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보는 대순회보Ⅲ 오늘날까지 마주하는 것들의 시작
출판팀 최정훈
.jpg)
1999년생 입장에서는 대순진리회의 역사가 길게 느껴진다. 수도하며 마주하는 자료, 장소, 활동 등 모두 늘 그렇게 있었기에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코너를 기획하며 과거 《대순회보》를 세세히 살펴보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의 시작을 볼 수 있었다. 들어만 봤던 이야기를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었고, 새삼스럽게까지 느껴졌다. 물론 그 당시를 직접 살아왔던 도인들은 겪어봤던 일이라서 이처럼 못 느낄 수도 있다. 그렇지만 30~40년이 지난 일이 어제 일만큼 생생하진 않을 테니 《대순회보》를 통해 우리가 오늘날까지 마주하는 것들의 시작점을 다시 살펴보자.
화평의 길
〈화평의 길〉은 대순종학과에서 교육자료로 사용되며 금강산토성수련도장 연수에서도 상영되고 있다. 영화는 상제님과 도주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많은 도인이 엑스트라로 참여해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1984년에 개봉했으며 당시 《대순회보》에 관련된 글이 적지 않게 실렸다. 시나리오를 쓴 이형우 작가의 후기, 도인들의 감상문이 실렸고, 대진연합회가 자체적으로 상영회를 열었다는 내용과 공중파에서 방영됐다는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당시 〈화평의 길〉을 영화라고 부르지 않고 ‘성화’라고 표현했다는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이런 〈화평의 길〉은 현재 여주본부도장 유튜브 채널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 〈화평의 길〉을 보면서 과거 《대순회보》에 실린 감상문을 같이 보는 건 어떨까?
.jpg) 미리 가본 여주도장
여주본부도장은 현재 공부, 치성, 수강, 참배 등의 행사가 진행되며 도인들이 왕래하고 손님들을 맞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여주본부도장이 지어지는 과정 역시 《대순회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글을 보면 본부라는 단어 없이 여주도장으로만 불렸던 모습(1993년에 본부가 이전되었다), 더 이전엔 여주 수강원이라 불렸던 흔적까지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조감도를 보면 지금의 영대는 없고 현재의 봉강전이 영대였던 것과 청계탑이 없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지금의 영대는 1990년도에 지어졌다) 도장이 세워진 이후 전경(全景) 사진에 아스팔트가 없고 인도와 차도의 구분도 없는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하나씩 갖춰나갔던 여주본부도장은 얼마나 많은 도인의 정성이 들어갔을까?
해원상생 운동
오늘날 대순진리회의 3대 중요사업은 도주님께서 무극도 당시 황무지와 간척지를 개간하여 농지를 수십만 평을 일군 구세제민 사업에서 시작된다. 그렇기에 종단의 초기인 1970년도 역시 3대 중요사업이 있었으며 이것이 바로 해원상생운동이다. 지속적인 활동이었기에 《대순회보》 종단 소식란에 ‘해원상생 운동 전개’라는 제목으로 게재됐었다. 《대순회보》의 출간(1983)보다 이전인 1976년의 활동부터 놓치지 않고 같이 기재한 것으로 보아 이 사업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말해준다. 당시 활동들(불우이웃돕기, 지역사회활동 참여, 대순장학회 설립, 무료예식장 봉사, 농촌일손돕기, 미아보호운동, 반공운동, 독립기념관 성금 등)을 보면 직접 발로 뛰는 일이 많아 더욱 진심이 느껴진다. 또한 지금은 볼 수 없는 ‘애국애족’이라는 표현이 낯설면서 경외심이 생긴다. 과거 《대순회보》에서 지금도 마주하는 것들의 시작을 보니 당시의 열정이 느껴진다. 당시를 살아보지 못한 입장에서 과거의 이런 행적들 덕분에 지금의 도인들이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음을 느꼈다. 또한 과거와 현재는 상황이 다르더라도 이들과 같은 행동력이 나에게 있었나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성찰은 거듭될수록 깊어진다. 한 번 봤던 동화나 영화를 다시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이듯 말이다. 《대순회보》 역시 계속 읽다 보니 처음엔 생각 못 한 것, 혹은 잊어버렸거나 잃어버렸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 《대순회보》의 기사 현장에 있었던 독자들도 계시리라. 과거에 직접 겪어봤던 일이라도 지금, 한 번 읽어볼 것을 추천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