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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8년(2018)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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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 ‘민족종교’ 관점에서 본 대순진리회

‘민족종교’ 관점에서 본 대순진리회*
 
 
연구위원 전성기
 
 
 
  * 이 주제와 관련된 기존의 연구들은 다음과 같이 파악해 볼 수 있다. 《대순회보》 177호, 「Q&A 게시판: 대순진리회는 왜 민족종교라고 하나요?」에서는 대순진리회가 민족종교로서 세계종교의 가능성을 함유하는 근거들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대진대학교 석사학위논문인 김태수, 「대순사상의 민족주의적 요소에 대한 재해석」에서는 대순진리회의 민족종교성에 대한 바람직한 상생적 인식을 위한 제반의 지식과 견해를 매우 잘 제시하고 있다. 이 논문은 필자의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본 연구의 취지와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의 글을 비롯해서 도인들의 대중적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측면에서 민족이나 민족주의 개념과 유래, 역사적 긍정성과 왜곡의 부작용 그리고 대순진리회의 민족종교적 특징과 활동, 세계종교로서 발생 시기부터 지녔던 목적성과 지향성 등 보다 면밀하고 전반적인 연구는 미진한 상태였다고 확인된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민족종교로서 갖는 대순진리회의 면모를 통찰하고 그 정리된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바야흐로 현대는 사람은 물론 정보나 물자의 교류도 세계적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화 시대이다. 이제 황금연휴뿐 아니라 명절 때조차도 해외여행객의 긴 행렬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네트워크상의 정보를 통해서 해외의 멀리 떨어진 물리적 공간을 이웃처럼 느낄 수 있고,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개인과 사회의 생활과 운영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유전자정보와 과학기술이 인간을 창조하는 초인간의 영역까지 성큼 다가선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현주소이다.01
  이러한 시점에 도전님께서는 일찍이 민족종교02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본도는 민족종교이니 민족주체성 계도에 앞장서야 한다. (『대순지침』,  p.25)
이 나라의 청소년들은 장차 국가와 종단을 이끌어 갈 인물이기에 학교 교육은 민족 주체사상이 투철하고 애국애족하는 공민육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대순지침』, p.103)
 
  이처럼 대순진리회는 ‘민족종교’를 표방하고 있는데,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영토를 기반으로 한 국가 개념조차도 초월하고 있는 시기에 국가 단위에서 출현하고 존립해 왔던 민족 내지는 민족주의 개념 속에서 등장한 민족종교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민족이란 개념이 편협한 구시대적 발상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현대 과학 문명의 지구촌 시대에 도전님께서는 대순진리회가 민족종교임을 밝히시며 세계화해 나가야 한다고 하셨다.03 이 말씀에 담긴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족종교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민족과 민족주의란?
  민족종교가 갖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민족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민족(民族)이란 혈통에 기반한 종족개념에서 출발하여 각종의 정치 문화적 요소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말한다. 민족을 구성하는 사회적 요소로는 영토(지역), 언어, 풍습, 종교 등 오랜 기간을 존속하여 객관적으로 파악되는 것들과 정치, 경제 등 역사적 변화의 영향을 받는 단기적이고 주관적인 것들이 있다. 민족을 주관적 요인들로 구성된다고 보는 학자들은 민족정신, 민족의식, 민족감정처럼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요소를 본질로 하기 때문에04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로 보는 성향이 있다.05 현실적으로 순수혈통의 존재도 드물고 정치, 경제활동 등을 함께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민족개념은 의식적 차원에서 그 존재가 믿어지는 측면이 강하다.   
  민족은 영토를 갖는 국가를 기반으로 하나의 동질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중세처럼 신분제에 예속된 상태에서는 이러한 의식이 생겨나기 어렵다.06 그래서 학자들은 서구의 민족개념이 비교적 근대에 형성되었다고 본다.07 즉, 민족은 물리적 기반인 영토가 확보되고 의식적 기반인 평등과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되고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독립이 이뤄진 근대 국가의 단계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민족개념에서 비롯된 이데올로기를 민족주의(民族主義)라 하며, 이는 근대사회를 변모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민족주의 자체는 사회변혁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어서 다른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사회변화를 추진하였다. 이때 민족주의의 역할은 긍정과 부정의 양 측면으로 작용했다. 긍정적 측면은 각 나라에 민족의식을 고취해 민족의 주체성을 살리고 단결을 강화하여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하여 국력을 모을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08 부정적 측면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등의 사회진화론과 맞물려 자민족 우월주의, 배타적 선민의식처럼 열등한 다른 민족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 그들의 역사적 운명이요 사명이라는 왜곡된 민족의식을 낳았다는 점이다.09 그리하여 국수주의, 파시즘, 나치즘 등으로 무장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다른 약소민족의 국가를 침략하고 식민지배하여 그 나라와 민족에게 큰 상처를 줌으로써 국가 간, 민족 간의 대립을 불러왔다.
 
 
한민족의 민족의식
  한국에서 민족에 대한 개념은 고조선의 단군 개국 이래 신라가 고구려, 백제의 유민들과 합심하여 당나라의 군대를 물리치고 삼국을 통일하여 통일신라를 세운 역사적 시점에서부터 싹이 트여 면면히 이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고려의 몽고 항쟁 시기 이후 단군신화의 부각으로 한민족의 자긍심이 고무되고 홍익인간의 사상적 기원을 이루어 정신 문화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조선 시대 단군을 본격적으로 국조(國祖)로 추앙한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는 의병들의 자발적 호국의식에서 민족의식이 크게 활성화되기도 하였다.10
  근대적 민족의식은 중화주의(中華主義)를 벗어나 학문과 제도적으로 한민족의 주체적 사유를 갖기 시작한 실학사상에서 맹아(萌芽)를 보이고 천주교와 구한말의 위정척사(爲正斥邪), 보국안민(輔國安民)을 내세운 동학 이후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국가구성원으로서의 민족에 대한 존중의식이 사회적으로 발아(發芽)되어 중세의 봉건적 신분 질서인 양반과 상민, 적자와 서자, 남녀의 구별 등 사회적 신분의 계급적 차별이 철폐됨으로써 한민족의 온전한 동질의식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11 이후에도 개화사상과 독립협회운동, 3·1운동 등을 거치며 계속해서 근대적 의미의 민족의식이 성장하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국가의 지도이념인 유교와 기존의 정신적 가치로는 국력이 쇠락한 한민족의 고통을 해소하는 데 한계에 직면해 있었다. 이 시기에 구시대의 봉건적 질서체제로는 국내적으로 피지배층과의 갈등과 국외적으로 식민제국주의 세력의 국가적 침탈로부터 민족의 안위와 자긍심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족의식이 대두된 것이다. 이처럼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한계에 직면한 한민족에게 자생적으로 발생한 신종교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즉 정치가 담당하지 못한 보국안민을 종교가 담당함으로써 민족종교가 대두된 것이다.
  민족종교란 개념은 주로 ‘동학 이후 한국에서 자생(自生)한 신종교’로서 한민족의 고유한 민족의식이 담긴 종교로 정의되고 있다.12 동학과 상제님을 따르는 종파들, 정역(正易)사상의 김일부의 교단, 단군 민족주의 영향의 대종교, 원불교 등이 당시 출현한 민족종교이다. 그들은 대체로 앞으로 도래할 후천개벽의 세계관을 제시하여 고달픈 민중에게 희망을 주었고 민족주체성을 계도하여 당면한 국내외적인 문제에 대응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종교적 활동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활동 즉, 독립운동과 사회개혁 운동까지 추진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당시 우리나라의 민족종교들이 일제의 탄압으로 정치 활동을 접고 종교 활동에 집중하게 되었지만, 애국 계몽운동과 저항적 독립의식은 일정 부분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민족종교 대순진리회
  구천상제님을 신앙하는 대순진리회는 운명공동체로서 한민족의 고뇌를 해소하고자 하는 의식 속에 민족종교로서 출발하였다. 상제님께서는 판밖에서 성도(成道)하고자 하셨고 시기적으로도 교단이 형성된 단계가 아니었기에 직접적으로 민족종교운동을 펼치진 않으셨다. 그러나 상제님께서는 천지공사를 통해 인간의 평등과 자유를 보장하는 인존시대를 여는 과정으로서 민족의 주체성을 살리고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이루고자 하셨다(공사 2장 19절). 이를 위해 천인(賤人)을 우대하시고(교법 1장 9절), 반상과 적서(교법 1장 10절), 남녀(공사 1장 32절) 등의 각종 차별을 철폐하시고, 서양세력을 물리치시는(공사 1장 12절) 등 민족의 안녕과 개인의 평등과 자유를 실현케 하는 공사를 단행하셨다.
  대순진리회는 민족종교의 사회적 역할의 하나로서 생활안정과 교육의 혜택이 결핍된 우리 민족을 위해 경제적 지원 사업과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위하여 도주님께서는 을축년(1925) 무극도를 창도하시고 청장년 도인들로 진업단을 조직하여 수리(水利)사업, 황무지 개간과 간석지 간척 등의 사업을 추진하여 침체한 산업을 일으키셨고 도인들의 생활안정과 빈민구제에 공헌하셨다.13 안면도와 원산도에서도 간사지(干潟地)를 개척하며 제민(濟民)사업을 추진하셨다(교운 2장 35절). 이후 태극도 시기(1956년)에는 피난 중 취학하지 못한 도인 자녀들을 교육하시고자 천덕공민학교(天德公民學校)14를 열기도 하셨다.
  도전님께서는 대순진리회의 창설 초기인 1972년부터 민족종교의 대사회적 봉사 활동으로 3대 중요사업인 구호자선사업, 사회복지사업, 교육사업을 연차적으로 추진하셨다. 이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보국안민의 구세제민 사업을 규모 있게 전개하신 것이었다. 도전님께서 화천하신 이후에도 대순진리회는 도전님의 유훈에 따라 애국애민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대순진리회복지재단 설립 후에는 노인복지를 위한 노력을 더욱 경주하고 있다.
 
 

  우리 민족이 신명 대접을 가장 잘하여 신명들의 보은을 받고(교법 3장 22절) 인(仁) 자를 붙여주어 상등국이 될 수 있도록 해주셨다는(공사 2장 4절) 자긍심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상제님께서 조선에 강세하신 이유는 우리 민족이 우월한 선민이어서가 아니라 참화 중에 빠진 무명의 약소민족을 먼저 구하고 나아가 인류를 구제하기 위해서이다.15 그러므로 대순진리회에서는 민족주의가 범할 수 있는 배타적인 자민족 중심주의나 우월적 선민의식, 제국주의적 팽창주의 등이 갖는 부정적 요소는 배제되어 있다.16
  민족종교가 자생종교로서 외래종교와 구별될 수는 있지만 보편성과 특수성의 관점에서 인류 보편적 세계종교와 특수한 국가적 민족종교가 본질적으로 대립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세계구제를 위한 보편진리가 탄생할 때는 특정 지역에서 자생한 민족종교의 모습을 띠지만 본래의 인류구제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세계종교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기성의 세계종교를 이룬 종교 중 불교의 경우 석가모니가 인도민족의 카스트에 고통받던 민중 구제와 함께 열반의 진리를 설파하는 과정을 거쳐 세계종교로 나아갔다.17 기독교 또한 유대민족이 로마의 식민생활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독립을 바라며 예수의 진리를 설파한 가르침이 세계 종교화된 것이다. 이처럼 모든 세계종교는 민족종교에서 출발한 것인데, 이는 보편진리가 특수한 지역에서 구현되다가 세계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대순진리회는 상제님께서 신명과 전 인류를 구제하시려는 보편적 인류애의 진리가 한민족이라는 특수한 지역에서부터 민족종교로 발현하여 세계로 나가는 노정에 있다. 그리하여 도전님께서는 상제님께서 한국 땅에 오셨다고 대순진리회가 한민족만의 종교가 아니라 전 세계, 전 우주의 보편진리로 펼쳐놓으신 천지대도이므로 세계포덕을 위해 힘써나가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이다.18 
  따라서 민족종교인 대순진리회는 전통적인 인본주의가 종교 신앙적 차원에서는 인존사상으로 발전되었고 대사회적 차원에서는 민족과 국가의 보존 및 발전을 위한 보국안민으로 제시된 것이다. 이제 대순진리회는 종교사적인 관점에서 한민족의 주체성을 지닌 자생 신종교로 출발하여 본래의 목적인 인류구제를 위해 포덕천하하는 세계종교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01 유발하라리,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김명주 옮김 (경기파주: 김영사, 2017), p.25.
02 ‘민족종교’라는 용어는 광복을 전후하여 증산교의 이정립(李正立)이 공식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윤이흠 외, 『한국민족종교의 원류와 미래』 (서울: 한국민족종교협의회, 2011), p.22.
03 “우리는 이제 민족종교로서의 면모를 모두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사회적으로 파란곡절을 겪은 끝에 많은 역경을 딛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90년대를 맞아 더욱더 화합단결하여 해원상생(解冤相生)의 대순진리(大巡眞理)를 전 인류세계(人類世界)에 펼쳐 나가도록 노력합시다.” [「도전님 훈시」 (1990. 2. 10)]
04 김우태, 「한국 민족주의 연구」 (부산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84), p.25.
05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윤형숙 옮김 (서울: 나남, 2002), p.25.
06 박종일, 「종교와 근대민족주의의 형성: 새로운 연구동향과 한국적 맥락에 대한 검토」, 『동양사회사상』 17 (2008), pp.9-10.
07 루소는 근대적 민족주의의 창시자로서 민족=국가=인민이라는 개념을 성립시키며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을 유도했다; 이경원, 「한국민족종교의 특성과 대순사상」, 한국신종교학회 『신종교연구』 18 (2008, 4), p.216 참조.
08 예를 들면 민족의 독립, 외세의 침입에 대한 대항, 경제적 자립, 사회적 개혁 등이다.
09 우월한 백인민족이 미개하고 야만적인 열등한 흑인민족을 지배해야 하는 책임을 갖는다는 ‘백인의 부담’, 유럽의 제국주의로 아프리카 민족에 대한 식민지배 등이 그 실례이다.
10 김현우ㆍ이경원, 「민족종교에 나타난 한국 정신문화의 원류」, 『한국철학논집』 52 (2017), pp.245-251.
11 유근호, 『한말 개화 자강운동과 민족주의, 한국근대사와 민족주의』 (서울: 집문당, 1997), pp.12-13.
12 이경원, 「한국민족종교의 특성과 대순사상」, 『신종교연구』 18 (2008, 4), p.218.
13 1930년 봄에는 북만주 목단(牧丹)강(江) 근처에서, 함경도 무산에서 산림벌채, 금광채굴 등의 빈민구제와 1955년 태극도 당시의 양곡위탁판매사업인 협동상회와 감만동 소재 대규모 도정업체인 대원산업주식회사를 인수경영하게 하여 도인의 자립과 난민구호(難民救護)에 진력하셨다. (윤이흠 외, 앞의 글, pp.368-370 참조)
14 학생수가 주야간을 합쳐 1200여 명에 이르렀다; 공민학교는 초등교육을 받지 못한 학령(學齡) 초과자에게 단기간(1년~3년)에 걸쳐 국민생활에 필요한 기초교육을 제공한 교육기관이다. 소년과ㆍ성년과ㆍ보수과를 두었으며 교육내용은 문맹퇴치를 위한 국어를 위주로 국사 지리 사회생활 산수, 과학, 음악, 체조, 가사, 재봉 등으로 과마다 차이는 있었다. 1946년 5월 “공민학교 설치요강‘이 제정된 이후 활발하여 1947년 8월 학교수 1만 5,506개 학교, 학생수 84만 9,008명, 교사 2만 507명까지 되었으나 1950년대 의무교육 강화이후 해마다 학교와 학생수가 줄어 1997년 학교수 1개, 학생수 195명으로 감퇴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15 김태수, 「대순사상의 민족주의적 요소에 대한 재해석」 (대진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2), pp.73-78.
16 세계 2차 대전을 일으킨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은 근대 민족주의에서 자민족 중심의 우월의식에 도취되어 팽창적 제국주의에 빠져 타 민족과 국가에 큰 피해를 준 역사상 대표적 사례였다.
17 ‘샤카족(釋迦族)의 성자(聖子)’를 뜻하는 석가모니가 카필라 성의 왕자로서 그 소국(小國)을 일으키려던 아버지 왕의 뜻을 저버리고 인도의 카스트제도의 개혁을 통해 고통받는 민족을 구제하려던 정치적 사상가의 성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성택, 『불교와 불교학: 불교의 역사적 이해』 (파주:돌베개, 2012), pp.54-55 참조]
18 “상제님께서 한국에 오셨다 해서 한민족(韓民族)에게만 국한되게 하신 것이 아니고 전 세계에 맞게 펴셨다.”[「도전님 훈시」(1990. 01. 30)]. “포덕천하(布德天下)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도(道)는 우리나라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고 전 세계(全世界), 나아가서는 전 우주(全字宙)를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한국(韓國) 땅에 강세(降世)하시어 도(道)를 펼치셨다고 해서 한국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어느 나라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포덕(布德)해야 한다는 정신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인류가 우리의 진리에 감화(感化)되어 우리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를 믿어야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도전님 훈시」  (1990. 0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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