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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6년(1996)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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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수 신명의 생애 : 진준(陣俊) 神明열전

진준(陣俊) 神明열전 

 

             

 <출전: 후한서 권18>

            

  진준(陣俊)의 자(字)는 자소(字昭), 남양현(南陽縣)의 서악(西顎) 사람으로 어려서 군(郡)의 관리가 되었다. 갱시(更始)가 즉위하여 종실(宗室) 유가(劉嘉)로 태상장군(太常將軍)으로 삼았는데 진준은 장사(長史)가 되었다. 광무가 하북을 순수할 때 유가가 서찰을 올려 진준을 천거했는데 이에 광무는 그를 안집연으로 삼았다.
  진준은 광무를 따라 청양(淸陽)에서 동마적(銅馬賊)을 격파하고 진군하여 포양(蒲陽)까지 이르렀는데 광무는 그에게 강노장군(疆弩將軍)을 제수했다.

  안차(安次)에서 오교적(五校賊)과 싸우다가 말에서 내려 손에 짧은 칼을 들고는 진격하였다. 닥치는 대로 격파하여 20여리 까지 추격하다가 그 거수(渠帥)를 베고 돌아왔다. 광무가 멀찍이서 보고 찬탄하며 이르길, 『싸우는 장수마다 모두 이와 같다면 무슨 걱정이 있을꼬?』라 하였다.
  오교적이 퇴각하면서 어양(漁陽)에 들어갔는데 지나는 곳마다 노략질을 하였다. 이에 진준이 광무에게 이르기를『마땅히 경기병(輕騎兵)을 내보내 적들의 길목을 지키게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각기 굳게 지키게 하여 그들이 먹을 식량을 끊어버리면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라 하니 광무가 이를 듣고 과연 그렇다고 여기고 진준으로 하여금 경기병을 이끌고 적을 앞으로 치닫게 했다.
  보루와 성벽이 견고하여 안전한 곳은 칙령을 내려 굳게 지키게 하고 들에 있는 곡식들은 모두 거두어들이도록 했다. 적들이 이르러 보니 취할 것이 없어 마침내는 흩어져 달아났다. 군대를 이끌고 들어오자 광무가 진주에게 이르길, 『저 도적들을 지치게 만든 것은 장군의 계책이었소.』라고 칭찬하였다. 제위에 올라서 진준을 열후(列侯)에 봉했다.
  건무 2년 봄에 진준이 광적(匡賊)을 공략하여 네 현(縣)을 함락시켰는데 이에 광무는 다시 그를 신처후(新處侯)에 봉했다. 또 진준은 군대를 이끌고 돈구(頓丘)를 공격하여 세 성을 함락시켰다. 그해 가을에 대사마(大司馬) 오한이 천자의 명으로 진준에게 강노대장군(疆弩大將軍)을 제수하고, 특별히 하내(河內)에 있는 금문적(金門賊)과 백문적(白門賊)을 공격하게 하여 이에 진준은 모두 격파시켰다.
  4년에 군대를 돌려 여양(汝陽)과 항(項)을 굴복시키고 또 남무양(南武陽)을 함락시켰다. 이 때에 태산(太山)의 호걸들이 많은 무리들을 거느리고 장보(張步)와 연병(連兵)하였다. 대사마 오한이 광무에게 이르기를, 『진준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이 군(郡)을 평정시킬 수 없습니다.』라 했다. 이에 광무는 진준에게 태산태수(太山太水)를 배수(拜授)하고 대장군(大將軍)의 일을 행하도록 했다. 장보가 이를 듣고 그 휘하의 장수를 보내 진준을 치게 하였다. 영(瀛) 아래에서 싸워 진준이 그들을 크게 이기고 추격하여 제남(濟南)까지 이르렀다. 장보가 사사로이 봉해주었던 인수(印綬) 90여개를 취하고 여러 현을 차례로 공략하여 마침내 태산을 평정하였다. 건무 5년에 건위대장군(建威大將軍) 경감과 함께 장보를 격파했다. 이에 관한 기록은 경감전에 있다.
  이 때에 낭사가 아직 평정되지 않아 광무는 진준을 태산에서 옮겨 낭사의 태수로 삼았다. 그러나 장군의 직위는 여전히 그대로 두었다. 제(齊) 지역에 평소에 진주의 명성이 자자했는데 그곳이 진준의 치지(治地)와 경계가 되자 그쪽에 머물던 도적떼들이 흩어졌다. 진준이 군대를 이끌고 공유에서 동헌(董憲)을 치고 진격하여 구적손양을 쳐 평정시켰다.
  건무 8년에 장보가 다시 반란을 일으켜 낭사로 돌아오려 하자 진준이 쫓아가 토벌하고는 장보를 베었다. 광무가 그 공을 가상히 여겨 조서를 내려 진준으로 하여금 청주(靑州)와 서주(徐州)를 전담하여 다스리게 했다.

  진준이 가난하고 병약한 사람들을 돌보고 의로움이 있는 자를 표창하며, 군리(軍吏)들을 절도 있게 하여 속하 군현과 사이를 좋게 가지자 백성들이 이를 노래했다.

  또 자주 글을 올려 농과 촉(蜀)을 격파할 것을 자청했으나 광무가 조서를 내려 답하기를, 『동주(東州)가 갓 평정된 것은 대장군의 공이다. 동주는 바다를 등지고 하(夏)를 어지럽히는 도적들이 출몰하는 곳으로 나라에서 아주 염려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니 방어에 힘쓰고 백성들을 잘 돌보라.』고 하였다.
  건무 13년에 식읍을 더 늘려 축하후(祝阿侯)에 봉했다. 그 이듬해에 부름에 응해 입조(入朝)하였다. 건무 23년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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