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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7년(2017)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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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체질에 대한 소고(小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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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질에 대한 소고(小考)
 
 
부전 방면 평도인 신종석
 
 
 
이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짜 놓았으니 제 한도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또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의 뱃속에 출입케 하여 그 체질과 성격을 고쳐 쓰리니 이는 비록 말뚝이라도 기운을 붙이면 쓰임이 되는 연고니라 …. (교법 3장 4절)
 
 
우리는 ‘체질’이란 말을 어떻게 이해할까?
  보통 ‘어릴 때는 바짝 마르고 잔병치레를 자주 하는 약골 체질이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식생활이 개선되고 운동을 하여 아주 건강한 체질로 바뀌었다’는 식으로 체질이란 말을 사용한다. 즉 체질은 쉽게 바뀔 수 없는 몸의 상태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체질’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체질의 사전적 의미는 ‘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몸의 생리적 성질이나 건강상의 특질’이다. 실제 체질은 사람이 본래 가지고 태어난(生來的), 생리적·신체적 특성과 정신적 특성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특성을 합친 포괄적인 개념이다. 체질은 병에 대한 저항력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체질은 아무리 약을 많이 쓴다고 해도 바꿀 수 없다. 체질은 평생 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손에게까지 유전된다. 타고난 체질의 변화는 불가능하지만 후천적인 노력으로 체질을 개선할 수는 있다.
  서양에서 체질이라는 뜻으로 칸스티튜션(constitution)이 사용된 것은 15세기부터이며, 16세기에 처음으로 몸의 특성이나 건강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칸스티튜션(constitution)은 원래 ‘조립’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며, 나라의 헌법을 뜻하는 말이기도 한데, 체질을 의미할 때는 변화보다도 소질적인 의미가 많다.01
 
 
‘체질’에 대한 연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인류 역사상 인간의 체질을 분류하고자 하는 노력은 오래되었다. 중국 최고(最古)의 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02에는 음양론에 의거한 음양오태인론(陰陽五態人論)과 오행설에 의거한 오행이십오태인론(五行二十五態人論)이 소개되어 있고,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도 사체액(四體液)설을 주장했다.03 독일의 정신의학자 크레치머는 정신병과 체형의 관계를 기초로 한 세 가지 체질설을 주장하기도 했다.04
  우리나라에서는 조선말의 유학자이며 사상의학의 창시자인 동무(東武) 이제마05가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에서 자신이 관찰한 인간 유형을 태양인, 소양인, 태음인, 소음인으로 나누고 이를 통칭하여 사상인(四象人)이라고 불렀으나 체질이란 말을 쓴 적이 없다. 사상인의 분류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질병치료에 대한 사상인의 체질과 성질의 차이를 논한 것이다. 그는 각 사람이 가진 장기 기능의 대소(大小) 차이와 특징을 파악하고, 그것을 기초로 외모, 심성 및 병증 등의 차이를 분석하고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토대로 종합·정리하여 사상인을 분류하였다. 이에 기반하여 질병 치료에 있어 병증보다는 체질에 중점을 두어 사상인이 같은 병에 걸리더라도 치료방법을 같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제마의 사상인을 체질이란 개념으로 이해하고, 현대과학인 혈액학 이론을 체질론으로 파악한 사람은 다산학의 최고 권위자였던 현암(玄菴) 이을호06이다. 그는 사상인을 체질, 사상의학을 체질의학이라고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체질의 개념이 정립되었다.
 
 
‘체질’이란 말은 언제부터 일반인들이 사용하게 되었나?
  체질이란 단어는 요즘의 사상의학이나 8체질의학이라는 말과 함께 입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생긴 최근의 낱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한의학에서 ‘체질’이란 말은 청나라 섭천사(葉天士, 1666~1745)의 『임증지남의안(臨證指南醫案)』에서 최초의 용례를 확인할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체질’이란 용어보다는 ‘소(素)’, ‘질(質)’, ’품질(稟質)’, ‘기질(氣質)’, ‘품부(稟賦)’ 등의 단어가 체질에 대한 초보적인 인식을 서술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현재 널리 쓰이는 ‘체질’이란 단어의 출전도 전통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본의 난학(蘭學)을 통해 서양에서 건너온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즉 서양의 병리학에서 나온 말이다.07 당시의 발달한 병리학은 같은 원인이라도 각 개인의 장부조직과 남녀의 성별과 나이, 영양 등에 의하여 병상(病狀)이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를 일본인이 ‘체질’이란 어휘로 번역한 것이다. 따라서 체질이란 용어는 초기에 매우 서양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로 인식되었다. 체질이란 말은 조선 땅에서 매우 빠르게 흡수되었는데 개체의 특성을 중시하는 한의학 문명권에서 오랫동안 훈습된 결과였을 것이다.
 
 
  체질이란 말이 20세기 초에 대유행을 한 적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체질에 대한 높은 관심이 형성된 배경에는 혈액형의 발견이라는 또 다른 학문적 성과가 있었다. 칼 란트스타이너08에 의해 1901년 발견된 ABO식 혈액형은 체질 담론을 더욱 확고하게 뿌리내리게 했다. 4개로 구성된 혈액형의 발견은 체질론의 결정적인 과학적 근거로 인식되었다.
 
 
  현재 인터넷에서 자주 검색되는 ‘혈액형에 따른 성격’은 1927년 후루카와 다케이치(古川竹二, 1891~1910)가 동료, 친척, 학생 등 319명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일본 심리학회지에 발표한 「혈액형에 의한 기질연구」라는 논문이 효시가 된다. 그는 ‘혈액형 성격학’이라는 독특한 영역을 만든 셈인데 선정적 언론을 타고 특히 일본과 한국에서 크게 유행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논문은 작은 집단을 통계군으로 삼은 일종의 심리학 논문일 뿐이며 과학적 근거는 밝혀진 바가 없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보면 ‘체질’은 인위적인 노력에 의한 개선·조절은 가능하나 불변(不變)의 의미를 갖는 몸의 항상성(恒常性)을 표현한 말이다. 그러나 위의 『전경』 내용은 불변이라고 여기는 ‘하늘과 땅’을 뜯어고치시는 상제님에 의해서 사람의 체질과 성격도 고쳐질 수 있음을 담고 있다.
  동·서양의 구분, 남녀 성별의 구별, 노소의 연령적 차이를 불문하고 신명으로 하여금 고쳐쓸 수 있음을 밝혀 주셨으니, 일심(一心)으로 상제님을 믿으면 체질과 성격에 관계없이 올바른 수도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
 
 
 

01 『두산백과사전』
02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와 함께 삼황(三皇) 중 한 분이고 백성들에게 불, 역법(曆法) 등을 창제해서 알려준 신인(神人)으로 기록된 ‘황제(黃帝)’를 빌어 책의 이름으로 삼았지만 오늘날의 학자들은 4,500년 전의 사람인 황제가 저술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문자의 쓰임새나 표현법이 전국시대(戰國時代)의 것이므로 당시의 누군가가 의학서를 지으면서 지극히 존귀한 존재이며 전설상의 의학의 신인 황제의 이름을 빌어 책의 권위를 높이려 했다고 보고 있다.
03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기원전 460?~377?)는 『히포크라테스 전집』에서 “인간의 육체란 피, 점액(phlegm), 황담즙(yellow bile) 그리고 흑담즙(black bile)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체액들이 육체의 각 부분을 형성하고 질병과 건강의 원인이 된다.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때 관계된 구성성분들이 강도와 양 두 측면에서 정확한 비례를 이루면서 잘 섞여 있다. 그 구성성분 중 하나가 너무 부족하거나 혹은 과다할 때 또는 육체에서 빠져나가거나 혹은 다른 것과 섞여 있지 않을 때 고통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04 크레치머(Ernst Kretschmer, 1888~1964): 독일의 정신의학자 · 심리학자. 그는 인간의 체액을 형태적 특징과 정신적 특징과의 관련에서 세장형(細長型: 萎弱型), 역사형(力士型: 筋肉型) 및 비만형의 세 가지로 분류했다.
05 이제마(李濟馬, 1837~1900): 태조 이성계의 고조(高祖)인 목조(穆祖)의 2남 안원대군(安原大君)의 19대손이다. 함경남도 함흥군에서 진사(進士) 이반오(李攀五)와 경주김씨 사이에서 장남이자 서자(庶子)로 태어났다. 호는 동무(東武)이고, 자는 무평(懋平) 또는 자명(子明)이다.
06 이을호(李乙浩, 1910∼1998): 전라남도 영광 출신. 다산 경학 연구의 개척자로서 한국사상사 분야에서 업적을 이루었으며, 한의학과 관련하여 이제마의 사상의학(四象醫學)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여 사상의학을 유학사상사 속에 자리 잡게 하는 데 기여하였다.
07 일본 에도시대에는 유일하게 선교활동을 하지 않았던 네덜란드(화란,和蘭)만 제한적인 교역이 허용되었고 서양의 의학과 과학지식이 네덜란드를 통해 전래되었다는 의미에서 난학(蘭學)이라 한다. 일본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한 상인층을 중심으로 네덜란드와의 교역을 통해 보급된 서양의 기술서적을 연구하는 학문 활동이 활발히 일어났고, 이들을 난학자라고 하였다. 난학자들은 서양 해부학이나 의학서에 나오는 단어들을 번역하면서 동양의 의학서에 나오는 낱말과 매칭(줄긋기)시켰다. 예컨대 ‘Heart’를 ‘심장(心臟)’, ‘Liver’를 ‘간장(肝臟)으로.
08 칼 란트스타이너(Karl Landsteiner, 1868~1943): 오스트리아의 병리학, 혈청학, 면역학자. 혈액형을 발견한 공로로 193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1940년에 Rh인자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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