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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經』민속자료 : 가야금(伽倻琴)
가야금(伽倻琴)
글 교무부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 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의복, 기구, 가옥 등과 같은 것을 민속자료라고 일컫습니다. 『典經』을 살펴보더라도, 옛 민속자료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켜나가려는 열성이 미약한 나머지 점점 더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순회보』는 ‘『典經』 민속자료’라는 코너를 새롭게 연재함과 더불어 종단에서는 다양한 민속자료 수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에 입각하여 각 방면과 여러 수도인들께서 소유하고 계신 것이나 혹은 주변에서 구입할 수 있는 옛 민속품을 여주본부도장으로 기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첫 번째, 최태기 악기장으로부터 손수 6개월 이상 정성과 예술의 혼을 담은 가야금을 기증받게 되었습니다.
이해 여름에 경석이 상제를 모셨도다. 이때 종도들이 악사를 불러 가야금을 타게 하고 즐겁게 놀고 있었노라. 이것을 말리시면서 상제께서 가라사대 “내가 있는 곳에서 비록 사소한 일이라도 헛된 일을 못하느니라. 저 하늘을 보라” 하시니 구름도 같은 기운이 종도들이 놀고 있는 모양을 짓고 중천에 떠 있었도다.(권지 2장 30절)
가야금은 삼현(三絃 : 가야금 · 거문고 · 향비파) 중의 하나로, 몸통 위에 열두 줄을 얹어 타는 우리나라 고유의 대표적인 현악기(絃樂器)이다. 가야금은 한자 표기이고, ‘가얏고’가 원래의 이름이다. 이 악기의 정확한 제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가야국(伽倻國) 가실왕(嘉實王 : ?~?)이 악사(樂士) 우륵(于勒 : ?~?)에게 명하여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그리고 “가얏고의 위가 둥근 것은 하늘을, 가운데가 빈 것은 세상의 공허함을, 줄은 12월을 본뜬 것이다.”라고 생김새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한편 가야국이 신라에 의해 멸망하면서, 제작자인 우륵은 이를 신라 진흥왕(眞興王 : 534~576)에게 진상하였다. 가얏고의 은은하면서도 감미로운 선율에 감동한 진흥왕은 이를 적극적으로 확대 발전시키는 노력을 기울였고, 이 시기에 가얏고가 가야금으로 개칭(改稱)되었다. 가야금은 상판인 오동나무와 하판인 밤나무를 붙여 만든 것이다. 그리고 오동나무로 만든 울림통 위에 기러기발 모양의 안족(雁足 : 배나무나 호두나무로 만드는데, 소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을 세우고 그 위에 명주실을 꼬아서 만든 12현(絃)을 얹은 다음 머리 쪽에는 담괘라고 하는 것을 두어 줄을 버티고, 고리에는 양이두(羊耳頭 : 가야금 아래 끝에 열두 개의 구멍을 뚫고 부들을 잡아매는 곳)를 꽂아 줄을 감아 얹어 두었다. 왼손으로 줄을 누르거나 흔들고 오른손으로는 뜯거나 퉁기면서 연주할 때의 가야금 소리는,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섬세한 음색 면에서 가히 일품으로 꼽힌다. 용도에 따라 풍류가야금과 산조가야금 두 종류가 대표적이다. 궁중음악이나 풍류에 사용되는 것을 법금(法琴) 또는 풍류가야금이라 하는데, 가야금의 원형이다. 그리고 민속악에 사용되는 것을 산조가야금이라 하는데, 조선조(朝鮮朝) 중엽 이후에 널리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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