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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6년(2016)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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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다시 읽기(13) : 구세제민(救世濟民)의 주문

구세제민(救世濟民)의 주문
 
 
 대순종교문화연구소
 
도주께서 어느 날 공부실에서 공부에 전력을 다하시던 중 한 신인이 나타나 글이 쓰인 종이를 보이며 “이것을 외우면 구세제민(救世濟民)하리라.”고 말씀하시기에 도주께서 예(禮)를 갖추려 하시니 그 신인은 보이지 않았으되, 그 글은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至氣今至願爲大降)’이었도다. (교운 2장 7절)
 
 
 
 
  위의 『전경』 교운 2장 7절은 도주님께서 계시로써 구세제민(救世濟民)의 21자 주문인 기도주(祈禱呪)를 받으시는, 종단사(宗團史)에 있어서 매우 뜻깊은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이 사건이 중요한 것은 도주님께서 도력으로 구세제민하고자 하신 뜻이 드디어 세상에 펼쳐지는, 치천하(治天下)의 본격적으로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때부터 약 58년 전인 1860년, 상제님으로부터 시천주(侍天呪)01를 받았던 최수운의 봉천명(奉天命) 봉신교(奉神敎)와 그가 이해한 주문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최수운은 도주님보다 앞서 상제님으로부터 구세제민의 천명과 신교를 계시로 받은 유일한 사람이고 또한 그가 받은 주문이 도주님이 받으신 기도주와는 읽는 순서만 다를 뿐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동경대전』을 비롯한 동학의 경전과 문헌을 통해 최수운이 받았던 천명과 신교 그리고 그의 시천주 해석 및 독법을 간략히 살펴보고, 또한 이를 도주님의 기도주 계시와 비교하여 구세제민의 주문으로서 기도주가 지니는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보려 한다. 또한 이에 더해 대순진리 감오득도와 기도주 계시의 관계를 여러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한다.
 
 
기도주와 시천주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至氣今至願爲大降)’. 21자로 된 이 주문을 우리 종단에서는 기도주라 하며, 매일 하는 기도와 많은 의례에서 외우고 있다. 그러나 이 주문은 우리만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학 계열의 천도교를 비롯한 여러 종단에서 다른 명칭과 독법(讀法)을 지니면서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주문이다. 사실 기도주는 동학의 본(本) 주문인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의 13자와 강령(降靈) 주문인 ‘지기금지원위대강’의 8자를 합친 것과 동일하다. 이러한 동질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결국 동학의 창시자인 최수운 역시 상제님으로 부터 계시를 통해 도주님과 같은 주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주님과 최수운의 이 주문에 대한 읽는 법, 즉 독법(讀法)에는 큰 차이가 존재하는데, 동학 전통 즉 천도교를 비롯한 동학계열의 종단에서는 강령주문인 ‘지기금지원위대강’을 먼저 외우고 그 다음에 본주문인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를 외운다는 것이고02, 우리는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를 먼저 외운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동학과는 달리 이 두 주문을 구분해서 부르거나 따로 사용하는 경우도 없다.
  이러한 차이가 생긴 이유를 간단하게 말한다면, 최수운은 상제님으로부터 계시로 받은 주문을 강령주문과 본주문으로 구분하고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의 순서로 외우도록 했고, 도주님께서는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지기금지원위대강’의 21자로 주문을 받고 이대로 도법을 세우셨기 때문이다.
  최수운이 우리의 기도주와 다른 순서로 주문을 읽게 한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는 아마도 1860년 최수운의 득도와 1917년 도주님의 기도주 계시 사이에 이 주문을 내려주신 상제님의 강세(1871년)와 천지공사라는 대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도주님과 최수운은 구세제민하려는 뜻을 품었고, 득도를 통해 이를 이루려 하였으며, 입산 공부에 임하여 계시로써 상제님으로부터 천명과 신교를 받는[奉天命 奉神敎] 등 큰 틀에서 상당한 유사점을 지니지만, 그 봉천명·봉신교의 시기에 있어서는 상제님의 강세와 천지공사라는 대역사가 세상에 펼쳐진 전과 후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측은 비록 상제님 대도의 참뜻을 밝히는데 실패는 하였지만 최수운의 봉천명 봉신교가 도주님의 봉천명 봉신교와 동일한 선상에서 비교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전제에서 가능한데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최수운의 봉천명 봉신교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최수운이 상제님으로부터 천명과 신교를 받았음은 상제님께서 재세 시에 종도들에게 밝혀주신 사실이다.03 실제로 최수운 역시 직접 쓴 글을 통해 그가 상제님의 계시로 천명과 신교를 받았으며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뜻밖에도 4월에 마음이 선뜩해지고 몸이 떨려서 무슨 병인지 집중할 수도 없고 말로 형상하기도 어려울 즈음에 어떤 신선의 말씀이 있어 문득 귀에 들리므로 놀라 캐어물은 즉 대답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 사람이 나를 상제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시기를 “나 또한 공이 없으므로 너를 세상에 내어 사람에게 이 법을 가르치게 하니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라.” 묻기를 “그러면 서도로써 사람을 가르치리까.” 대답하시기를 “그렇지 아니하다. 나에게 영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요, 그 형상은 태극이요, 또 형상은 궁궁이니, 나의 영부를 받아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고 나의 주문을 받아 사람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면 너도 또한 장생하여 덕을 천하에 펴리라(不意四月 心寒身戰 疾不得執症 言不得難狀之際 有何仙語 忽入耳中 驚起探問則 曰 勿懼勿恐 世人謂我上帝 汝不知上帝耶 問其所然 曰余亦無功故 生汝世間 敎人此法 勿疑勿疑 曰 然則西道以敎人乎 曰不然 吾有靈符 其名仙藥 其形太極 又形弓弓 受我此符 濟人疾病 受我呪文 敎人爲我則 汝亦長生 布德天下矣).” (『東經大全』, 「布德文」)  
 
 
이를 일일이 들어 말할 수 없으므로 나 또한 두렵게 여겨 다만 늦게 태어난 것을 한탄할 즈음에, 몸이 몹시 떨리면서 밖으로 접령하는 기운이 있고 안으로 강화의 가르침이 있으되, 보였는데 보이지 아니하고 들렸는데 들리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오히려 이상해져서 수심정기하고 묻기를 “어찌하여 이렇습니까.” 대답하시기를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니라. 사람이 어찌 이를 알리오. 천지는 알아도 귀신은 모르니 귀신이라는 것도 나니라. 너는 무궁 무궁한 도에 이르렀으니 닦고 단련하여 그 글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그 법을 바르게 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擧此一一不已故 吾亦悚然 只有恨生晩之際 身多戰寒 外有接靈之氣 內有降話之敎 視之不見 聽之不聞 心尙怪訝 修心正氣而問曰 何爲若然也 曰吾心卽汝心也 人何知之 知天地而無知鬼神 鬼神者吾也 及汝無窮無窮之道 修而煉之 制其文敎人 正其法布德則 令汝長生 昭然于天下矣).” (『東經大全』, 「論學文」)
 

  최수운의 수도 목적이 구세제민이었음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상의 『동경대전』 내용 중의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니라(吾心卽汝心).’는 상제님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는 수운이 구세제민의 마음을 지니고 하늘에 기도했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즉 1860년 당시 상제님께서는 신성·불·보살의 하소연으로 창생을 구제하고자 천하를 대순하시고 금산사에 임하여 계셨고, 따라서 상제님께서 당신의 마음이 곧 최수운의 마음이라 하신 것은 당시 최수운의 수도 목적 또한 구제창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도력으로 구세제민하고자 입산 공부를 결행하신 도주님께서 품으셨던 뜻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상제님께서는 1860년 경신년에 ‘도력으로써 구세제민하고자 했던 뜻’을 지니고 정성을 기울이던 최수운을 선택하셔서, 사람을 살리고 올바로 가르치라는 천명과 태극 형상의 영부(靈符)와 주문을 내리시어 그가 봉천명 봉신교하도록 하신 것이다.
 
 

  최수운은 상제님으로부터 ‘닦고 단련하여 그 글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그 법을 바르게 하여 덕을 펴라는 명’을 받고 그 후 계속된 계시를 통한 문답으로 약 1년 동안 상제님의 명과 가르침을 받으며 수련에 정진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 시천주, 즉 강령주문인 ‘지기금지원위대강’의 8자와 본주문인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의 13자로 된 21자 주문이었다. 다음의 글은 이를 잘 보여준다.
 
 
나 또한 거의 한 해를 닦고 헤아려 본즉, 또한 자연한 이치가 없지 아니하므로 한 편으로 주문을 짓고 한편으로 강령의 법을 짓고 한편은 잊지 않는 글을 지으니, 차제도법이 오직 21자로 될 따름이니라 (吾亦幾至一歲 修而度之則 亦不無自然之理 故 一以作呪文 一以作降靈之法 一以作不忘之詞 次第道法 猶爲二十一字而已). (『東經大全』, 「論學文」)
 
 
  결국 최수운이 상제님으로부터 천명과 신교를 받아 차제 도법인 21자 주문을 완성하는 이상의 과정을 통해 본다면 최수운의 봉천명 봉신교는 구세제민의 명과 21자 주문이라는 점에서 도주님의 봉천명 봉신교와 구조적으로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는 최수운의 도법에 있어 핵심이 되는 시천주가 구세제민의 주문이라는 점에서 도주님의 기도주와 그 의미에 있어서도 상통하기에 더욱 자명하다. 즉 상제님께서 구세제민, 즉 사람을 살리고 가르치기 위해 최수운에게 내려주신 영부와 주문 중 실제 수도에 중점적으로 사용된 것은 오직 이 21자의 주문이고, 도주님에게도 이 주문을 외우면 구세제민하리라는 명을 내리셨기 때문이다.
  상제님의 구제창생의 천명을 받들고 이를 이룰 수 있는 주문이라면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최수운이 서양에 이 주문이 없다는 점을 서양의 도(道)와 학(學)을 비판하는 주된 근거로 삼고,04 “차제도법이 오직 21자로 될 따름이니라.”라고 했던 것, 그리고 도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다른 무엇을 가르치지 않고 단지 주문 21자만을 전하고, 주문만 지극히 외우면 만권시서(萬卷詩書)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도05 이를 잘 알 수 있다. 이토록 중요한 주문이기에 그 독법 또한 중요하다 할 수 있고 따라서 그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추측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할 것이다.
  앞서 밝혔듯이 동일한 21자이지만 지기금지원위대강을 먼저 읽는지, 뒤에 읽는지에 따라 동학의 시천주와 우리 종단의 기도주로 구분한다. 왜 이러한 독법의 차이가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엿보기 위해서는 최수운이 이해한 시천주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최수운은 제자들의 물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묻기를 “주문의 뜻은 무엇입니까?” 대답하시기를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이므로 주문이라 이르는 것이니, 지금 글에도 있고 옛 글에도 있느니라.” 묻기를 “강령의 글은 어찌하여 그렇게 됩니까?” 대답하기를 ‘지’라는 것은 지극한 것이요 ‘기’라는 것은 허령이 창창하여 일에 간섭하지 아니함이 없고 일에 명령하지 아니함이 없다. 그러나 모양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 듯 하나 보기는 어려우니, 이것은 또한 혼원한 한 기운이요, ‘금지’라는 것은 도에 들어 처음으로 지기에 접함을 안다는 것이요, ‘원위’라는 것은 청하여 비는 뜻이요, ‘대강’이라는 것은 기화를 원하는 것이니라. ‘시’라는 것은 안에 신령이 있고 밖에 기화가 있어 온 세상 사람이 각각 알아서 옮기지 않는 것이요, ‘주’라는 것은 존칭해서 부모와 더불어 같이 섬긴다는 것이요. ‘조화’라는 것은 무위이화요. ‘정’이라는 것은 그 덕에 합하고 그 마음을 정한다는 것이요, ‘영세’라는 것은 사람의 평생이요, ‘불망’이라는 것은 생각을 보존한다는 뜻이요. ‘만사’라는 것은 수가 많은 것이요, ‘지’라는 것은 그 도를 알아서 그 지혜를 받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 덕을 밝고 밝게 하여 늘 생각하며 잊지 아니하면 지극히 지기에 화하여 지극한 성인에 이르느니라. (曰呪文之意何也 曰 至爲天主之字故 以呪言之 今文有古文有. 曰降靈之文 何爲其然也 曰至者 極焉之爲至 氣者虛靈蒼蒼 無事不涉 無事不命 然而如形而難狀 如聞而難見 是亦渾元之一氣也 今至者 於斯入道 知其氣接者也 願爲者 請祝之意也 大降者 氣化之願也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主者 稱其尊而與父母同事者也 造化者 無爲而化也 定者 合其德定其心也 永世者 人之平生也 不忘者 存想之意也 萬事者 數之多也 知者 知其道而受其知也故 明明其德 念念不忘則 至化至氣 至於至聖). (『東經大全』, 「論學文」)
 
 
  이상에 따르면 독법 차이의 핵심인 지기(至氣)에 대해 수운은 무극이나 태극의 작용에 의해 움직이는 우리 종단의 지기(至氣) 개념과 거의 일치하는 설명을 하고 있다. 즉 수운은 ‘허령이 창창하여 일에 간섭하지 아니함이 없고 일에 명령하지 아니함이 없다. 그러나 모양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 듯 하나 보기는 어려우니, 이것은 또한 혼원한 한 기운’이라 하여 형체는 없지만 모든 일에 간섭하고 명령하는 지극한 원기(元氣)로 지기를 설명하고 있고, 이는 여주본부도장의 포정문 벽에 쓰인 ‘대순진리회’라는 글에 나타난 무극 태극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기운인 지기와 개념적으로 거의 동일한 것이다.06 우리 종단의 지기 개념은 상제님의 기운과 상통하는데, 그것은 바로 다음의 내용 때문이다.

 
오직 우리 성사께서는 구천대원조화주신(九天大元造化主神)으로서
지기(至氣)를 조차 인계(人界)에 하강(下降)하사 삼계(三界)를 대순하시여 …
 
 
  결국 지기는 무극신이신 상제님의 기운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며, 이렇게 본다면 지기금지원위대강이라는 주문은 상제님의 기가 내 몸에 접하여 대강하기를 기원하는 기도문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최수운은 이것을 강령(降靈), 즉 성령(聖靈)이 내리는 주문이라 한 것이다.
  최수운이 천명과 신교를 받아 21자 주문을 완성하던 1860년 그는 자신이 대도의 참뜻을 밝히지 못하여 실패할 것을 알 수 없었고 따라서 상제님께서 직접 강세하실 것을 알지 못하고 지기의 현현(顯現), 즉 성령의 강림으로써 도통과 구제창생이 이루어짐을 믿고 도법을 만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수운은 차제 도법을 세움에 있어 그 핵심과 우선순위를 지기 대강의  기원에 두었고, 일심으로 천주를 모시고[시천주] 그 조화와 합함[조화정]을 평생토록 잊지 않아[영세불망] 도를 깨닫는[만사지], 즉 수도를 통한 오도(悟道)는 지기(至氣)의 대강(大降)이라는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수운의 구세제민의 21자 주문 독법은 지기의 대강, 즉 천강(天降)이 우선되는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운이 대도의 참뜻을 밝히지 못하자 상제님께서는 직접 강세하시어 구제창생의 천지공사를 펼치셨는데, 그 핵심은 수도를 통해 지기가 대강할 때 신인조화하는 신봉어인(神封於人)의 도수라 할 것이다. 따라서 상제님 화천 후 득도하신 도주님의 도법에는 인세에 강세하신 상제님을 일심으로 모시고[시천주(侍天主)] 그 조화에 합함[조화정(造化定)]을 영세토록 잊지 않겠다는[영세불망(永世不忘)] 신앙과 수행[수도]의 기원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전제 뒤에 삼라만상을 곡진이해하는 만사지(萬事知)[도통(道通)]와 지기의 대강[운수(運數)]이 가능한 것이기에 기도주는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至氣今至願爲大降)’의 순서로 읽혀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감오득도와 기도주
  독법의 문제를 떠나서 기도주는 상제님 천지공사, 도주님의 50년 공부, 도전님의 50년 수도공부07, 그리고 우리의 수도에 매우 중요한 주문이었기에 도주님께서 기도주를 받으시는 사건을 도주님의 대순진리 감오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즉 교운 2장 6절에서 도주님께서 상제님의 대순진리를 감오하시는 것을 교운 2장 7절에서 도주님께서 기도주를 계시로 받으시는 것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은 위에서도 밝혔듯이 기도주가 상제님이 대순하신 뜻인 구세제민을 이루는 주문이고 그 송주의 목적이 상제님을 모셔 만사를 다 알고 지기를 받는, 즉 도통과 운수를 기원하는 것이기08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수리 21이 상징하는 바가 태을주에 버금가는 면모가 있기 때문이다. 잠시 그 수리의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자.
  크게 보아서 기도주는 13과 8, 그리고 21이라는 숫자로부터 그 상징적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기도주를 13자와 8자로 나누지 않고 21자 모두를 한 번에 읽지만, 『전경』 여러 곳에서 기도주가 13자와 8자로 나누어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09, 입도치성 때 사용하는 물품 가운데 하나인 녹명지(錄名紙)에도 기도주는 13자와 8자로 나뉘어 표기되고 있기 때문에, 기도주는 13과 8의 수리적 의미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기도주가 품은 13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전경』에 따르면 상제님께서는 열석 달 만에 인세에 오셨고, 또 장차 열석 자의 몸으로 오신다고 하셨다.10 즉 조화주이신 상제님께서 인세에 오실 때 13이라는 숫자가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13이라는 수리는 상제님을 상징하는 것이며 상제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다는 것, 그리고 4·9[4+9=13]11 금(金) 가을로 상징되는 개벽의 시기, 지기 대강의 때에 다시 오시는 것과 연관된다.
  둘째, 기도주 지기금지원위대강의 8이 지니는 수리는 대표적으로 팔괘와 관련되는데, 우리는 아래의 도전님 명의로 1956년에 발행된 『태극도통감』에서 팔괘가 태극의 조화 작용으로 우주의 변통조화(變通造化)와도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12
 
 
道之謂道也者는 定而无極하고 動而太極하야 太極이 生兩儀하고 兩儀生四象하고 四象生八卦하나니 太極之理生生之數는 無盡無量하야 變通造化功德을 不可思議일새 惟我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上帝 管領主宰 太極之天尊이시라.13
 
 
  여기에 더해 “류찬명은 도통이 건감간진손이곤태(乾坎艮震巽離坤兌)에 있으리라는 가르침을 상제로부터 받았느니라.”14는 『전경』 구절까지 참고한다면, 결국 8이 상징하는 것은 도통과 운수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기도주는 전체 글자 수가 21이다. 예로부터 21은 삼칠(三七)이라 하여 새로운 탄생을 상징하는 것으로 믿어졌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인간이 되기 위해 마늘과 쑥으로 연명하며 버틴 기간도 21일이며, 민간에도 21일을 삼칠일이라 하여 새로 태어난 아기를 아무에게도 내어 보이지 않는 금기의 기간으로 삼았으니, 21은 곧 새로움의 탄생이라는 수리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21은 10이라는 우주가 두 번 쌓여[20] 음양을 이루고 거기에 다시 1이 붙어 새로움을 시생하는 형국을 이루고 있으니, 20+1의 원리를 통해서도 탄생이라는 의미를 추리해 낼 수 있다.
  이상을 정리해보면 기도주의 글자 수 21은 13+8로 풀이할 수 있는데, 13이라는 수리는 상제님과 그 조화를 상징하며, 8은 태극의 조화작용, 도통과 운수를 뜻한다. 다시 말해 상제님께서 강세하여 그 조화, 즉 천지공사를 통해 해원상생의 대도로써 후천 개벽의 도수를 펼치셨으니 이것이 곧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의 13이요, 그 상제님의 공사와 안배하여 놓으신 도수에 따라 도통과 운수가 이루어지니, 이것이 곧 지기금지원위대강의 8에 대응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기도주는 수리적으로 상제님의 강세와 천지공사[13] 그리고 그에 따른 운수와 후천 개벽으로써[8] 삼라만상이 새롭게 탄생하는[21] 상제님의 대순진리를 또한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상제님과 밀접히 연관된 기도주의 의미에 더하여 그 수리적 상징 때문에 도주님께서 기도주를 받으시는 것을 그 전 구절인 도주님께서 상제님의 대순진리를 감오하시는 것으로 보는 해석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신인으로부터 구세제민의 주문인 기도주를 받으시는 이 구절을 『대순진리회요람』에 있는 정사년(丁巳年) 2월 10일 도주님께서 ‘대순진리(大巡眞理)에 감오득도(感悟得道)하시고 종통계승(宗統繼承)의 계시(啓示)를 받으시는’ 사건에 대한 설명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점 또한 존재한다. 한 신인으로부터 종이에 적힌 기도주의 주문을 얻는 것을 음양합덕·신인조화·해원상생·도통진경이라는 상제님의 대순진리를 깨닫는 감오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대순진리에 대한 깨달음, 즉 감오가 나타나 있지 않는 이 구절을 종통계승의 계시라고 보기도 어렵다.15 도가에서 종통계승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신앙의 대상이나 창시자의 진리에 대한 감오와 이를 통한 득도라는 것은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우리 종단 역시 이에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도전님께서 태극도를 영도하시던 1966년에 발간된 『태극도안내서』에 감오득도 치성일인 2월 10일을 종통계승일로 명시하고 있는 데서도 명확히 알 수 있다. 감오득도와 종통계승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결국 이 구절은 정사년 2월 10일의 감오득도 이후에 일어난 일이라고 보는 해석이 좀 더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영화 ‘화평의 길’의 영향으로 우리는 도주님의 감오득도와 기도주 계시를 동일한 시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경』은 교운 2장 6절에서 도주님이 정사년(1917) 상제님의 삼계 대순의 진리를 감오하시고, 7절에서 한 신인으로부터 구세제민의 주문으로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至氣今至願爲大降)’의 기도주를 받으시며, 8절에서 정화수를 모시고 기도주를 송독하시면서 “왜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느냐. 태인에 가서 나를 찾으라.”는 상제님의 계시를 받는 순서로 되어있다는 점에 주목해야만 한다. 다시 정리하자면 기도주는 정사년 2월 10일 대순진리를 감오득도하신 이후에 받으셨으며, 받은 이후부터 4월의 귀국 행 전까지 1~2개월간 청수를 모시고 송독하신 것으로 『전경』에는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도전님의 다음과 같은 훈시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23세 시 丁巳년(1917) 태을주로 도를 얻으셨다. 2월 10일에 득도하시고 계시를 받아 4월에 조선으로 나오셨다. (무진년 8월 18일, 양력 1988년 9월 28일 훈시)
 
 
정사년(丁巳年, 1917년) 2월 10일 23세 되시던 해에 득도를 하셨다. 23수는 태을주의 수와 일치한다. 그 주문으로 도를 받으셨다. (기사년 4월 4일, 양력 1989년 5월 8일 훈시)
 
 
 
 
  위의 훈시를 통해 우리는 도주님의 감오득도가 본령합리로, 태을주와의 관련하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감오득도와 기도주 계시를 동일한 일로 보기는 어려운 점이 많은 것이다.16 상제님의 대순진리를 감오하는 것은 언설로써 자세히 표현할 수 없고 비밀스러운 영역이기에 『전경』은 이를 “도주께서는 九년의 공부 끝인 정사년에 상제의 삼계 대순(三界大巡)의 진리를 감오(感悟)하시도다.”라고만 말하고 있는 것이며, 기도주 계시는 감오득도 이후 도주님께서 상제님의 명과 가르침을 받으시는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시천주 21자의 주문과 그 수행법을 최수운이 세우는 시점이 처음 계시로써 천명과 신교를 받은 직후가 아니었다는 점도 이러한 해석의 신빙성을 높여준다.17 최수운이 주문을 얻는 시점이 처음 계시를 받은 직후가 아닌 것은 1870년대를 전후하여 기록된 동학의 초기 문헌인 『최선생문집(崔先生文集) 도원기서(道源記書)』나 『대선생주문집(大先生主文集)』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기록들은 최초의 계시 후 최소 한 달이 지난 시점인 1860년 5월 이후부터 10월 이전까지의 어떤 시점에 주문이 지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18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도주님 역시 봉천명과 감오득도시에 상제님의 음성으로 천명과 신교를 받으신 후, 구세제민의 주문인 기도주를 받으실 때 상제님의 용안을 처음 뵈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19
  구세제민의 주문인 기도주를 도주님께서 얻으시는 것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일이 도주님께서 짜나가시는 구세제민의 진법이 세상에 펼쳐지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이다. 성인출(聖人出), 즉 성인의 진법이 세상에 출하는 시작점, 우리는 바로 이 의미를 깊이 있게 되새겨 도주님의 구세제민의 뜻을 본받아 이 마음으로 수도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01 일반적으로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의 13자를 시천주라고 하나, 본 글에서는 편의상 강령주문 ‘지기금지원위대강’과 본주문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를 합한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21자를 시천주라 칭하기로 한다.
02 동학 전통에서 주문을 읽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소리를 내어서 읽는 현송법으로, ‘지기금지 원위대강’이라는 강령주문 8자,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라는 13자 본주문을 반복해서 읽는다. 둘째는 소리를 내지 않고 읊는 묵송법으로, 강령주문은 읽지 않고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라는 13자 본주문만 반복해서 읽는다.
03 “… 내가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母岳山金山寺) 삼층전(三層殿) 미륵금불(彌勒金佛)에 이르러 三十년을 지내다가 최제우(崔濟愚)에게 제세대도(濟世大道)를 계시하였으되 제우가 능히 유교의 전헌을 넘어 대도의 참 뜻을 밝히지 못하므로 갑자(甲子)년에 드디어 천명과 신교(神敎)를 거두고 신미(辛未)년에 강세하였노라.” (교운 2장 9절); “상제께서 구천에 계시자 신성·불·보살 등이 상제가 아니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호소하므로 서양(西洋)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오셔서 삼계를 둘러보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동토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三十년을 지내시면서 최수운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셨다가 갑자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년에 스스로 세상에 내리기로 정하셨도다.” (예시 1절).
04 우리 도는 무위이화라. 그 마음을 지키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하고 한울님 성품을 거느리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자연한 가운데 화해나는 것이요, 서양 사람은 말에 차례가 없고 글에 순서가 없으며 도무지 한울님을 위하는 단서가 없고 다만 제 몸만을 위하여 빌 따름이라. 몸에는 기화지신이 없고 학에는 한울님의 가르침이 없으니 형식은 있으나 자취가 없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주문이 없는지라, 도는 허무한데 가깝고 학에 천주가 없으니, 어찌 다름이 없다고 하겠는가.(曰吾道無爲而化矣 守其心正其氣 率其性受其敎 化出於自然之中也 西人 言無次第 書無 白而 頓無爲天主之端 只祝自爲身之謀 身無氣化之神 學無天主之敎 有形無迹 如思無呪 道近虛無 學非天主 豈可謂無異者乎). (『東經大全』, 「論學文」)
05 “나 역시 이 세상에 무극대도 닦아 내어 오는 사람 曉諭해서 三七字 전해주니 無爲而化 아닐런가.”(『龍潭遺詞』, 「道修詞」) ; “열세 자 지극하면 萬卷詩書 무엇하며 …” (『龍潭遺詞』, 「敎訓歌」)
06 대순(大巡)이 원(圓)이며 원(圓)이 무극(無極)이고 무극이 태극(太極)이라. 우주(宇宙)가 우주 된 본연(本然)의 법칙(法則)은 그 신비(神秘)의 묘(妙)함이 태극에 재(在)한 바 태극은 외차무극(外此無極)하고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진리인 것이다. 따라서 태극이야말로 지리(至理)의 소이재(所以載)요 지기(至氣)의 소유행(所由行)이며 지도(至道)의 소자출(所自出)이라.
07 도주님께서 도를 받드신 기간은 1909년부터 1958년까지의 50년이며, 도전님께서도 병술년(1946)부터 서거하신 을해년(을해년 12월 4일, 양력으로는 1996년 1월 23일)까지 도를 받드신 기간이 50년이다.
08 도전님께서는 기도주가 봉축주와 같이 소원을 비는, 축원(祝願)하는 주문이라고 하셨다. (경오년 1월 6일, 양력 1990년 2월 1일 훈시)
09 공사 3장 41절, 교운 1장 30절, 교운 1장 44절, 그리고 교운 1장 66절의 『현무경』 10면과 20면에서 기도주가 8자와 13자로 나뉘어져 표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0 행록 1장 9절, 행록 5장 25절 참조.
11 이 해석은 13을 서방(西方) 금(金)의 수리인 4와 9의 합성이라고 하여 가을로 보고, 숙살지기와 후천을 상징하는 것으로 규명하는 것이다.
12 이와 관련하여 참고할 수 있는 것이 『주역』의 「계사전」이다. “역(易)에는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은 팔괘를 낳고, 팔괘는 길과 흉을 결정하며 길흉은 대업을 낳는다(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八卦定吉凶, 吉凶生大業).” 『周易』, 「繫辭傳」.
13 『태극도통감』 (필사본, 1956), p.5.
14 교운 1장 47절.
15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도주님 전에 상제님으로부터 천명과 신교를 받은 최수운의 봉천명 봉신교의 핵심이 시천주의 주문을 받았던 것임을 통해서 본다면, 이 구절이 도주님께서 상제님의 대순진리를 감오하시는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 봉천명의 계시일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16 기도주 계시를 감오득도로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지만 이를 종통계승의 한 과정이라고는 해석할 수 있다. 종통계승을 상제님의 명과 가르침을 받아 받드는 것, 즉 봉천명 봉신교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수운이 구세제민의 뜻을 품고 기도를 통해 1860년 상제님으로부터 시천주를 받은 것을 천명과 신교를 받았다고 하기에, 도주님이 구세제민의 주문인 기도주를 받으시는 것 또한 봉천명 봉신교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7 나 또한 거의 한 해를 닦고 헤아려 본즉, 또한 자연한 이치가 없지 아니하므로 한 편으로 주문을 짓고 한편으로 강령의 법을 짓고 한편은 잊지 않는 글을 지으니, 차제도법이 오직 21자로 될 따름이니라 (吾亦幾至一歲 修而度之則 亦不無自然之理 故 一以作呪文 一以作降靈之法 一以作不忘之詞 次第道法 猶爲二十一字而已). (『東經大全』, 「論學文」)
18 絶飮之後 上帝但無一言之敎 幾至一月 下敎曰 美哉汝之節兮 用汝以降于無窮之化布德天下 先生遂以食飮 自此以後 修心正氣 幾至一歲 修而煉之 無不自然 乃作龍潭歌 又作處士歌 而敎訓歌 及安心歌 竝出一 以作呪文二件 一件呪先生讀之 一件呪傳授於子侄 又作降靈之文 又作釰訣 又作告字呪 是乃白衣童靑衣童也 法制呪文雖有之 玄機不露 故天藏地祕云云 不意一日 上帝曰 汝明日當往親山省墓也 先生待明日 爲料去矣 當其日 大雨方來 自滯不就 上帝督促曰 何以遲遲 卽往省墓 先生冒雨以去 小無雨俱 衣無所沾 卽監侄家 借其人馬 則侄曰 如此大雨 省墓何急 先生强備人馬 而去五十里往返 太陽繞上 奴亦不沾以返 侄曰 終日大雨 是何不沾而來也 奇哉慅哉 先生曰 此乃天主之造化也 其侄益知甚怪 及其十月 其侄孟倫來請入道 先生傳之.
19 우리는 영화 화평의 길을 통해 도주님에게 종이에 적힌 기도주를 보여준 존재를 상제님이라 알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전경』에 상제님을 ‘한 신인’이라고 표현한 것은 도주님께서 기도주를 받으시기 전에는 실제 상제님의 모습을 대면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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