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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6년(2016)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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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 2016 종교문화답사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2016  종교문화답사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연구원 조광희

 
  따뜻한 봄 햇살 아래 벚꽃이 만개한 2016년 4월. 대진청소년수련원 지하 대강당에서 봄의 생기를 듬뿍 담은 대진국제봉사단 문화봉사 “한마당” 풍물단의 힘찬 북소리가 들렸다. “두둥 두둥 두구두구 딱 딱” 화려한 조명 아래 신명 나는 장단이 강단을 울렸고 자리를 가득 메운 수도인들은 저절로 어깨춤을 들썩였다. 이어서 등장한 ‘LED조명물난타’에는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쏟아내며 환호성을 질렀다. 2016년 종교문화답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작년 방면 수도인 300여 명을 대상으로 처음 실행된 종교문화답사는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으며 성황을 이뤘다. 입소문이 났는지 단 2회 만에 대규모 행사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답사는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10회에 걸쳐서 진행된다. 수도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종단에서는 알찬 답사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지난해 도주님의 발자취를 찾았다면 올해는 ‘상제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라는 주제로 2박 3일간의 일정을 짰다. 첫날은 답사지에 관한 사전 강의와 친목을 다지는 관계 형성 프로그램인 ‘오! 감사합니다’ 와 진표율사에 관한 연극을 선보였다. 이튿날은 전라북도 일대를 찾아 상제님 생가와 시루산, 금산사, 상제님 초분지, 섬진강댐 일대, 무극도장 터를 다녀왔다.
 
 
 
 
 
오! 감사합니다.
  ‘오 감사합니다.’ 이번 답사의 부제다. 감사에는 서로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이 없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는 것처럼 너와 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가 한 몸이며 존재 이유가 된다. 그래서 서로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첫날 진행한 ‘오! 감사합니다.’ 프로그램은 이러한 마음을 담아 참가자들이 서먹함을 없애고 서로 소통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조 편성과 간략한 자기소개 후 관계형성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참가자들은 나이나 직위에 관계없이 손뼉치기, 팀 구호 빨리 외치기, 답사체조 등의 간단한 조별 게임에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동심으로 돌아간 듯 금세 친해졌다. 관계형성프로그램이 끝나고 답사지 사전강의가 두 시간 가량 이어졌다. 석식 후에는 진표율사에 관한 연극을 관람했다. 진표율사의 구도행과 미륵전을 조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쉽고 재미있게 연출해 연극 마지막까지 객석의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특히 청소년문화교류팀의 물오른 연기는 이날의 백미를 장식했다. 
  웃음을 뒤로하고 조금은 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오! 감사합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연운 체계 안에서 선각과 후각으로 만나 수도하는 도인들에게 소통은 가장 쉬울 수도 혹은 가장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이날 프로그램은 짜임새 있는 프레젠테이션과 동영상 자료를 활용하여 감사의 마음이 서로를 어떻게 이어주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프로그램 내용의 핵심은 서로에게 조건 없는 감사의 실천이었다. 후각은 선각이 없으면 도를 몰랐을 것이고 선각 역시 후각이 없으면 도를 펼칠 수 없음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가 고마운 존재임을 느끼고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한 참가자는 “선각과 후각 사이는 늘 같이 수도하면서도 서로의 고마움을 잘 모를 때가 많고 때로는 지나친 기대와 간섭에 서로 상처를 줄 때도 있다.”며 “이곳에 와서 나 자신을 반성하고 감사의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았다.”라고 말하며 ‘오! 감사합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앞으로 수도 생활에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음을 밝혔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조별로 스마트폰에 ‘밴드’를 만들고 내일 찾아가 볼 답사지와 감사를 주제로 토론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다음 날 아침 5시 30분. 이른 아침을 먹으려고 대진청소년수련원 식당으로 갔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4월이지만 바깥 공기는 아직 쌀쌀했다. 잘 차려진 밥과 국에선 모락모락 따뜻한 김이 올라왔다. 새벽부터 고생한 총무부 종사원들의 정성이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첫날의 서먹함은 사라지고 차 안은 유쾌한 담소가 오갔다.
 
 
▲ 신송마을 입구
 

  잠시 뒤 버스가 출발했다. 첫 일정으로 시루산과 상제님 생가가 있는 전북 정읍을 찾았다. 필자는 2009년 대학생 하계 성지순례 때 한차례 온 적이 있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데 신송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골목길이 낯설지 않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수도인 중 일부를 제외하고 상당수가 와 본 경험이 없거나 오래전에 방문했기 때문에 상기된 표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을 입구에서 지명 유래와 지형에 관한 설명을 간략히 들은 뒤 상제님 생가로 향했다. 현재 생가는 개인 주택으로 되어 있어서 오래 머물지 못한 채 마음속으로 간단한 읍배만 드렸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상제님께서 수없이 오르시며 공부하셨던 시루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산 입구에 다다르자 하우스에서 버섯을 재배하던 마을 어르신께서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고 비가 와서 질퍽하니 조심하라는 당부의 인사를 건넸다. 우리 일행도 “올해 버섯 농사 잘되길 바랍니다.”라는 덕담을 건네고 비탈길을 올랐다. 약간 숨이 차오를 때 쯤 산 중턱에 있는 호둔 바위에 도착했다. 일행 중 몇몇이 “『전경』에서만 보던 그 호둔 바위를 실제로 보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며 감격스러워했다. 곧이어 조별로 기념 촬영을 한 뒤 산 정상으로 향했다.
  시루산에 올라와 보면 상제님께서 공부와 천지공사를 하신 곳이라 하기엔 그 규모가 다소 왜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이 상제님께서 서 계셨던 곳이고 비탈길에 새겨진 내 발자국 역시 상제님의 발자취가 닿은 곳이라 생각하니 신성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상제님께서 공부하시다가 산 밑의 조그마한 샘터에 내려오셔서 천하창생의 앞날을 생각하며 애통하게 우신 것을 생각한다면 상제님의 뜻을 받들고자 하는 수도인들에게 시루산은 결코 작은 산이 아니다.
  두 번째 일정으로 수도인들이 도장 다음으로 많이 가봤다는 전북 김제의 금산사(金山寺)를 찾았다. 상제님께서 강세하신 이치와 양산(兩山)의 진리를 암시하여 도(道)의 근원을 밝혀 놓은 금산사.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크고 중요한 절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우리 수도인들에게 가장 애정이 가는 절이라고 할 수 있다. 금산사의 명물 미륵전 미륵장륙상을 받치는 쇠솥이 있기 때문이다. 대순진리회 수도인 치고 이 솥 한번 만져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할 정도로 이 솥은 수도인들에게 매우 친숙하다. 특히 원하는 바를 생각하면서 솥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은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필자 역시 어릴 적 부모님 손에 이끌려 솥을 만져 본 경험이 있다. 어렴풋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내 머리맡에 최신 로봇 장난감이 놓여있기를 간절히 빌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안 형편도 어려웠는데 철부지가 따로 없었다. 필자 외에도 이 솥에 추억을 가진 수도인들은 많다.
  그중 김제가 고향인 어느 내수분은 부모님 병환을 낫게 할 목적으로 금산사에 자주 왔었는데 어느 날 여기서 선각을 만나 입도하게 되었고 부모님 병도 고쳤다고 말했다. 김제를 떠나 20여 년 만에 다시 방문하니 갑자기 그때가 떠오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 모습을 보니 금산사의 쇠솥이 한편으로는 오랜 세월 만수 도인들의 손때가 묻은 ‘추억의 창고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미륵전과 그 밖에 경내의 대장전 적멸보궁 등을 빠르게 둘러보고 홍예문을 빠져 나오는 것으로 금산사에서의 일정을 끝냈다. 예약해 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상제님 초분지(草墳地)가 있는 김제시 금산면 동곡약방으로 이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비산이 건너다보이는 상제님 초분지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간단한 읍배를 드리고 강사분의 설명을 들었다.
 
▲ 금산사 미륵전
 

  초분이란 시신을 땅에 묻지 않은 채 돌이나 통나무 위에 관을 얹어놓고 육탈(肉脫)될 때까지 이엉과 용마름 등으로 덮은 초가 형태의 임시 무덤을 말하므로 초분은 아직 장례식 과정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01 시신을 관에 넣을 때는 천으로 싸고 끈으로 묶은 뒤 저승 가는 길 노잣돈으로 입안에 쌀과 돈을 넣어 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상제님께서는 “죽은 후에는 묶지도 말고 널 속에 그대로 넣어두는 것이 옳으니라.”(행록 5장 35절)고 유언하셨다. 일반적인 장례절차를 생략하신 것이다. 상제님 말씀의 깊은 뜻을 모두 헤아릴 수 없으나 ‘훗날 도주님께서 찾아오실 것을 미리 아신 상제님의 안배이지 않았을까?’라는 추측을 해봤다. 강사분의 설명을 듣던 내수 임원 중 한 분은 “차가운 땅에 누워계신 채로 도주님을 기다리시던 상제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는 30분 정도 설명을 더 들은 뒤 또 다른 답사지로 가기 위해 버스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은 섬진강댐 일대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섬진강댐이 운암강을 막으면서 생긴 옥정호수의 수려한 경치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길이 344.2m, 높이 64m의 웅장한 규모의 섬진강댐에 가득 담긴 옥정호수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니 가슴이 탁 트였다. 특히 청명한 하늘 아래 만발한 벚꽃의 향연은 한 폭의 그림같았다.

 
▲ 옥정호수
 
 
  섬진강댐은 상제님께서 전북 칠읍의 흉년을 없애신 공사02와 관련이 깊은 곳이다. 예로부터 전라북도 지방은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곡창 지대로 유명했다. 하지만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들면 무용지물이 되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이에 상제님께서는 운암강 물줄기를 전북 김제 만경의 넓은 평야로 돌리는 공사를 보셔서 이 지역을 기상 조건과 상관없는 옥토로 바꾸어 놓으셨다고 한다.03 그리고 하류의 섬진강 유역은 연평균 1,219mm의 풍부한 강수량을 보이는 산간지역으로서 늘 홍수피해를 입던 지역이었다. 섬진강댐이 생기고 물을 조절 방류하면서 홍수피해가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다. “운암강(雲岩江) 물줄기를 김제만경(金提萬頃)으로 돌려도 하류에서는 원망이 없을 것이다.”(공사 1장 28절)라는 상제님의 말씀이 꼭 들어맞은 것이다.04 평소『전경』에서 이 구절을 볼 때마다 이것을 증명할 자료나 방법이 없을까 하고 궁금했는데 직접 와서 강사분의 설명을 듣고 현장을 보니 상제님의 공사가 피부로 와 닿았다.
  다음으로 오늘 일정의 마지막 방문지인 전북 정읍시 태인면에 소재한 도주님의 무극도장 터를 찾았다. 이번 답사 주제인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에 조금은 벗어났지만 전라도 지역에 와서 도주님 무극도장 터를 그냥 지나치기엔 주어진 기회가 너무 아까워서 방문하게 되었다. 무극도장 터는 이번이 처음이라 얼마나 흔적이 남아 있을까 궁금했었다. 하지만 치마바위 위에서 바라본 현재의 모습은 옛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때 쓰였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라는 도주님의 말씀을 위안으로 삼았다. 다만 전북 부안의 경주 이씨 문중의 재실에 가면 도솔궁의 일부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언젠가 시간을 내서 꼭 한번 찾아가 보리라 생각하며 여주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 현 무극도장터
 
 
답사 돌아보기
  다음 날 조식을 먹고 수련원 1층 강당에 모였다. 어제 방문했던 답사지의 기억을 떠올려보고 “도전 종문답” 퀴즈 시간을 가졌다. 상품이 걸려 있다는 말에 모두 열띤 경쟁을 펼쳤다. 하지만 순위와 상관없이 웃고 떠들며 그 순간을 즐겼다. 퀴즈가 끝나고 이번 답사의 마지막 일정인 조별 소감발표 시간이 이어졌다. 발표는 지하 대강당으로 자리를 옮겨 진행했다. 발표 내용은 대체로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사항들을 이번 답사를 통해 역사적 사실로 인식하게 된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리고 재미있는 레크리에이션과 감사 프로그램을 통해 힐링이 되었다며 다음에도 꼭 참가하고 싶다는 의견도 많았다. 발표가 끝나고 마무리 인사로 모두 기립하여 ‘오!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그리고 서로 아쉬워하며 다음 종교문화답사에도 다시 보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사람들이 답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으로 혹은 말로 전해 들은 지식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활자 매체가 전달해 줄 수 없는 현장감이나 실체감을 오롯이 느끼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본다. 하물며 상제님을 신앙하는 수도인들에게는 그보다 더 절실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바로 믿음을 더 확고히 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경과 진리교화, 수도의 경험을 통해서 믿음을 키워 갈 수 있다. 하지만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상제님의 존재와 천지공사에 대한 내용이 내 눈에 역사적 사실로 인식된다면 상제님에 대한 믿음, 즉 신앙심을 더욱 심화할 수 있다. 특히 갓 입도한 도인에게 신앙심의 고취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앞으로 이러한 부분들이 충분히 반영될 것으로 생각하며 더 좋은 답사 프로그램을 기대해본다. 
 
 

01 《대순회보》 139호, 「상제님의 성골」, 참고.
02 공사 1장 28절.
03 《대순회보》 71호, 「전북 칠읍을 찾아서」, 참고.
04 《대순회보》 71호, 「전북 칠읍을 찾아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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