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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6년(2016)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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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다시 읽기 : 후천(後天) 五만년의 도수를 나는 펴고 너는 득도하니

후천(後天) 五만년의 도수를 나는 펴고 너는 득도하니
 
 
대순종교문화연구소
 
도주께서 무오년 가을에 재실에서 공부하실 때 상제께 치성을 올리신 다음에 이정률 외 두 사람을 앞세우고 원평을 거쳐 구릿골 약방에 이르셨도다. 이 길은 상제께서 九년 동안 이룩하신 공사를 밟으신 것이고 “김제 원평에 가라.”는 명에 좇은 것이라 하시도다. (교운 2장 10절)
 
이해 十월에 도주께서 권태로(權泰魯) 외 몇 사람을 이끄시고 모악산의 대원사에 이르시니라. 이때에 도주께서 “개벽 후 후천(後天) 五만년의 도수를 나는 펴고 너는 득도하니 그 아니 좋을시구.”라 하시고 이정률에게 원평 황새마을에 집을 구하여 가족들을 그곳에 이사 거주하게 하고 자신은 대원사에 몇 달 동안 머무셨도다. (교운 2장 11절)
 
이정률이 집을 구하려고 황새마을에 이르러 마을 사람 권씨를 만나니 그가 “간밤에 꿈을 꿔 사람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하면서 자기 집에 이사 거주하기를 간청하는지라. 정률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안면도에 건너가 가족을 모셔오니 권씨는 모든 것에 불편 없게 지성껏 보살폈도다. (교운 2장 12절)
 
 
▲ 대원사 / 2013년 3월 촬영
 
 
  위의 『전경』 교운 2장 10·11·12절은 도주님께서 안면도에 도착하신 지 약 1년 후인 무오년(1918) 가을부터, 상제님의 누이 동생인 선돌부인을 만나 봉서를 받게 되시는 1919년 정월 보름 전까지 몇 개월 동안 있었던 일을 기록한 것이다. 계시와 명을 좇아 상제님을 찾는 도주님께서 동곡 약방과 대원사에 이른 기록으로만 본다면 보기에 따라서는 다른 구절보다 그리 주목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이 세 구절에도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기에, 이번 호에서는 그 숨겨진 의미를 조금이나마 분석해 보고자 한다. 
 
 
 『전경』에 도주님의 50년 공부 중에 상제님으로부터 받은 계시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곳은 사실 몇 군데에 불과하다. 계시의 특성 상 도주님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는 한, 관련 기록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정사년(1917) 기도주를 받으실 때 “이것을 외우면 구세제민하리라.”는 말씀과 귀국의 계기가 되는 ‘태인으로 가서 나를 찾으라’는 계시 등이 구체적으로 전해지는 대표적인 것이다. 이와 더불어 교운 2장 10절에도 또 하나의 구체적인 계시가 기록되어 있는데 바로 “김제 원평에 가라”는 명이다.
  이미 전 회(《대순회보》 183호)에서 다룬 바 있지만, 도주님께서 뱃길로 귀국하신 후 태안의 안면도에 정착하신 것은 ‘태안(泰安)’을 ‘태인(泰仁)’으로 잘못 아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년 정도 안면도 우일재에서 공부를 하시면서 도주님께서는 그곳이 상제님께서 알려주신 곳이 아님을 알게 되신다.  도전님께서는 이 당시를 ‘식구들을 창기리(倉基里)에 두시고 공부도 하시고 난민구제사업과 간척사업도 하셨는데, 하시다 보니 이곳이 아니므로 전라도로 내려가셨다’고 말씀해주셨다.01 이 훈시와 교운 2장 10절의 ‘도주님께서 무오년(1918) 가을 상제님께 치성을 올리신 다음 김제 원평을 거쳐 동곡 약방에 이르셨다’는 기록을 종합해서 본다면, 아마도 이즈음 태안 안면도가 태인이 아님을 깨달으시고 ‘김제 원평에 가라’는 명을 계시 받아 전라도로 향하셨거나, 태인을 찾아 전라도로 가시는 중에 계시를 받으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제 원평에 가라’는 상제님의 명은 도주님을 자연스럽게 동곡 약방에까지 이르도록 했다고 해야 한다. 1918년 당시 김제 원평은 상제님을 추종하던 많은 이들이 서로 교류하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원평이 금산사와 동곡 약방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상제님께서는 화천하시기 얼마 전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너라.”02고 하셨으며, 무신년(1908) 동곡 약방을 여신 후 기유년(1909) 화천하실 때까지 이곳을 터전으로 천지공사를 종결하셨고, 화천 후에도 그 뒷산 기슭에 초빈(草殯)으로 모셔졌기에, 상제님을 추종했던 종도들이나 상제님의 진법을 얻고자 했던 이들이 금산사와 동곡 약방으로 가는 길목인 원평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기에 도주님께서 계시를 따라 전라도로 내려와 김제 원평에 당도하셨다면 동곡 약방에까지 이르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김제 원평의 모습
 

  드디어 도주님께서는 ‘나를 찾으라’는 계시를 좇으신 지 1년 6개월만에야 상제님의 자취를 찾으시게 된 것이다. 이 행로를 도주님은 ‘상제께서 九년 동안 이룩하신 공사를 밟으신 것’이라 하셨다. 상제님의 9년간의 천지공사는 여러 장소를 거치면서 이루어졌지만 그것이 완성되는 종결점이 바로 동곡 약방이기에, 우리는 도주님의 말씀이 뜻하는 바를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더하여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도주님의 동곡 약방으로의 행로가 종통계승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종통의 계승은 바로 천지공사의 계승이기에 진주(眞主)이신 도주님께서는 상제님을 찾고 그 공사를 이어 받으셔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 시작은 천지공사의 완성지이며 종결지인 동곡 약방이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한다면, 상제님 천지공사 종결은 종통계승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종통계승자인 진주가 처음 상제님의 자취를 현실에서 접하는 장소는 천지공사가 종결된 곳인 동곡 약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주님께서 가장 먼저 상제님의 자취를 확인하는 곳이 동곡 약방임은 여합부절한 도수이다.
 
▲ 김제 원평의 주변 지도(구글어쓰 캡쳐 화면)
 

  상제님께서 종통계승을 의미하는 공사인 대두목 공사를 동곡 약방에서 행하시고, 종통계승자를 상징하는 봉(鳳) 자 친필, 즉 조(鳥) 을(乙)의 상징을 그 남쪽 기둥에 새겨 넣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03 실제로 1918년 도주님께서 동곡 약방에 이르셨을 때 보실 수 있었던 상제님 공사의 유물은 남쪽 기둥에 새겨져 있던 봉(鳳) 자 친필뿐이었을 것이다. 1910년 9월 차경석과 고수부에 의해 동곡 약방에 있던 모든 상제님의 유품(遺品), 부벽서(付壁書)뿐만 아니라 벽지까지도 떼어져 대흥리에 옮겨졌기 때문이다. 오직 기둥에 새겨져 있어 떼어서 가져갈 수 없었던 봉(鳳) 자 친필만이 동곡 약방을 지키고 있었겠지만 도주님은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계셨기에 ‘상제께서 九년 동안 이룩하신 공사를 밟으신 것’이라 하신 것이다. 『전경』의 제일 첫 장이 동곡 약방의 봉(鳳) 자 친필인 것도 『전경』이 도주님에 의해 밝혀진 상제님의 대순진리를 수록하고 있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동곡 약방 행차로 상제님의 9년 공사를 이어 받으신 도주님께서는 본격적으로 도수를 펴기 시작하시는데 교운 2장 11절은 이를 잘 보여준다. 동곡 약방 행로에 이어 무오년(1918) 10월에 도주님께서는 대원사에 이르시고 권태로를 비롯한 몇 종도들에게 “개벽 후 후천(後天) 五만년의 도수를 나는 펴고 너는 득도하니 그 아니 좋을시구.”라 하신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당신께서 후천 5만년의 도수를 펴심을 선포하심으로써 진법의 진주임을 분명히 알리시고, 이 진법을 따르는 종도들이 득도하여 크게 해원할 것임을 선언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도주님께서는 이러한 선포를 왜 대원사에서 하셨을까? 상제님을 따랐던 종도들이 대원사를 단순히 상제님께서 득도하신 신성한 곳으로만 인식하고 있었음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들이 세운 여러 교단의 경전들 대부분이 상제님의 대원사 공부를 득도를 위한 수도로 여기고 있다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에 반하여 도주님께서는 대원사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밝혀 주셨다. 다음은 신유년(1921)에 대원사에서 행하신 백일 도수 때의 일이다. 
 

종도들에게 칠성경을 외우게 하시고 도주께서 대원사에 들어가셔서 백일 도수를 마치셨도다. 마치신 날이 바로 신유년 七월 칠석날이라, 그때에야 종도들이 칠성경을 외운 뜻을 깨달으니라. 그들을 보시고 도주께서 “이곳이 바로 상제께서 천지신명을 심판한 곳이니라. 아직 응기하여 있는 것을 내가 풀었노라.”고 말씀하셨도다.04
 
 
  위의 『전경』 구절을 통해 본다면, 도주님은 대원사를 단순히 상제님이 득도하신 신성한 장소가 아니라 천지신명을 심판한 곳이라고 밝혀 주고 계신 것이다. 이는 상제님을 수도를 통하여 득도한 비상한 분이라 생각했던 당시의 여러 친자종도들과는 달리, 도주님께서 상제님이 구천대원조화주신, 즉 하느님[상제]이심을 이미 알고 계셨고, 따라서 대원사 공부가 단순히 득도를 위한 수도가 아니라 상제로써 천지신명을 심판했던 공사였음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이상의 도주님 말씀으로 본다면, 도주님께서 처음 대원사에 이르셨던 1918년 10월 그곳에는 천지신명이 응기하여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후천 오만 년 도수를 펴셔야 하는 도주님께서 천지신명과 인간, 더 나아가 천지인 삼계에 이를 선포하시기 위해 천지신명이 모여 있는 대원사에 이르셔야 했음은 이치로 본다면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 황새마을(관촌)의 모습 現 전북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 관봉마을

  도주님께서는 ‘태인에 가서 나를 찾으라’는 상제님의 계시를 좇아 태안으로 오셨다가, ‘김제 원평에 가라’는 명을 좇아 원평에 이르러 천지공사의 완성지이며 종결점인 동곡 약방에 당도하셨고, 마침내 후천 오만 년의 도수를 본격적으로 펼치시기 위해 천지공사의 시작점인 대원사에 이르시게 되었다. 이것은 안면도에서 태동한 종단이 더 이상 안면도에 그 중심을 둘 수 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이제 ‘태인에 가서 나를 찾으라’는 상제님의 계시를 도주님께서 실행하셔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기에, 종단의 인적·물적 토대는 그 다음의 도수를 위해 옮겨져야 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생명이 싹트기 전에 잠시 휴지기(休止期)를 가지는 것처럼, 다음의 도수를 위한 휴식과 준비를 위해 안배된 종단의 태동지 안면도에서 이제 천하통정신(天下通情神)이 운회(運回)하는 정읍으로05 종단의 중심은 옮겨져야 했다. 상제님과 도주님의 통정(通情), 즉 해원과 보은의 양대 진리가 태동의 단계를 넘어 탄생하기 위해서 밟아야 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도주님은 종단의 중심을 옮기기 위해 종도인 이정률을 시켜 거처를 원평 옆의 황새마을로 옮기도록 하셨다. 이 마을은 황새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황새물로 불린 관촌(雚村)으로06 현재는 관봉마을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신비한 일이 바로 교운 2장 12절인데, 황새마을의 권(權)씨가 꿈을 통해 누군가를 기다렸다가 이정률을 만나고 도주님의 가족을 지성으로 보살피는 이 일화는 도주님의 명에 따라 신명이 움직여 모든 일이 조화로써 풀려나감을 잘 보여준다.07 황새는 우리나라의 새 중 가장 커서 황[皇:임금]새로 불렸다고 알려져 있기에, 새 중의 황[皇: 임금]인 봉황(鳳皇)과 통하여 도주님을 상징한다고 할 것이다.08 따라서 마을의 풍수 형국인 황새[皇鳥]가 포란(抱卵)함은 도주님께서 황새마을에 거처를 두시고 이때부터 조을(鳥乙), 곧 봉황(鳳皇)의 도인 무극도(無極道)의 창도를 본격적으로 준비하시는 것과 절묘하게 일치하니 더욱 신비롭다고 할 것이다.
 
 

01 “상제님께서는 태인을 찾으라고 하셨는데 도주님께서는 태인을 태안으로 오인하시고 태안 안면도에 내내 계셨다. 식구들을 창기리(倉基里)에 두시고 공부도 하시고 난민구제사업과 간척사업도 하셨다. 하시다 보니 이곳이 아니므로 전라도로 내려가셨고, 결국 김제 원평 마동(馬洞) 김기부의 집에 있는 선돌부인을 만나시고 봉서를 받으셨다.” (기사년 4월 4일, 1989.5.8 도전님 훈시)
02 행록 5장 29절.
03 “상제님께서 봉(鳳) 자를 친필하신 뜻도 조을(鳥乙)을 밝혀놓으심이라.”(1982.음4.24, 윤4.26 도전님 훈시) 조(鳥)는 조(趙)와 음이 같으니 조을(鳥乙)이란 조을(趙乙)이 되며, 결국 을(乙)미생 조(趙)씨인 도주님을 의미한다. 봉(鳳)이라는 문자는 뜻에 해당하는 글자인 조(鳥)와 소리에 해당하는 글자인 범(凡)이 합해진 것으로 봉(鳳)의 파자인 조(鳥)·범(凡)은 조(鳥)·을(乙)과 상통한다. 범(凡)은 그 부수인 几와 통용되는데, 几는 궤(几: 안석)와 수(几: 깃 짧은 새가 나는 모양)이다. 이 글자는 丿[삐침별]과 乙[새을]의 고문자인를 합친 글자이니 그 형태상 을(乙)과 상통한다. 범(凡)은 『설문(說文)』에 따르면 급(及)부에 속하고 급(及)의 고문은 弓로 乙과 상통하는 모양이다. 또한 범(凡)의 고문자, 궤(几)의 고문자, 수(几)의 고문자 모두 乙의 옛 형태인 , 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04 교운 2장 21절.
05 “天下通情神井邑運回.” 공사 3장 39절.
06 한글학회, 『한국지명총람』 12 (1988), p.383 참조.
07 단순히 권(權)씨의 꿈만으로 그 신비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권(權)은 목[木: 을미생]과 관[雚: 황새]이 만나 이루어지는 글자이기에, 을미생으로 목성(木性)인 도주님께서 황새[관(雚)]마을로 들어감을 의미하고, 또한 나무[木]에 황새[雚, 皇]가 올랐음을 의미하기에 황(皇)이 자리에 올라 권화(權化)를 폄을 상징하니, 결국 도주님께서 후천 오만년의 도수를 펴기 시작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여합부절한 사건들이 신비함을 더해 주는 것이다.
08 황(皇)의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학(鶴)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에서도 황새는 도주님의 상징으로 말할 수 있다. 도주님께서 을(乙)의 형상인 학의 목을 지니셨음이 『전경』 교운 2장 3절에 있다. “아기가 자라니 그 음성이 웅장하고 안광이 부시어 범의 눈초리와 같고 목은 학의 목과 같고 등은 거북의 등과 같고 이마가 해나 달과 같이 빛이 나서 관상을 남달리 하셨도다.” 교운 2장 3절. “소나무 위에 앉아 있는 황새를 송단(松檀)의 황새 또는 관학(鸛鶴)이라 하여 그림과 자수 등에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황새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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