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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4년(1984)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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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의 생애와 사상(2) : 강증산 상제(2)

강증산상제(2)

  


  성신을 현신하심에 양미간에 둥근 백호주가 있었고 왼 손바닥에 임(壬)자 무늬와 오른 손바닥에 무(戊)자 무늬가 있으신 증산께서는 순조롭게 자라시더니 드디어 소년이 되셨다.

  누구든지 한번 보기만 하여도 존경심이 우러 나올만큼 얼굴이 복스럽게 둥굴고 몸체는 장골이면서도 성품이 원만하고 관후(寬厚) 하셨다. 그 성품은 생물에 대한 호생의 덕이 많으셔서 풀 한 포기를 꺾지 아니하시고 지극히 작은 곤충일지라도 해치지 않으셨으며 일생동안 남에게 욕설 한번 못하실 정도로 온화한 성품이셨다.

  어느날 부친이 새와 닭을 쫓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여 쫓는 것을 만류하셨으나 부친은 듣지 않고 여전히 새와 닭을 쫓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낮에 별안간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므로 말리던 벼가 떠내려가게 되어 두 부자는 서로 얼굴만 쳐다볼뿐 아니라, 말이 없었다.
  외모도 뛰어났을뿐 아니라 안으로는 관후한 성품과 지혜를 겸비하여 신동(神童)으로 불리울만큼 총명하셨다.

  증산께서 7세 되시던 해 세상공부를 시작, 부친이 서당 훈장을 초청하여 천자문을 가르치게 했는데 그 훈장이 하늘천(天)하면 받아 읽으시고 따지(地)하면 받아 읽으셨으나 검을현(玄) 누루황(黃) 했을 때는 따라 읽지를 않으셨다.

  훈장이 그에게 받아 읽지 않는 까닭을 물었으나 대답을 하시지 않고 있다가 부친에게 「하늘천(天)에서 하늘의 현묘를 찾았고 따지(地)에서 땅의 오묘한 이치를 간파하였으므로 더 이상 배울게 없아오니 훈장을 돌려 보내 달라고 여쭈었다.」

  부친은 그 청을 거역하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그 훈장을 돌려보내고 뒷 뜰에 별장을 지어 홀로 거처하시게 하였다. 또한 어느날에는 외가에 가는 도중에 주정뱅이에게서 행패를 당하고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셨는데 난데없이 돌절구통이 날아와서 그 주정뱅이의 머리를 덮어 씌우니 꼼짝을 못하게 되어 가시던 길을 계속하셨다.
  증산께서 7세 때에 글방에 가셨는데 훈장으로부터 놀랄경(驚)의 운자를 받고 즉석에서 「원보공지탁, 대호공천경(遠步恐地坼 大呼恐天驚)」의 시를 지어 훈장과 서동들을 크게 놀라게도 하셨다.

  증산께서는 13세 때부터 인간세계의 가난을 몸소 체험하게 되셨다. 모친은 모시베를 짜고 부친은 짚신을 삼아서 생계에 보태어 왔는데 소년 증산께서는 어느날 모시베 60자를 가지고 정읍장으로 팔러 나가셨다. 정읍장에서 손임을기다리다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모시 베를 도둑맞게 되었다. 함께 따라왔던 덕안과 날이 저물도록 찾아 헤매었으나 찾지를 못한 증산께서는 덕안을 돌려보내고 홀로 고창으로 향해가셔서 베를 찾아가지고 팔아, 그 돈을 모친에게 드린 일도 있었다.

  증산께서는 21세 되시던 해 문중 어른들이 아내될 규수를 구하였다. 신동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에 40여 곳에서 아내될 사람이 나섰는데 결국 김제의 정씨댁 규수하고 혼인을 하시게 되었다. 그러나 증산께서는 잠시도 집에 머물수 없으셨던 것이다.
  하늘의 일을 보는 자는 가사를 돌볼 수 없다. 중국의 제갈량이 성공치 못한것은 뽕나무 팔백그루가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고사를 비유하셨고 천하사 도모의 공사 때문에 아내의 간곡한 만류를 그때마다 뿌리치시고 결국 집을 떠나야만 하셨다.

  천하가 무도(無道)의 천하지병(天下之病)에 걸려 죽음의 직전에 놓여 있음을 알고 어찌 집안에 머물러 계실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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