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별 보기
   daesoon.org  
대순137년(2007) 4월

이전호 다음호

 

도전님 훈시 포덕교화기본원리 2 종단소식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5) 교리소개 청계탑 도인탐방 포토에세이 답사기 수기 대학생 코너 학술대회 참관기 대순논단 대원종 인물소개 독자코너 고사 한마디 금강산이야기 아름다운 세시풍속 종교산책 철학과의 만남 영화 속으로 이달의 책 & 십자말 맞추기 알립니다

인물소개 : 필(畢) 별을 관장하는 경단(景丹)신명

필(畢) 별을 관장하는 경단(景丹)신명

 

 

글 교무부

 

  경단(景丹:?~26 , 자(字)는 손경(孫卿))은 빙익군 약양현(馮翊郡陽縣: 현 섬서성 서안시 소재) 사람으로, 광무제(光武帝)를 도와 후한(後漢:25~220)01 을 세우는데 많은 공적을 남긴 장수이다.

  그는 어려서 장안(長安)에서 공부하였으며, 특히 언어(言語)에 능통하였다고 전한다. 과거에 합격한 후에는 고덕후(固德侯)를 보좌하는 간사(幹事)로 근무하다가, 상곡군(上谷郡: 현 하북성 회래현 동남쪽)의 연솔부이(連率副貳: 태수 보좌관)로 자리를 옮겼다.

  후한이 세워지기 직전의 혼란기에 하북(河北) 지방에서 왕랑(王郞:?~24)02이 황제를 자처하며 일어나자 경단(景丹)은 연솔(連率: 태수)인 경황(耿況)과 함께 이에 항거하기로 결정하였다. 경황은 자신의 아들인 경감(耿: 箕별을 관장), 그리고 구순(寇恂: 牛별을 관장)과 경단(景丹) 등에게 병사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가 왕랑을 토벌하러 온 광무제에게 합류하도록 하였다.

  광무제는 경단 등을 만나보고 “한단의 장수가 여러 번 나에게 어양군(漁陽郡: 현 하북성 계현)과 상곡군(上谷郡)의 병사를 징발하라고 하기에 알았다고 했는데, 그 두 군(郡)의 병사들이 나를 위해 이렇게 찾아올 줄 어찌 알았으리오! 이제 그대들과 이 공명(功名)을 함께 할 따름이오.”라고 기뻐하며, 경단을 편장군에 제수(除授)하고 또 봉의후(奉義侯)로 봉해주었다.

  경단 등은 광무제가 이끄는 군대(軍隊)를 따라 왕랑군과의 전투에 참여하였는데, 왕랑군의 기세가 대단하여 한군(漢軍)이 밀리자 돌격대(突擊隊)를 풀어 왕랑군을 대파하고 십여 리를 추격하였다. 경단이 돌아오자 광무제는 “그대의 돌격대가 천하에 다시없는 정예부대라 하더니 오늘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되어 무척 즐거웠소.”라고 하며 치하(致賀)하였다. 이후 경단은 광무제와 함께 하북지방을 평정하였다.

  25년 광무제가 황제로 즉위한 후, 손함(孫咸)을 대사마(大司馬: 국방부장관)로 임명하였는데 모두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대사마가 될 만한 사람을 추천해보라 하니 여러 신하들이 오한(吳漢: 별을 관장)과 경단(景丹)을 추천하였다. 이때 오한은 대사마로 임명되었고, 경단은 대사마와 동등한 관위(官位)인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으로 임명되었다.

  26년(건무 2) 경단은 자신의 고향인 약양현의 제후[陽侯]로 봉해졌다. 광무제는 이에 대해 “지금 관동(關東: 당시의 수도인 낙양 부근을 말함) 지역은 옛 왕국으로 비록 몇 개의 현(縣)이 있기는 하나, 만 호(戶)나 되는 약양(陽)에는 미치지 못하오. 또 옛말에 ‘부귀해지고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밤에 비단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므로 경(卿)을 약양후에 봉한 것이오.”라고 하며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경단을 봉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주었고, 경단은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그해 가을 섬(陝: 현 하남성 섬현)에서 소황(蘇況)이라는 자가 반란을 일으켜 홍농(弘農: 현 하남성 영보시 북쪽)을 습격하고 군수를 생포한 일이 발생했다. 그때 경단은 병중(病中)이었으나 광무제는 이 사건의 수습을 그에게 맡기고 싶었기에 밤에 궁으로 불러들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반란군이 수도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소. 비록 병중일지라도 그대처럼 위엄 있고 비중이 있는 장수라면 누워서 진압을 한다 해도 충분할 것이오.” 이에 경단은 감히 사양하지 못하여 병을 무릅쓰고 명(命)을 받들었는데, 군대를 이끌고 홍농(弘農)에 도착한지 10여 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01 기원전 202년에 유방이 건국한 한()나라는 기원후 8년에 왕망에 의해 멸망하였다. 25년에 유방의 9세손인 유수(劉秀:광무제)는 왕망이 세운 신()나라를 무너뜨리고 낙양에서 한()나라를 재건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를 유방이 장안에 세웠던 전한(前漢)과 구별하기 위하여 후한(後漢) 또는 동한(東漢)이라고 한다.

02 장안의 점술가였는데 자신을 한나라 왕실의 후예인 유자여라고 속여 반란군 세력을 규합한 다음 이를 토대로 하북 일대를 장악했던 인물.

 

관련글 더보기 인쇄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