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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1년(2021)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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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 초로焦勞한 선생님의 바다

초로焦勞한 선생님의 바다


마음으로 가르치는 한 교육자의 이야기



출판팀 이공균




신유식 선생님 약력
 - 1985 서야고등학교 국어교사
 - 1987 한서고등학교 국어교사
 - 1995 대진고등학교 국어교사
 - 2000 문학박사 취득
 - 2003 대진대학교 강사, 겸임교수
 - 2009 중학교,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집필(두산동아)
 - 2012 서울특별시 수석교사
 - 2015 중학교,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대표 저자(미래엔)
 - 2021 대진대학교 초빙교수



  바다는 넓다. 아름답지만 거칠다. 흘러내려 가는 듯하지만 오르는 성품이 있기에 만물을 양육한다. 이렇게 머릿속으로 바다를 그리고 있노라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헤밍웨이는 노인이라는 독립적인 인물과 바다라는 절제된 공간을 통해 고난을 이겨내는 인간의 위대한 능력을 증언한다.
  인간의 삶은 종종 바다에 비유되기도 한다. 바다는 삶이자 세상이다. ‘고독하고 무력한 존재로 태어나서 어떻게 바다를 헤쳐나갈 것인가?’라는 화두는 지성을 가진 존재 대부분이 품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소설에서 노인은 바다에 대한 애정과 풍부한 경험으로 고난을 이겨낸다. 소설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노인의 경험이 소년에게 이어지는 상상을 해본다. 이것은 교육이다. 노인 크리스틴이 소년 마놀린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선생님이 학생에게 전하는 경험들. 이러한 교육을 통해 우리는 미지의 바다를 항해할 힘과 자신감을 얻는다.
  어느 날, 대진고등학교에서 정년을 앞둔 초로(初老)의 교육자를 만났다. 초승달처럼 처진 눈매와 옹달샘처럼 깊게 빛나는 눈, 미소로 인해 훈훈한 바람처럼 새겨지는 눈가의 옅은 주름은 그가 지나온 교육자로서의 삶을, 성품을 피력하는 듯했다. 인터뷰 자리가 이렇게 편했던 적이 있었던가? 초로의 교육자, 신유식 선생님의 따뜻한 환대가 마냥 고마울 뿐이다. 이렇게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기자 안녕하세요, 선생님. 잘 지내셨지요?
신유식 선생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정년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많은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기자 실례가 안 된다면 언제 은퇴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신유식 선생님 2021년 8월이 정년입니다. 아직 젊으니 은퇴는 아니지요. (웃음)
 
기자 아! 제가 실례했네요. 오랫동안 교직에 계셨는데,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신유식 선생님 고마운 마음이 제일 큽니다. 지금까지 가르쳤던 학생들에게도, 그동안 도움을 준 동료들에게도 감사한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좀 더 열심히 못 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아 있습니다.


기자 중·고등학교 교육의 최고 전문가인 수석교사로 활동하셨는데도 열심히 못 했다는 말씀을 하시니 선생님의 교육에 대한 열의가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지네요. 혹시 퇴직 후 따로 계획이 있으십니까?
신유식 선생님 다문화 가정이나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들의 불편함을 줄여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최근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해외에서 활동하고 싶은데, 이 부분은 코로나 때문에 힘들 거 같네요.


기자 선생님께서는 다 계획이 있으시군요.
신유식 선생님 (웃음) 최근에 교과서 집필 관련으로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맡게 된다면 아이들에게 더 유익한 교과서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기자 시대가 급변하면서 교육방법도 다양하게 발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서 학생들에게 좋은 교과서는 어떤 교과서일까요?
신유식 선생님 어느 순간부터 교과서에서 우리 고유의 민족성에 대한 색채가 옅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우리가 가진 민족성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고 싶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을 추구했던 옛 모습과 함께 민족의 고유한 색을 교과서에 담고 싶습니다.


기자 이전에도 교과서 제작에 참여하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신유식 선생님 나이 오십에 접어들면서 교과서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두산동아라는 출판사에서 처음 교과서를 집필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평가원에서 심사하고 교과서에 순위를 매겼는데, 신경을 많이 써서인지 16개 교과서 중 1등으로 평가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 후에 집필한 교과서들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되니 다른 출판사에서도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집필한 교과서도 채택률 1위를 달성했었습니다.


기자 좋은 교과서를 만드는 노하우가 따로 있었나요?
신유식 선생님 노하우보다는 가슴에 새긴 지도교수님의 말씀이 먼저 떠오르네요. 마흔 살 정도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곤 세계여행을 다녔습니다. 이때 얻은 경험이 학생을 가르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쉰 살 즈음해서야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박사 과정 때 가르침을 내려주신 교수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이때 몇 가지 당부를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빈 말씀인 줄 알았는데 교과서를 쓰게 되면서 그 뜻을 깨닫게 되었네요.


  “나는 대학교수지만, 교수보다 더 높은 게 선생이다. 교수는 한 분야만 하면 되는데, 선생은 이제 막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여러 분야에서 끝없이 보살펴도 모자란다. 그런데 교과서를 쓰면 언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느냐? 성공한 선생님보다 훌륭한 선생님이 되기를 바란다.”


기자 말씀을 듣다 보니 교편을 잡는 일에도, 교과서를 집필하는 일에도 고민이 많았을 거로 짐작됩니다. 마치 망망대해를 작은 배 한 척에 의지해 떠나는 기분이었을 것 같네요.
신유식 선생님 (웃음) 학생을 위하는 게 무엇인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집필하며 현장조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전례가 없던 일이었죠. 재단과 학교에서 큰 도움을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덕분에 좋은 교과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기자 전국으로 배포되는 교과서에 선생님의 성함과 학교 이름이 적혀 있으니 자랑스럽습니다.
신유식 선생님 자랑스럽다니 다행이네요. 교과서를 집필할 때 대진고와 대진대학교의 이름이 조금 더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저자의 경력을 좀 깐깐하게 챙기는 편입니다. 재단과 학교에서 받은 덕을 보답하려는 작은 마음이지요. (웃음)


기자 교단에서의 선생님 모습도 궁금해집니다.
신유식 선생님 제가 담임을 맡을 때에는 항상 급훈을 ‘죽지 마라’라고 쓰는데, 그 이유는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 있어서입니다.


기자 어떤 학생들인가요?
신유식 선생님 열심히 해서 성공한 아이들도 많이 있습니다만, 기억에 남은 학생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기술을 배우던 학생입니다. 어느 날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학력고사 봤다고 찾아와서 해맑게 자랑하고 그랬던 친구입니다. 어느 대학도 가지 못할 성적이었지만 어찌 그리 대견하고 자랑스럽던지.


기자 열심히 살아가는 제자 모습에 무척 뿌듯하셨을 듯합니다.
신유식 선생님 그리고 말썽을 참 많이 피웠던 학생도 있었습니다. 말썽꾸러기 학생을 바르게 가르치고자 다그치기도 하고 매질도 했었습니다. 훈육한 뒤에는 맛있는 것을 사주면서 달래기도 했었는데, 결국 둘 다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활고 때문에 학교를 자퇴하고 기술을 배웠던 아이나, 말썽꾸러기였지만 항상 해맑게 웃으면서 찾아왔던 아이나, 곁에 있을 때 더 신경 써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너무 힘들었습니다.


기자 안타까운 일이 있었네요. 하지만 선생님 잘못은 아니잖습니까.
신유식 선생님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수업 중에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습니다. 이런 아픔을 겪고 나니 제자들이 너무 이쁘게 보였습니다. 이때부터 매를 들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못해도 이쁘고, 졸고 있으면 이불을 덮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싸울 수도 있고 꼴등을 해도 괜찮으니 죽는다는 소리만 하지 말아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급훈을 ‘죽지 마라’라고 쓴 이유이기도 하지요. 이런 제 마음을 느꼈는지 아이들도 더 잘 따르고 열심히 하더군요.


기자 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신유식 선생님 아이들은 유리알 같아서 쉽게 깨져버리고 흩어져 버린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도교수님의 “언제 애들을 돌볼 거냐”라는 말씀이 절실히 와닿았습니다.


기자 평생 학교에 마음을 쓴 만큼 애정도 클 거라 생각됩니다. 지난날을 회고했을 때, 어떠신가요?
신유식 선생님 정년을 앞두고 교직 생활을 돌아보니 학교와 재단에서 많은 것을 받았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 덕분에 요즘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수많은 직업 중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를 선택한 걸 감사하고, 많은 학교 중 대진고에서 후학을 양성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합니다.


기자 수석교사로서 많은 공로를 쌓으신 거로 알고 있었는데 많이 받았다고 하시니, 그게 무엇인지 궁금해지네요.
신유식 선생님 사회생활이 그렇듯이 사람과 사람이 관계하는 곳에는 좋고 나쁜 일이 많이 생깁니다. 이런 부분에서 대진고는 특별합니다. 대순진리회 재단이라서 그런지 언덕을 잘 가지라, 남을 잘되게 하라는 훈회를 실천하려는 교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기와 질투 같은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보기 힘듭니다. 그 덕에 교직 생활에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고, 좋은 일이 있었을 땐 진심으로 축하받기도 했습니다. 진심이 담긴 관계는 사회생활을 이어나가는 데 큰 힘이 됩니다. 이런 부분이 매우 감사합니다. 그 외에도 받은 것들이 많이 있는데 일일이 나열하기에는 너무 많은 듯하네요. (웃음)


기자 짧은 지면에 선생님의 이런 마음을 어찌 담아야 할지 고민되네요.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유식 선생님 이런 뜻깊은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를 드려야 할 거 같은데요? 좋은 시간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웃음)




  수석교사는 교사 중에서도 최고의 전문성을 가진 교사가 취득할 수 있는 최고 직위이다. 서울시 700여 개의 중·고등학교에 약 60명 정도만 활동한다. 수석교사는 여러 학교 수업을 참관, 공유하며 더 좋은 수업 방법을 모색한다. 그리고 신규 교사 코칭, 동료 교사 연구지원 등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활동한다. 따라서 수석교사가 있는 학교는 품위가 격상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2012년에 수석교사가 법제화되면서 교육청은 각 학교에 수석교사를 권장하고 있지만, 시험과 평가를 통해 임명되는 만큼 그 문턱이 상당히 높다.
  신유식 선생님의 수석교사 생활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좀 더 열심히 하지 못했을까’라는 아쉬움을 인터뷰에서 종종 드러냈다. 30여 년을 대진고를 위해 힘써온 선생님의 공은 분명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선생님의 아쉬움은 오히려 학교와 학생에 대한 교육자의 깊은 애정처럼 느껴졌다.
  초로(初老)01한 선생님의 초로(焦勞)02. 그 모습은 교편 한 자루를 노 삼아서 교육이라는 돛을 펼치고 망망대해를 출발하는, 아니 이미 오랜 시간 바다를 누빈 늙은 어부의 그것을 닮아있었다. 앞으로 이루어질 항해의 끝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지나간 항해의 흔적은 분명히 많은 이에게 전해질 것이다.






01 초로(初老) : 노년에 접어드는 나이. 또는 그런 사람. 예전에는 흔히 40, 50대를 일렀으나 수명이 늘어난 요즈음에는 주로 50, 60대를 이른다.
02 초로(焦勞) : 마음을 태우고 애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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