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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2년(2022)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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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 문예 : 세 번의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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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대순문예공모전 산문부문 장려


세 번의 정성



잠실24 방면 선무 지아연




  겨우 한고비 넘긴 지금 조심스레 저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2004년도에 선각을 만나 집안의 대표라는 말에 입도식을 했고 입도식 도중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납니다. 입도한지 17년이란 세월 동안 도를 닦으면서 업보와 저를 알아가는 긴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안정된 아버지 사업 덕분에 넉넉하고 부족함 없이 잘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무용에 대한 꿈이 컸고 오로지 그 하나의 행복감에 빠져 다른 것엔 관심도 흥미도 없었습니다. 입도 이후 제 수도생활은 거북이 같았고, 2006년부터 집안의 업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지인한테 사기를 당하여 피해를 보았는데 그 여파로 분노를 이기지 못해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셨고 알코올중독, 알코올성 치매로 시작해 결국은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아버지와 딸로 만나 좋은 추억보다는 가슴 아픈 기억이 더 많이 남았습니다.
  아버지의 알코올중독 문제를 가족애로 해결할 수 없어 입원시켰습니다. 아버지가 입원한 지 4주 뒤 처음 면회 갔을 때 그 모습은 너무나도 처참했습니다. 손목에는 밧줄로 묶은 것 같은 상처가 있었고 몸 여기저기 상처가 있어 저를 울부짖게 하였습니다. 엄마와 상의 후 더 나은 환경의 병원으로 아버지를 옮겨야 했습니다. 옮기는 도중 구급대원이 아버지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고 아버지는 거세게 저항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동 중 차 안에서 저에게 “아빠가 너희들에게 못 해준 거 있냐? 분하고 억울하다! 분하고 억울하다!”를 반복하셨습니다. 결국 병원으로 이동 중 저와 언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버지께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난폭함이 두려웠고 엄마를 공포에 떨게 했던 지난 상황이 너무 생생해서 매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 개월 뒤 아버지는 결국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뇌사상태에서 9년을 지내다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는 시기부터 저의 폭식증이 시작되었습니다. 저에게 분노와 원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마다 거짓된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친구 삼아 마음을 달랬고 살이 찔까 두려워 구토하였는데, 그렇게 해서 속이 비워질 때 후련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 행위에 점점 중독되어갔고 마음이 안 좋을 때마다 늘 이 방법을 택했습니다. 뇌에서는 그 순간 쾌락을 기억하다 보니 저는 습관적으로 15년째 폭식증이란 섭식장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저는 요가강사 일을 하면서 폭식증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폭식의 원인은 분하고 억울한 마음, 원망과 분노였습니다. 예전 아버지가 느꼈던 억울한 마음 분노가 저와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15년 동안 분노와 원망으로 살았고, 더불어 폭식증까지 앓게 되었고 ‘이것이 우리 집안에 업이구나’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겪었던 업을 제가 겪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이 업보로 돌아가셨지만, 그 업이 다 풀리지 않아 저 또한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제 업으로 인한 불화는 끊임이 없었고 저는 심한 스트레스로 공황발작과 과호흡으로 집에서 몇 번이나 쓰러졌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가족들은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를 권했고 치료를 위해서 폐쇄병동이라도 가길 원했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버틴다고 버텼는데 저도 어찌할 수 없어 무서웠습니다. 정말 이러다가 제가 정신이상자가 될까 두려웠습니다. 희망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상황이 최고 절정에 있을 때 선각분들께서 집에 오셔서 기도와 수련을 모셔 주셨고 모든 상황을 알게 된 선사께서 병원에 가거나 정성 들여 기도를 모실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저는 단번에 정성을 들이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처럼 폐쇄병동에 가긴 싫었습니다. 아침 7시 기도를 49일간 모시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첫차를 타야만 기도 시간에 맞춰 포덕소에 갈 수 있었습니다. ‘몸 상태도 이런데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지만 저는 절박했습니다.
  49일 동안 새벽 4시 반에 저절로 눈이 떠졌고 동이 트기 전 깜깜한 새벽에 한 발짝 한 발짝 옮기는 걸음은 희망이었습니다. 초기에는 분노와 원망이 올라왔지만 힘들게 버티면서 기도와 수련을 잘 모셨고,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원망의 불은 차츰 줄어들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49일을 마쳤고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이렇게 정성을 끝내기 아쉬웠습니다. 기도와 수련을 더 하고 싶었고 신명의 보호를 받고 싶었습니다. 결국 포덕소 옆에 원룸을 얻었습니다. 첫 정성을 마치고 나서 저의 겁액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정성을 들여서 병이 낫는 건 아니지만 저 자신이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를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포덕소 근처로 이사 오고 몸 회복을 위해 요가를 다시 시작했지만 몸이 말을 안 듣고 무엇보다 마음의 갈등이 저를 아주 힘들게 했습니다.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원망, 분노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폭식은 조금 줄긴 했지만 변함은 없었습니다. 이 상황을 본 선사께서 제안했습니다.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청수를 떠 놓고 허물을 살펴 뉘우치라고 하셨는데 지선무도 49일 반성의 정성을 들여 보자. 이번엔 한복 입고 축시 기도를 모시는 거야. 네가 만든 척과 업을 푸는 반성을 하는 정성이야. 전에 했던 기운 모시기보단 반성하는 정성이기 때문에 척이 더 밀려올 수 있으니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거야.”




  그렇게 49일 정성이 또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첫날 초반부터 밀려오는 고통은 수술용 메스로 온몸을 난도질하는 것 같았고 집에 와서 엉엉 소리 내며 울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척을 풀고 반성하는 정성이라 그런지 그동안 말과 행동으로 지은 척을 되돌려 받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는 집이 포덕소 옆이고 좋은 울타리라 그런지 힘들고 어려운 부분도 잘 이겨냈고, 안정감이 들어서 잘 참게 되었습니다. 낮에 스포츠센터 요가 수업을 했고 밤엔 목욕재계 후 한복을 입고 정성껏 기도를 모셨습니다.
  하지만 정성 끝나기 일주일을 남겨두고 불안이 엄습해 왔습니다. 불평, 불만, 분노, 원망이 올라왔습니다. 며칠 남겨두고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결국 포덕소에서 뛰쳐나왔고, 걱정하면서 찾고 있는 선사의 연락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너무나 괴로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음에서 오는 분노의 화(火) 때문이었습니다. 안절부절못하다가 선사께 도저히 기도는 못 모시겠다고 문자로 보냈는데 답변이 왔습니다. 여러 가지 내용이 많았지만, 마지막에 “아버지가 지켜주고 계신다.”란 문장이 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고 곧바로 포덕소로 달려가 기도를 모셨습니다. 여기서 그만두면 평생 폭식증에 시달리며 이 모습으로 살아야 하고, 심적인 원망과 분노의 기운은 영원히 못 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가까스로 고비를 겨우 넘겼고, 우여곡절 끝에 49일 정성을 잘 마쳤습니다. 두 번째 정성은 스스로 많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마음속에 울화가 오는 척의 기운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의 정성을 끝낸 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상제님, 천지신명님, 조상님, 이끌어주신 선사께 감사한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감사의 심고를 드렸습니다. 이후 세 번째 기도 정성은 스스로 들이기로 했습니다. 감사의 정성이었습니다. 이번엔 무리 없이 잘 모셨습니다. 그러나 예전보다 몸과 마음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고 더 극단적으로 치달았습니다, 오히려 폭식도 더 늘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선사께 하소연하고 평이 좋은 가까운 신경정신과에 선사와 같이 갔습니다.
  의사는 저의 병을 여드름과 같다며 너무 아무렇지 않은 듯 쉽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저는 불치병이라고 좌절하며 15년을 살아왔는데 여드름에 불과하다니 의아했습니다. 여드름도 시간 지나면 가라앉듯 폭식도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고, 자연스레 가라앉는다고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이후 처방받은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습니다. 약을 먹고 난 뒤로 일주일도 안 돼서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두세 번 하던 폭식은 한 달에 한두 번으로 끝났습니다. 스스로 너무 믿어지지 않았고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아도 되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의심스러웠습니다. 하루하루가 거짓말 같았습니다.
  세 번의 정성을 끝내고 약을 꾸준히 먹고 도의 기운을 모셔나가는 지금은 너무나 행복합니다. 세 번의 정성으로 신명과 조상님께서 저의 병을 고쳐 줄 의사를 만나게 해주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정성을 통해서 저를 알게 해주고, 부족한 제 의지를 심어 주었고, 무엇보다 저 자신의 업을 인지하게 된 것이 너무 값지단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 정성을 들이지 않았다면 늘 남을 원망하고 탓하고 분노와 원망하며 저주받은 인생을 살았을 텐데 지금은 그것에서 벗어나 너무 행복합니다.
  15년의 세월, 겁액을 겪어오면서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신 상제님, 천지신명님, 조상님, 그리고 손이 많이 가고 애먹이는 저인데도 이해해주시고 기다려주신 방면 임원분들과 선각분들께 죄송하고 또 감사함을 전합니다. 이젠 큰 고비 하나 넘긴 것 같습니다. 저 자신이 겁액을 통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젠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상제님의 덕화를 입었으니 건실한 도인이 되어 상제님 일을 더 성심껏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천상계에서 늘 지켜주시고 있는 아버지께 못다한 효를 수도를 잘해서 갚으려 합니다. 다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조상님과 운수 마당에서 만날 때까지 정심으로 수도하도록 하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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