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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