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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7년(2007)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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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 자(觜) 별을 관장하는 만수(萬修)신명

자(觜) 별을 관장하는 만수(萬修)신명

 

 

글 교무부

 

  만수[萬修: ?~26, 자(字)는 군유(君游)]는 부풍군 무릉현(扶風郡茂陵縣: 현 섬서성 흥평시 동남쪽) 사람으로, 광무제(光武帝)를 도와 후한(後漢: 25~220)01을 세우는 데 많은 공적을 남긴 장수이다.

  광무제의 후한건국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하북(河北) 지방을 자기 세력권 내에 편입시킨 것이었다. 그는 이곳을 바탕으로 점차 세력을 키워 결국 낙양에 입성하여 천자에 등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광무제가 이 지역을 처음부터 순조롭게 획득해 나간 것은 아니었다.

  당시 하북 일대는 왕랑(王郞: ?~24, 장안의 점술가였는데 자신을 한나라 왕실의 후예인 유자여라고 속여 반란군 세력을 규합한 다음 이를 토대로 하북 일대를 장악함)이라는 자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다.

  그는 한단(邯鄲: 현 하북성 한단)에 세력거점을 구축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하면서 주변 고을을 장악하고 호응을 얻어내는 데 성공하였으므로, 광무제가 하북 지방에서 왕랑을 토벌할 사람을 모집할 때 모두들 거기에 응하지 않고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오히려 왕랑이 10만 호(戶)라는 막대한 현상금을 걸어 놓고 광무제를 잡으려 하니 광무제는 처량하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쫓기던 광무제가 피신한 곳은 하북 일대에서 끝까지 왕랑에게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던 2개 군[화성군과 신도군] 중 하나인 신도군(信都郡: 현 하북성 기주시)이었다. 이때 신도군에는 태수였던 임광(任光: 婁별을 관장)과 도위로 있던 이충(李忠: 昴별을 관장) 그리고 현령이던 만수(萬修)가 있었으므로 모두 같이 나가 광무제를 맞이하였다.

  만수는 이때 편장군(偏將軍)을 제수 받았고, 또 조의후(造義侯)에 봉해졌다. 왕랑의 근거지였던 한단을 격파한 후에는 우장군(右將軍)을 제수 받았으며, 이후 광무제를 따라 하북지방을 평정하였다.

  26년(건무 2)에는 다시 괴리후(槐里侯)로 봉해졌으나 견담(堅鐔: 危별을 관장)과 함께 남양(南陽: 현 하남성 남양시)을 공격하던 중 병을 이기지 못하고 군중에서 세상을 떠났다.

 

 

 

 


01 기원전 202년에 유방이 건국한 한()나라는 기원후 8년에 왕망에 의해 멸망하였다. 25년에 유방의 9세손인 유수(劉秀:광무제)는 왕망이 세운 신()나라를 무너뜨리고 낙양에서 한()나라를 재건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를 유방이 장안에 세웠던 전한(前漢)과 구별하기 위하여 후한(後漢) 또는 동한(東漢)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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